정토행자의 하루

청주지회
쪼그라들었던 마음의 기지개를 켭니다

대전충청지부 청주지회 송은정 님을 소개합니다. 송은정 님은 현재, 지부 실천 장소 담당이자 문경수련원 실행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 부담감이 컸지만 ‘나답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조금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송은정-다움’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돌아보니, 행복했던 어린 시절

저는 청주 토박이입니다. 어릴 때 별명은 말라깽이일 정도로 몸이 약했습니다.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학습지, 만화방, 서점, 학교 준비물 납품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생활력 강한 어머니도 일을 나갔습니다. 쌀이 없어 퉁퉁 불은 라면을 네 식구가 나눠 먹으며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그시절, 짜장면집에 냄비를 가져가면 짜장면을 받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짜장면 4인분을 못 사고 3인분만 사 와 우리 식구끼리 나눠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 행복했구나!’ 싶어 눈물이 납니다.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2023년 인도성지순례
▲ 2023년 인도성지순례

우연히 만난 정토회, 적당히 그러나 꾸준히

지인의 병문안을 함께 간 언니에게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권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당시 저는 절에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다니는 절에서 초파일 행사도 도왔습니다. 그 절은 기도를 주로 하였는데, 저는 불교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불교대학이라는 말에 그 언니와 같이 입학했습니다. 그때가 2013년입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니 낯설고 부담스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법당에는 스님도 없고, 법문도 영상으로 듣고, 과하게 친절한 회색 옷을 입은 봉사자들도 부담스럽고, 설상가상으로 해본 적도 없고 딱히 할 말도 없는 마음 나누기는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시작했으니, 졸업은 하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모두 개근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제게 큰 변화는 없었지만, 불교대학 담당을 맡아 그 이상의 소임은 거부하면서 ‘적당히’ 활동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침 기도를 시작하고 나눔의 장, 명상 등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도 '가늘고 길게 가자.'라는 생각으로 정토회에 붙어 있었습니다.

2023년 문경, 보리수 7기 봉사활동(맨 오른쪽 송은정 님)
▲ 2023년 문경, 보리수 7기 봉사활동(맨 오른쪽 송은정 님)

마지막을 함께하며 이해한 아버지

아버지는 평소 다정하고 얌전했습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셨고, 술 마시고 들어온 날은 자주 큰소리로 어머니와 싸웠습니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면서 술주정했고, 노래도 많이 불렀습니다. 제가 큰 소리에 마음이 두근거리고 무서워하는 것은 이런 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와 집 정리를 하면서 옛날의 맥주병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리 감춰도 아버지가 귀신같이 찾아 마셨는데, 어떻게 이건 못 찾았냐?’라고 하셨고, 어머니와 한참을 웃었습니다.

2007년에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몸 왼쪽이 마비되었습니다. 다음 해 중환자실에 6개월 정도 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아버지가 하던 일을 요청하면, 제가 아버지의 손발이 되었습니다. 같이 있는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아버지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형과 형수에게 의지해 살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 아픔, 외로움을 술로 달랬던 아버지의 모습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정 많고 사람 잘 챙기는 아버지를 가족들이 몰라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혼자 많이 아프고 외로웠겠구나’라는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부모님은 제가 네 살 때, 저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놀라서 찾아다니다 시장에서 어른들과 방글방글 웃고 있는 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간은 짧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 문경, 부처님오신날 점등(왼쪽 두번째 송은정 님)
▲ 2022년 문경, 부처님오신날 점등(왼쪽 두번째 송은정 님)

너무 큰 옷, 버거운 소임

저는 10년 넘게 단체 봉사 활동을 하면서 정토회 활동은 적당히 했습니다. 그런데 뺀질대던 저에게 총무라는 큰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소임이 버겁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침에 눈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고 아팠습니다. 아무것도 몰라 부족하면서도 가볍게 인정하지 못하는 위축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도반들이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많이 긴장되고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평소 사람과의 관계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로 만나는 도반과의 관계는 편치 않았고 부담이 되어 한 발짝도 못 나가는 내가 답답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제 생각에 빠져 지도 법사님 법문도, 도반들의 좋은 얘기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알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그저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활동하며 여기저기서 깨지니 어느새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도반들에게 시비분별 하는 마음이 바로 ‘나’로부터 나오며, 결국 ‘내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큰 소임을 하면서 결국 저를 본 것입니다. 저를 성장시켜 준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어리석었던 총무 시절이 제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박차고 나오는 대신 끝까지 묵묵히 소임을 마친 제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봉사 단체에서 소임의 부담으로 도망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로 정토회 활동은 제 삶에서 영순위입니다. 다른 곳 기웃거리지 않고 단순한 일상을 사니 좋습니다.

2019년 청주 법륜스님 즉문즉설(왼쪽 송은정 님)
▲ 2019년 청주 법륜스님 즉문즉설(왼쪽 송은정 님)

정토회 소임, 영순위!

총무 소임에 적응할 즈음 조직이 개편되었고, 지금은 지부 실천 장소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대전충청지부의 실천 장소는 죽림정사와 문경수련원 그리고 문경연수원입니다. 으뜸 절인 죽림정사에서는 7대 행사나 특별 행사가 진행됩니다. 저는 평소 수련원과 연수원이 있는 문경에 자주 갑니다. 이제는 상대를 만나기 전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실천 장소 담당을 한 가피입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여러 경험을 통해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제가 몸에 끌려다니지 않고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소임도 주어지는 대로 ‘예’하고 합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함께라서 할 수 있는 정토회임을 알기에 믿고 합니다.

2023년 베트남 스님 초청 바라지(왼쪽 세번째 송은정 님)
▲ 2023년 베트남 스님 초청 바라지(왼쪽 세번째 송은정 님)

시어머니와의 갈등

시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억척같이 일하며 홀로 1남 4녀를 키웠습니다. 결혼 후 저는 시누이 둘과 함께 살았습니다. 주위의 우려와 달리 저는 시누이들을 여동생처럼 여기며 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오해로 인해 고부갈등이 시작됐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집들이 온 날, 남편은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두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제가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며, 심한 말을 하며 제게 화를 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닫았습니다. 시어머니의 크고 거친 말투가 싫었습니다. 시누이들의 말도 화살로 꽂혀 다 싫었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면이었습니다.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한 행동이나 말투를 마치 곶감 빼 먹듯, 필요할 때마다 남편에게 꺼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도 시어머니와의 갈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억울함에 많이 울었습니다.

2023년 문경수련원 보리수 7기 수련(맨 왼쪽 송은정 님)
▲ 2023년 문경수련원 보리수 7기 수련(맨 왼쪽 송은정 님)

억울함에서 고마움으로

그 후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10년간 병원에 있고, 병원비는 고스란히 아들 몫이었습니다. 병원비를 부담하지 않는 시누이들이 야속해 다시는 안 보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 어깨는 다소 가벼워졌지만 억울함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눔의 장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변했습니다. 억울하고 미워했던 마음이 고마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살고자 선택한 외면이 어머니에게 상처였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남편과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를 별개로 생각했습니다. ‘저의 굳은 얼굴이나 냉랭한 말투, 퉁퉁거리는 행동에 어머니가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70대를 병원에서 누워 지냈던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니 가여웠습니다.

나눔의 장이 끝나고 시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며칠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가벼워졌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 마음의 억울함과 분노가 사라짐을 경험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저는 시어머니 문제 외에는 마음의 갈등이 딱히 없는 줄 알았습니다. 불편하면 외면하고 피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 활동하면서 나를 알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풀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2020년 청주정토회 법당 총무들과 영동 법당 정리 후(앞줄 왼쪽 송은정 님)
▲ 2020년 청주정토회 법당 총무들과 영동 법당 정리 후(앞줄 왼쪽 송은정 님)

일상이 감사

살면서 처음 만나는 일은 늘 힘들었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컴퓨터도 잘 모르고, 일머리도 없고, 봉사자 관리도 못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어리석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지 몰랐기에, 정토회 소임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소임을 통해 부담으로 쪼그라져 기죽었던 마음은 ‘한번 해보지 뭐’라고 기지개를 켰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함께여서 해낼 수 있는 경험들은 ‘찐’으로 저를 숙이게 했습니다.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는 남편, 그리고 백일 출가 후 재입소해 잘 생활하고 있는 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상을 사니 참 좋습니다.

2023년 용성교 개통식 봉사(오른쪽 세번째 송은정 님)
▲ 2023년 용성교 개통식 봉사(오른쪽 세번째 송은정 님)


인터뷰를 참관한 짝꿍 리포터는 천진난만한 웃음의 송은정 님 목소리가 "대장부 같다.”라고 했습니다. 함께 한 선배 리포터는 “시어머니에게 돌이킴은 총무 소임을 해낸 힘인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느낀 ‘송은정-다움’은 꾸준함과 당당하고 친근한 솔직함입니다. 주인공을 만나 영광입니다.

글_엄태숙 희망리포터(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편집_이혜수(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전체댓글 45

0/200

정경희

송은정님의 잔잔한 수행이야기 감동적이네요.
들려주셔서 고맙고 배울 수 있어서 또 고맙습니다~^

2024-01-07 06:50:54

김태권

송은정님의 잘 정리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문경수련원 잘 가꾸어 주시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수행자로 당당하게 살아감이 아름답습니다.
함께 행복을 가꾸어요. ^*^

2024-01-01 07:08:00

김남희

시어머님에 대한 서운함을 돌이키니 나의 냉랭함에 마음 불편하셨을 시어머님이 보이셨다는 말씀에 저도 깨닫습니다. 남편과 별개가 아님도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12-26 08:06:04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청주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