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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
맞은편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오는 차들을 무시하고 우회전을 하는 나에게 울리는 경적이다. 면허를 취득하고 집에 있는 경차로 막 운전을 시작했을 무렵, 도로에서 나를 향해 울리는 경적 소리는 익숙했다.
그 때의 나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겁에 질린 토끼랄까? 갑자기 앞에 달려가는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을 것만 같고 오른쪽 골목길에서는 차나 자전거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시속 60㎞만 넘어가도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댔다. 시속 40㎞대가 늑대 이리 승냥이들이 활보하는 도로 위에서 내가 그나마 안정감을 느끼는 속도였다.
빵빵!
“아니, 저 택시는 왜 1,2차선을 동시에 밟고 가는 건데!!”
빵빵!
“이봐요, 아줌마! 직진차선이 우선통행이라고요!!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자는 거예요?”
빵빵!
“와~ 저 아저씨는 한 번에 3개 차선을 횡단하시네.”
도로 위 10년차.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적을 울리고 차 안 허공에 대고 빽빽거리는 헐크가 되었다. 가끔 사고가 날 뻔한 순간에는 반대편 차량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때도 있다. 물론 창문은 내리지 못한다. 나보다 센 헐크를 만날지도 모른다.
차 안에 올라타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훅 몸을 감싼다. 짜증이 조금 올랐다.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자 가마솥에서 막 꺼낸 고구마마냥 뜨끈뜨끈 하다. 짜증이 조금 더 차올랐다. 골목길 양 쪽으로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큰 도로까지 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헐크로 변신하기 3초 전.
빵빵!
삼거리에서 마주친 차량과 부딪힐 뻔 했다. 이미 헐크가 된 나는 바로 경적을 눌러댔다. 그러자 이미 또 다른 헐크인 맞은편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쌍자음의 단어들을 내뱉는다.
‘나도 이미 변신완료다. 질 수 없다. 쌍자음의 향연을 펼쳐보자!’
결심하고 내 운전석 창문을 내리는 순간, 맞은편 헐크 뒤로 돌잡이 아기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마주쳤다.
“아기를 태우고 운전을 그리 험하게 하시면 어떡해요?”
내 헐크 변신이 풀리고 나는 곧 순한 토끼가 되어 사근사근 말을 건넸다. 하지만 저쪽 헐크는 아직 변신을 풀지 못했다.
“남이야 뭘 태우던, 쌍자음 쌍자음!!”
한 번은 지인들과 자동차 사고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 10년 무사고에요. 단순 접촉사고도 한 번 없었어요.”
무사고 운전으로 자부심이 가득 한 내 자랑에 누군가 툭 던졌다.
“남들이 잘 피해주는구만.”
이 한마디는 그 동안 내가 운전대를 잡은 모든 순간을 돌아보게 했다. 2차선에 주차된 차량이 있으면 나도 1,2차선을 동시에 밟고 달리기도 했고, 경로를 잘못 알아서 갑자기 좌회전을 해야 할 땐 거의 동시에 차선 2개를 변경하기도 했다. 마음이 급할 땐 멀리서 오는 직진차량을 무시하고 좌회전을 할 때도 있다.
나는 나에게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저 대화를 나눈 시기가, 그 한 마디를 내가 비꼼으로 들을지 나를 돌아보는 깨우침으로 들을지 결정하는 힘이 생긴 정토행자가 된 후였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상대방 차 안에서는 내가 모르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 아픈 아기가 병원 가는 길일 수도 있고, 초행길이라 신호체계를 모를 수도 있다. 또 겁에 질린 또 다른 토끼 운전자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나의 무지가 울리는 경적은 차 안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마주쳤던 이후로 그 빈도가 줄었다. 내가 헐크가 되었다고 해서 마주치는 모든 운전자를 헐크로 가정해버린 나의 성급한 일반화를 깊이 참회한다.
아직도 나는 헐크로 변신하는 능력을 버리지는 못한다. 또 가끔 나도 모르게 헐크가 되었다가 변신이 풀리는 순간에는 ‘누구한테 화내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화풀이 하는 건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한다.
쌩쌩 달려오는 사방의 차들 사이에 끼어 벌벌 떨던 토끼가, 도로 위 무서울 것 없는 헐크로 되기까지. 나에게 수많은 경적을 울려주고 잘 피해가며 무사고 운전자로 키워준 선배운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날려본다.
글.편집_정토행자의하루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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