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송파법당
번뇌가 곧 보리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구절이 딱 잘 어울리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가장 불행했던 사람’에서 ‘나는 상팔자!’라고 당당히 외치게 된 송파법당 최은희 님을 만나 보겠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때, 이혼한 남편과 말썽꾸러기 딸아이로 무척 괴로웠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우스푸어가 되어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습니다. 싱크 홀에 매몰되거나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비행기 사고로 보험금을 타면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고로 죽은 이들을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라고 딸아이에게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가장 무섭다는 ‘착한 여자’ 병에 걸린 ‘가련한 희생자’로 살았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전정각산 아래에서
▲ 인도 성지 순례 전정각산 아래에서

하루에 두 번 출근하다

어느 날 팟캐스트에서 즉문즉설을 접하고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2~3개월 동안 듣고 또 듣던 중 가을 불교대학 모집 안내를 보았습니다. 무작정 입학했습니다. 수업 중 불상에 절하는 의식이 불편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저는 교회에 잘나가지 않았지만, 종교란에 기독교라 표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 걸렸습니다.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듯 스님은 ‘불교 의식은 하나의 문화’라는 법문을 해주었고,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인 덕분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불교대학을 마치자 내 삶에서 일어난 변화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경전반 수업을 들으며, 불교대학 담당 외에 여러 개의 소임을 맡았습니다. 직장에서 퇴근 후 일주일에 4~5차례 법당으로 달려가며 하루 두 번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괴물이 인간으로 변화되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던 제 마음이 정토회 활동에 몰두하면서 어느새 정리되었습니다. 제가 정리되니 자식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올라왔습니다. 스님께 여쭈니 남편에게 참회하라고 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가정파탄의 원인이 남편의 외도에 있는데 ‘저 인간이 참회해야지 왜 내가 해야 하나?’ 하는 반발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스님께서 백일만이라도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해보라는 말씀에 ‘자식을 위해 무엇인들 못 하겠나!’ 싶은 심정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JTS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
▲ JTS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

한 달쯤 지나면서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떠오르며 진정한 참회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물론 사랑하는 자식과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을 괴롭힌 괴물이 바로 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남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나락으로 밀어뜨렸던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남편과 딸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기도한 지 3년이 되어갈 무렵 ‘이만하면 됐다.’는 느낌과 드디어 내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딸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겼는데 오히려 내가 그들을 괴롭힌 괴물이었고, 그들 덕분에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토불교대학으로 인연 맺어진 정토회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던 제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로 바뀌었습니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상팔자!’라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만약 제가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세상의 잣대에 휩쓸려 재물, 권력, 인기 등을 부러워하며 '불행하다' 여기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정말 아찔합니다.

인도 성지 순례 시 룸비니 마을 아이들과 함께
▲ 인도 성지 순례 시 룸비니 마을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딸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번뇌였던 두 사람은 저에게 보리가 되었습니다. 수행 초반에 남편에게 감사하다고 기도하지만, 정작 마주 대하면 예전의 앙금이 되살아나 곱지 못한 말투가 튀어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요즘에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이 자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스님 말씀이 신경 쓰였습니다. 참회의 기도로 저와 남편의 관계가 좋아졌지만, 자식들은 제 아빠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도 아빠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애들 아빠 생일을 아들 집에서 지냈습니다. 며느리가 손수 준비한 생일상을 받으니 남편도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이처럼 가족 간의 관계가 두루 원만하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세계여행을 접고 봉사의 세계로

퇴직 후 '문경살이 49일'을 하고 싶었으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제주도 한 달살이’를 떠났습니다. 제주에서 돌아온 후 40일 일정으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이듬해에 친구와 두 달 일정으로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과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인도로 명상여행을 3달 반 다녀왔습니다. 짬짬이 문경과 지리산 수련원의 바라지를 하며 2019년에는 2년 일정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로 핀란드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헬싱키와 독일에서 한 달가량 여행을 하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터키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이집트로 가려던 차에 몸이 아파 5개월 만에 귀국하였습니다.

지리산 수련원에서의 바라지
▲ 지리산 수련원에서의 바라지

집에 돌아와 건강도 회복하고 좀 더 알찬 여행을 위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까지 다녀와 지난해 1월에 다시 세계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난데없는 COVID-19로 발목이 잡혀 규제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던 중 불현듯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퇴직 후 3년은 봉사를 하는 것이 좋다” 메아리처럼 울렸습니다. 즐거움을 안겨준 여행이었지만 아무리 좋은 곳을 수없이 찾아다녀도 항상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고와 락’은 한 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접고 봉사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나

제가 맡은 경전반 꼭지는 봉사와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알 먹고 꿩 먹는 일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법당에서 하던 수업이 온라인으로 급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컴퓨터나 새로운 기계 조작을 빨리 배워 남에게 알려주기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나이 탓인지 새로운 것에 반발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해 ‘항상 하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을 체득하였습니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하려다가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제법무아’가 다가왔습니다.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1년간 경전반 담당을 하면서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고 실행하면 중생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구제하게 된다’는 법문 역시 이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손발이 가져온 사과를 받아먹기만 하는 입을 신체의 다른 부위가 시샘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심오한 연기법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경전반을 맡았던 선배 도반들이 “담당을 하면 학생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다.”라고 했던 경험담을 공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작한 봉사였는데 가장 큰 수혜자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차제걸이 전법

제가 행복하니 좋은 법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전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수행법회 중 정토불교대학 학생모집을 위한 ‘차제걸이’ 홍보영상을 보았습니다. 재미있고 용기가 났습니다. ‘전법에 걸려 하는 나를 이번 기회에 넘어보자’ 하며 부처님의 탁발 원칙을 따랐습니다. 지인들의 성향이나 반응을 고민하지 않고 핸드폰에 저장된 순서대로 홍보영상을 보냈습니다. ‘나는 다만 법을 안내할 뿐이고, 응하고 응하지 않음은 그들의 몫이다’라고 되뇌며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참여할 것 같다’라고 여겼던 사람은 반응이 없고, 참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학교와 불교대학에 지원했습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오는 망설임을 내려놓고 가볍게 안내하니 저도 자유롭고 상대방에게도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차제걸이 전법이 신기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수행자이지만 제가 누리는 이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보겠다는 마음을 내어 봅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길로 보살이 되겠습니다.


하루 동안 차제 걸이로 50여 명 지인들에게 불교대학과 행복학교 홍보를 하셨다는 최은희 님! 핸드폰과 씨름하느라 눈이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음성에선 즐거움이 묻어납니다. 자유롭고 가벼운 수행자의 에너지 덕분에 저도 절로 행복해졌습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글_최은희(송파정토회 송파법당)
정리_허경선(송파정토회 희망리포터)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 김해법당)

전체댓글 22

0/200

조미미

그곳에 행복학교
등록하려면 어떻게해야하나요

2021-04-09 19:26:41

최미희

보살님
불교대때부터 진짜 열심히 하시고 불교대담당 봉사랑 기도도 열심히 하시더니 역시 ~~
보살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던 인연, 영광입니다

2021-03-25 19:22:02

진선옥

저희 경전반 꼭지님이셨습니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이끌어주셔서 다른 이면에 저렇게 힘든 시간을 겪으신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온라인 강의만 아니었으면 인간사 & 세계사 다양한 경험담을 직접 들을수있는 좋은 기회였을텐데 놓친듯하여 아쉽습니다....만...언젠가 좋은날이 오면 그때 다시 뵙고싶습니다^^

2021-03-24 14: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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