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잘 놀아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외 벌이에 4남매를 키우는 엄마는 “힘들다”와 “너만 아들이었어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결국, 네 번째 막내로 아들을 낳았지만 제가 아들이 아닌 이유로 아이 넷을 키우며 짜증과 화를 풀어댔습니다. 또한 엄마의 기대를 다 채워주는 언니만큼 못하는 제게는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답답해하며 “너는 대체 왜 그 모양이냐?”라며 한심하게 째려봐 늘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 졸업 후 동네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될 때까지는 육아에 몰두하느라 시댁 식구들과의 마찰이나 갈등도 참고 견디며 보냈습니다. 그런데 홀시아버지와 함께 살던 저희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 둘과 외아들인 남편, 그리고 홀시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신경전이 심하고 서로의 생활 경계가 불분명하여 다툼도 잦았습니다.
그런 속에서 며느리로 사는 저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해결할 힘도 없어 그저 시달림받는 형국으로 위염과 위경련은 물론 이명과 피부병까지 왔습니다. 이러다 시어머니처럼 암에 걸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가슴으로 숨죽여 살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짜증 가득한 엄마의 표정과 똑같은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뭔가를 해야 해” “난 행복해지고 싶어” 하고 숨죽어가는 나에게 외쳤습니다. 점집에 다니고, 심리강연, 학부모교육 등 마음을 의지할 수 있다는 곳이라면 다 찾아다녔습니다. 이전보다 뭔가 새롭고 가벼워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찾아다닐수록 뭔가 아쉬웠습니다. 이런 것 말고, 꾸준히 지속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가슴 한쪽에 목마름이 생겼습니다.
같은 또래의 남매를 키우며 심리강연 및 육아 강연장을 함께 다니던 언니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집안일을 하면서 1,000회까지 즉문즉설을 시청하고 더 알고 싶어 책도 사서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에 언니가 먼저 붐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저는 같은 해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좋은 법을 일찍 만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이냐? 젊은 사람이 어르신 모시고 사느라 애쓴다, 대견하다고 하는 선배 도반들의 말씀은 지치고 힘들어 시들어가던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개근은 못 해도 수행 맛보기 후 바로 8-7차 입재식에 입재하고 12월에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감사함으로 돌이켜지면서 불법에 대한 기쁨이 온몸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긴장되고 위축되어 늘 숨고 싶었던 열등감이 다만 다름이었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금강경 수업을 듣는데 첫 수업부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알아주기만 바랐던 이기적인 제 마음을 참회했습니다.
남편으로서, 어른으로서, 이렇게 저렇게 해줘야지 하며 늘 바라는 마음으로 특히 남편에게는 바가지를 긁어대며 괴롭혔으니 남편도 힘들었구나,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을 남편의 외로운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스스로 불쌍하게 만들며 악순환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금강경 수업은 솔직히 한문 본문 설명은 너무 어려웠지만, 법륜스님의 예시로 설해주는 법문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특히, 거지 남편의 불성을 찾아 준 공주처럼 남편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 해놓고선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으름장 부린 어리석고 모순된 제 모습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혼을 똑똑하게 잘해볼까 했던 마음이 탁 돌아섰습니다. ‘아! 내가 보살이 되어 이 사람을 품으면 되는구나’를 깨달았을 때 기쁨이 솟아올랐습니다.
이후로 봉사 소임을 하면서 정일사 때마다 법사님의 점검을 받으며 꾸준히 제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엄마 못지않은 항상 완벽했던 언니에 대한 의지심, 모방심, 질투심도 극복해나갔습니다. 저는 언니와 다른 ‘나’를 인정하고 언니도 동생의 걱정을 그만해도 되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고 편안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이 평온할 즈음 남편이 빚을 지어놓고 또 대출받으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건가? 하며 절망감에 빠졌는데 마침 광주에 온 향류법사님에게 상담받았습니다. 착실하게 돈을 저축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돈에 집착하는 마음을 살펴보라고 짚어주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돈 밝히는 천박한 것들이라 손가락질했던 시댁 식구들이 바로 저였고, 사실 남편보다 돈 걱정을 먼저 하는 저를 알았습니다. 돈에 대해서 크게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다음날부터 300배 정진을 시작하며 다시 흔들리던 마음 갈피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배 한 배, 엎드리다 보니 제가 돈을 밝히고 집착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늘 돈을 세며 전전긍긍했고, 더 모으려고 인색했고 그것을 모르고 쓰기만 하는 남편을 더 미워했던 것입니다. 그 후 돈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져서 법당 보시도 늘리고, 쓰려고 모은 돈이니 이럴 때 쓰지, 하며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졌습니다. 빚은 아직 있지만, 마음은 편안합니다. 오히려 제가 돈을 써버리니까 경제관념 없던 남편이 돈 걱정을 하며 비상금으로 제게 선물도 하고, 여행비를 내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3년 정진을 통해 손은 발을 씻으면서 자신도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이치가 체화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작년 5월엔 아들이 항문수술을 하고 크론병을 진단받았는데 “지금 이만함에 다행이다” 그 누구를 탓하는 마음 한 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밖으로 돌면 집안 망한다고 법당 나갈 때마다 화내며 쓸데없이 절에 돈 쓰지 말라던 시아버지도 2020년 성지순례 갈 때 잘 다녀오라고 용돈을 주었습니다. 제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는 모든 순간이 감동과 감사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성지마다 예불을 올리시는 법륜스님의 걸음, 표정, 말씀 모든 행동이 정성과 존중의 예를 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법륜스님을 따라다니기만 해도 큰 감동이 있는 순례였습니다. 성지마다 부처님의 일생을 함께하며 2600년 전 경전 속의 한 장면이 재현되는 즐거움과 감동은 그야말로 잊지 못합니다. 또한, 낯선 곳에 장기간 저를 떠나보낼 수 있는 가족들에게도 서로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배운 기회였습니다.
경전대학 학생 때부터 환경 꼭지 작은 소임으로 시작해서 신규 발심행자 교육 안내, 자활팀장으로 봉사하면서 도와주고 베푸는 마음이 곧 괴로움 없는 경지로 이른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사는 날까지 제가 누리는 행복을 회향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겐 정토회 일만 남았습니다.
불교대학 입학하기 전에 스님의 즉문즉설을 1,000회 듣고 지금도 모집 광고에 “지금 행복하세요”라는 문구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는 신진영 님. 지난 시절의 괴로움이 훌렁훌렁 벗겨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깨달음의 에너지가 번지는지 제가 더 밝아집니다. 2023년도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서원행자 교육받는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신진영 님을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글_최서연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동광주지회)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전체댓글 31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동광주지회’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