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제지회
막내는 내 모든 역경을 이겨낸 결정체

세 살이 된 막내를 등에 업고 버스를 타고 진해에서 마산까지 법당을 다녔던 박미순 님. 법회 사회 소임을 맡았을 땐 아들이 옆에 서서 같이 사회자가 되어 주었고, 어쩌다 저녁 예불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 때는 집전을 맡은 주인공과 아들 단 둘이서 예불을 올리기도 했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손을 잡고 노을 지는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바라 보는 박미순 님과 막내 아들은 서로 의지하는 도반이였습니다. '막내는 나의 모든 역경을 이겨 낸 결정체'라 말하는 박미순 님의 수행담을 함께 합니다.

행복학교를 홍보하는 박미순님
▲ 행복학교를 홍보하는 박미순님

욕망이 불러온 괴로움의 시작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며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산 부모님은 그럼에도 늘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어떻게든 나이 들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서 노후에는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

남편과 저는 10년 맞벌이로 성실하게 일해 돈을 모았고, 남편의 명예퇴직금과 은행 다니는 딸이라고 엄마가 믿고 맡긴 돈까지 제법 큰 돈이 제 수중에 있었습니다. 2007년 제가 사는 진해에 부동산 붐이 일어나 주변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수 있겠다는 욕심에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부동산을 사고, 높은 이자를 준다고 해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옷 가게까지 인수하는 등 여기저기 한꺼번에 투자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문 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남의 말만 믿고 투자한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현혹되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투자한 부동산은 기획 사기였고, 높은 이자를 준다고 빌려준 돈은 돈을 빌려간 사람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돌려 받을수가 없었습니다. 또 점원만 잘 두면 장사는 저절로 될 것이라는 전 가게 주인의 말만 믿고 인수한 옷가게마저 매출이 부진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운영이 어려워져 옷 가게 직원 급여와 운영경비조차 제 월급으로도 충당이 어려워졌고, 그것도 부족해 카드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버텼지만 결국 큰 손해를 보면서 가게를 넘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희망리포터와 함께 불교대학 홍보(오른쪽 두번째)
▲ 희망리포터와 함께 불교대학 홍보(오른쪽 두번째)

뱃 속에 아이와 함께 눈물로 지새는 나날들

이같은 일들은 불과 1년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제 손 안에 있던 큰 돈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편안하게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는커녕 이 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말만 믿고 투자한 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저를 속인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때까지 잘 살아 보자고 남편과 함께 아끼고 노력하면서 살아온 제 인생이 모두 허망해 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남편에게 조차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수 없다고 생각했고 저의 욕심으로 생긴 일인데 후회하는 마음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으니 속은 더 타들어가고 마음은 나날이 위축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뱃속에 늦둥이 막내까지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몸도 힘든데다 마음마저 괴로우니 심신은 나날이 지쳐만 갔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이래선 안되는데, 힘을 내야지.' 하면서 지난 일을 잊으려 했지만 괴로움은 가시지 않은 채 밤마다 눈물로 베갯머리를 적시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의 막막하고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전단지 한 장이 구원의 밧줄이 되다

2010년 5월 어느날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앞 게시판에서 법륜스님의 강연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저는 당시 법륜스님이 어떤 분인지도 몰랐지만 절실한 마음에 스님의 강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저와 정토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날 한 보살님으로부터 받아 들고 온 전단지에는 정토회 홈페이지가 안내되어 있었고 그 곳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접한 뒤 매일같이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함께 실린, 삶의 어려움을 수행으로 이겨내신 분들의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백일기도 입재식 참가 안내문을 보았고 저도 한번 기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입재식 날 새벽 일찍 진해를 출발해 마산으로 넘어가 그 곳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입재식에 참석했습니다. 전국에서 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입재식을 했고, 매주 토요일이면 마산법당에서 법회가 열린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남편과 막내 아들(봉림사지 함께 기도 후)
▲ 남편과 막내 아들(봉림사지 함께 기도 후)

도반이 되어 준 막내 아들

그때 겨우 세 살밖에 되지 않았던 막내를 혼자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어 저는 막내를 등에 업고 버스를 타고 진해에서 마산으로 법당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생활, 집안 일, 육아 등으로 지친 몸이라 주말에 때때로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지만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당에 나가 기도하고 법문을 듣는 것이 그나마 제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 힘든 시기를 버텨낼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막내도 제 마음을 아는지 함께 잘 다녀 주었습니다. 법당에 가서도 잠을 자거나 혼자 종이놀이 같은 걸 하면서 법회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함께 법회를 들어 주었습니다.

법회를 담당하던 도반이 제게 사회를 맡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있어 집중이 잘 안될 거라며 거절했지만 마침 그때 법회 담당 도반도 임신중이라 힘들어 했고 마땅하게 할 다른 분도 없어 결국은 제가 맡았습니다. 제가 사회를 볼 때면 어느새 막내가 제 곁에 다가와 나란히 둘이서 사회를 보았습니다.

법회 후 저녁예불 집전 소임도 맡게 되었는데 어쩌다 저녁 예불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 때는 막내와 제가 단 둘이서 예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막내는 제 모든 역경을 이겨 낸 결정체이기도 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에 제 뱃속에서부터 그 힘든 과정을 고스란히 견뎌 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막내와 손을 잡고 노을 지는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바라 보며 막내와 저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힘이 되어주는 도반이었습니다.

수행으로 닦아가는 나의 길

2014년 개원한 진해 법당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저는 새롭게 구성된 진해 도반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했습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른 도반들과의 부딪힘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문득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수행이 나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수행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를 닦아가는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하던 천일결사 백팔배를 삼백배로 늘렸습니다. 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고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싶었습니다.

삼척 수해복구현장에서
▲ 삼척 수해복구현장에서

2015년 어느날 월광법사님으로부터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매년 임진각에서 기도를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만배를 할 수나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한편 나도 법사님처럼 따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렇게 저는 만 배 정진의 원을 세웠고 그해 12월 30일부터 다음해 1월 1일까지 연말과 새해로 이어지는 3일간 임진각에서 진행된 한반도 평화통일 염원 만배 정진 기도에 동참했습니다. 그때 시작한 만 배 정진은 그 후로도 지금까지 7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참회기도발원문'에 쓰여진 글귀를 한 줄 한 줄 마음에 새기며 배고파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도울 수 있고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에 추위와 피로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임진각 망배당에서 진행되었던 만 배 정진에는 많은 분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습니다. 선뜻 방을 내주며 재워주고 든든한 아침식사도 챙겨준 도반도 있고, 인천경기서부 도반들이 함께 릴레이 집전을 하면서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정성들여 공양과 간식 등을 챙겨주는 도반들의 자상한 배려와 노고로 저의 만 배 정진이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 분들의 은혜속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임진각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염원 기도(왼쪽 첫번째)
▲ 임진각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염원 기도(왼쪽 첫번째)

내 마음속 무거움의 실체

얼마전 엄마와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늘 우리곁을 지키면서 어떤 고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강인한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슴속 깊이 담아 두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살아오신 고단했던 삶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살아오면서 엄마도 참 많이 힘드셨구나, 이런 엄마를 내가 닮아 있었구나,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엄마와 나, 아이들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나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며 애써 외면하고 억누르며 살아온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억누르고 살았으니 내 마음이 늘 무거울 수밖에 없었구나!' 저는 살아 오면서 늘 궁금했던 제 마음속 무거움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살피지 못하니 남편과 아이들의 마음도 당연히 살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 가고 있으니 남편과 아이들도 당연히 나처럼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동안 남편과 아이들도 나에게 맞추고 사느라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럼에도 지금까지 버텨 주고 따라줘서 정말 고맙구나 참회하는 마음이 우러 났습니다. 예전에 내가 그 많은 돈을 날렸을 때도 남편은 내게 욕 한마디, 원망 한번 하지 않았지, 그리고 이 법을 만나게 해 준 남편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라고 마음속에 새기며 기도했습니다. 바라는 마음은 내가 일으키는 마음이라는 수행문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3.1절 특별법회에서 독립선언문 낭독
▲ 3.1절 특별법회에서 독립선언문 낭독

안될 때가 되는 때

봉사하는 과정중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저는 늘 상대와 비교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 같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의 지난 10 년 여 동안의 정토회 활동을 되돌아 보면 일과 수행의 통일이 뜻이 뭔지도 모르면서 직장에 나가 일하듯이 봉사할 때가 많았습니다. 마음챙김이 잘 되지 않을 때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안될 때가 되는 때다는 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 수 있었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인정해 버리니 오히려 마음은 더 편안해졌고 가벼워졌습니다. 지금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지만 지금 넘어진 자리가 수행의 새로운 출발점이라 생각하며 조급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 나가려 합니다.

봉림사지 중창불사 및 통일염원 발원기도를 끝낸 후(맨앞줄 오른쪽 두번째)
▲ 봉림사지 중창불사 및 통일염원 발원기도를 끝낸 후(맨앞줄 오른쪽 두번째)

언제 어디에 가 있던 정진의 시간만은 놓치지 않아

한때 절박한 삶의 낭떠러지에 떨어졌다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정토회를 만나 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왔기 때문입니다. 여행중 흔들리는 배 위에서, 새벽녘 버스터미널의 후미진 귀퉁이에서, 도반들이 잠든 수련장 어두운 불빛속에서, 북녘땅이 바라 보이는 임진각의 살을 에는 추위에서, 가야불교의 성지인 봉림사지 터에서, 인도성지순례의 고단함 속에서도 어디서나 놓치지 않았던 정진의 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정토회가 나에게 가져다 준 숱한 모든 과정들은 결국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감사하고 스승님 만난 것이 감사하고 수행의 전부인 도반들이 있어 감사하여 여기까지 정진의 끈 놓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 자신을 알게 해주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이 소중한 법이 제게서 멈추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 가기를 발원하며 세상에 회향하며 살고자 발원합니다.

좌우로 홍보스티커가 빈틈없이 붙어 있는 박미순 님의 자가용
▲ 좌우로 홍보스티커가 빈틈없이 붙어 있는 박미순 님의 자가용


정토행자의 하루 취재를 하는 내내 자신의 기사보다는 불교대학 홍보를 더 생각했던 박미순 님은 저와 소통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교대학 홍보의 현장에 함께 나서 주기를 독려했습니다. 박미순 님이 타고 다니는 조그만 승용차에는 문짝마다 빈틈없이 홍보 자석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 차에 붙여둔 행복학교 홍보자석을 보고 택시같다는 아내의 말에 그만 트렁크에 넣어두었는데 말이지요. 집에 돌아와 홍보자석을 다시 꺼내 제 차에 곱게 붙여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_배병갑 희망리포터(경남지부 거제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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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전단지 한 장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 훌륭한 전법가가 되신 도반님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전에 시장에서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렸던 추억들이 되살아나니 행복합니다.

2022-03-26 19:50:16

김선수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살님처럼 꾸준히 수행정진해 보겠습니다.

2022-03-20 15:19:13

개나리

감동적인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더이상 아이 핑게대지않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법당을 오고간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가슴 찡했습니다.

2022-03-17 22: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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