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염 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빨라도 너무 빠릅니다

정토회에는 최단기간인 10년 만의 법사 수계를 받은 향염 법사님이 있습니다. 정토회 활동 10년은, 30년 동안 활동한 도반들이 많은 정토회에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고운 옷 입고, 봉사한다고 잘난 척하며 살았을 거라는 향염 법사님. 그런 귀부인이 10년이라는 최단기간에 법사님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타고난 DNA가 다를까요? 아니면 비책이 따로 있었던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빨리 법사님이 되도록 만들었는지 지금부터 그 비밀을 들어보겠습니다.

향염법사님
▲ 향염법사님

정의감에 불타는 아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글자로 된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글 읽기를 좋아해서 일찍부터 위인전을 읽으며 ‘아! 나도 저런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것이 좋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살던 마을로 몰래 이사와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녀와서 그런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고, 남 돕는 일을 가리거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오지랖이 넓고 정의감에 불타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봉사에 대한 열정은 결혼한 후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면 언젠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돈을 벌면 보육원을 할까?, 아니면 몇 명 입양이라도 해 볼까?’라며 제가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제 성질이 안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괜히 큰일 나겠다 싶은 마음에 그 생각들을 모두 접었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을 따라서 성당에 다녔는데 성당에서 자장면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수녀님이 되는 바람에 더는 성당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4㎞나 떨어진 성당이 멀기도 했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했기에, 도저히 혼자서는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 없는 시골 동네에서, 교회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주고, 크리스마스 때는 연극과 노래도 직접 하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종교 활동을 하기보다는 재미난 놀이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의 주례사’로 불교에 내디딘 첫발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보니 시댁이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대불연(대우조선 불교연합회)에서 활동하는 남편을 따라서 저도 가끔 불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불교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시댁의 집안 분위기뿐만 아니라, 둘째 언니 덕분에 저는 불교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 행자교육 중 향류법사님과 함께(왼쪽)
▲ 두북수련원에서 행자교육 중 향류법사님과 함께(왼쪽)

30년 넘게 성당에 다니던 둘째 언니가 갑자기 절에 다니더니, 너무 좋다면서 저에게 혜거 스님의 금강경 테이프를 건네줬습니다. 호기심에 살펴본 금강경은 너무 재미있었고, 여러 사람의 해석을 모두 찾아볼 만큼 관심이 커졌습니다. 금강경에 이어서 육조단경이 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해결해야만 다음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돈 버는 일 빼고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집중해서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때마침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육조단경 강의 홍보 전단을 보고 무작정 대전의 한 포교당을 찾아갔습니다. 그곳 스님이 “법륜스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그분이 법문을 제일 잘하시는 것 같아요.”라며, ‘스님의 주례사’ 오디오 테이프를 저에게 권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주례사’ 내용 중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속성 자체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하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는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나는 다르다는 착각

이 구절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사랑해서 남편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 착각이었구나. 내가 이익을 얻으려고 결혼해 놓고 꼭꼭 감추고 있었네!’라는 생각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또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런 이치를 깨닫고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넷을 검색해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제대로 길을 찾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을 다니며 경험하고, 혼자 불교 서적들을 보며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롯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찾았지만 첫발을 디딜 사다리 계단은 못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기 시작하면서 첫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사다리 계단을 손으로 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정토불교대학 입학은 제가 아니라, 남편과 시어머니가 먼저 했습니다. 저의 추천으로 2006년 당시, 75세의 시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경전반에 입학할 때까지도 저는 아직 정토 법당에 직접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먼저 〈깨달음의 장〉1에 다녀온 남편이 그 경험을 저와 함께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듬해 겨울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그해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행자교육 도반들과 함께(두 번째 줄 맨 왼쪽)
▲ 문경수련원에서 행자교육 도반들과 함께(두 번째 줄 맨 왼쪽)

봉사활동으로 깨친 이중성

정토회에 들어오기 전, 저는 복지관에서 중학생 아이들에게 수학 가르치는 봉사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 살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부자가 되기는 힘들고,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밥 먹고 살면 됐지. 언제까지 사는 것도 아닌데, 딱 10년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에 결석할 때는 제가 그 아이들 집으로 찾아가 밀린 공부를 가르쳐주고, 가끔 맛있는 것도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새벽에 저에게 전화를 종종 걸어서 “선생님, 지금 엄마, 아빠가 싸우는데, 너무 불안해요.”라며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애정도 부족해서 저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저와의 수업이 끝나면, 저를 따라와 저의 집에까지 들어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에게 제 아파트 동, 호수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냥 아파트단지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다가 돌아가게 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이 남학생들이었고, 아무리 잘 알고 지낸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덩치 큰 남자아이들이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지불식간에 아이들과 저 사이에 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에서 공부하며 제가 아이들을 평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사람을 구분짓고 있었구나. 이건 아니다! 나에게 이런 이중성이 있다니!’ 그 순간 저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고, 결국 그렇게 애착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봉사를 4년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혼자서 가정 법회

행복강연 봉사 중(맨 왼쪽)
▲ 행복강연 봉사 중(맨 왼쪽)

제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담당자가 병가를 냈습니다. 그때는 대전정토회에 활동가들이 많지 않을 때여서, 저는 학생이지만 얼떨결에 정토불교대학 담당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정토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창 가정 법회에 열중하던 그 당시, 저의 집에서도 가정 법회를 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어서 식사를 잘 준비하면 많이 찾아오려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거하게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부담을 주었는지 사람들이 서너 번 와서 점심을 먹고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서 가정 법회를 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법륜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불심이 깊은 한 도반이 매달 200만 원의 임대료를 기부했습니다. 그 덕분에 대전 둔산 법당을 열고 거기서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사계절 불교대학 주야간 8개, 수행 법회 주야간 2개, 교사 법회까지 총 11개 법회를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법회를 운영하는데도 봉사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10년 동안은 봉사하겠다는 다짐으로 학생들 가르치는 봉사를 이미 경험했기에, 정토회 봉사활동은 낯설지 않고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 가르칠 때의 구분 짓는 마음이 사라져 더 가볍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마음을 여니까 정말 법계가 열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에 분별이 없으니 봉사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도 좋았고, 너무 재미있어서 봉사활동이 아니라 모두 다 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와 거의 밤 11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갔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권영숙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글, 편집_김세영, 성지연, 권영숙
도움주신이_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권영숙, 전은정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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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법사님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2-05-16 06:06:26

웃는날

불교대 법사님 질문있어요 배너에 질문올렸었는데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2-05-05 08:56:04

박윤정

법사님 감사합니다 🙏

2022-04-08 07: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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