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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가부장적이고 늘 무서웠던 아버지와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 아래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늘 부족함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난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 마는 성격이라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2년간 신문배달해서 꼬박꼬박 돈을 모았고, 갖고 싶어 하던 자전거도 사고, 부모님께 내복을 사다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중학교땐 영어경진대회 3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 했지만, 가정형편 탓인지 아버지께서는 “앞으로는 기술이 최고다!” 하시며 기술학교 진학을 권유하셨습니다. 농사일이 정말 싫었던 저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도시로 갔습니다.
시골과 다른 낯선 도시생활에서 오는 괴리감과 적성에 맞지 않는 진로 선택으로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마음 속에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와 어른에 대한 불신은 세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뀌었고, 세상을 내맘 대로 하고자 하고, 모든 기준도 내가 정한 기준이어야 한다는 고집과 집착도 생겨났습니다. 한마디로 나 잘났다, 내가 옳다 하는 기준을 가지고 살며 타인을 바꾸려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다 보니 대학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힘에 대한 욕심이 생겨 대학땐 학생 회장을 하고, 회사에서도 일찍 리더가 되려 했고, 아파트 동대표까지 나서며 어디서든 자리에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에 대한 교만은 늘어갔고 그러다 보니 늘 다툼이 있었고, 내 뜻대로 안되면 화만 더욱 증폭되어 갔습니다. 나와는 반대의 성격인 지금의 아내는 그때의 내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결혼 생활도 신혼이 지나가고 첫째가 태어나면서 부터 싸우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고, 뭐든지 내 맘대로 하려는 성격에 아내는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부부싸움 후,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체벌까지 하였고, 그런 상태는 직장생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행복하려고 사랑해서 선택했던 결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하고 자주 반문하게 되었고, 해답을 찾고자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재미와 독특하지만 핵심을 꿰뚫어보는 스님의 글에 많은 매력을 느꼈고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또한 상대가 바뀌기만을 바랐던 제 모습이 아주 조금은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관점과 시선은 나를 돌아보지 않았고, 좋은 말씀은 내가 아닌 아내에게 적용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바람과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결국 저는 아내가 교육 좀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켜 하지 않는 아내를 천안정토회에 입학시켰습니다. 맞습니다.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주변을, 세상을 내 맘대로 하고자 했습니다. 자기표현을 잘 안하는 아내는 정토회 다녀온 날이면 늘 표정이 좋았고 밝아져 있었습니다.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아내를 보고 호기심에 저도 2017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법문이 어려웠고, 속마음을 내어 놓기가 부끄럽고 어색해서 마음 나누기보단 법문이나 생각 나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진솔한 도반님들의 나누기와 배려로 조금씩 마음을 꺼내 놓으니 오히려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불교대학 프로그램 중 “수행 맛보기”에서 시작한 절이 궁금해 책도 읽고 유투브도 찾아보며 따라했고, 108배 절을 하고 나면 개운하고 차분해지는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매력에 매일매일 하기 시작할 무렵 담당 도반님의 추천으로 깨달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1은 나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4박5일을 온전히 나에 대한 생각만 하면서 지난 삶을 뒤돌아보았고 나를 위한 그 시간은 목표와 책임감만으로 달려온 내 삶에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무지 속에서 세상에 휩쓸리듯 살며 욕심과 집착으로 뭉친 저 자신을 목표와 책임감이란 미명으로 합리화하면서 살아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눈 녹듯 녹았을 뿐 아니라 이해와 감사 그리고 아버지를 미워했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잘 없었던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법문은 저에게 단비와 같았고 도반들과의 나누기는 늘 감동과 깨달음이 함께 하였습니다. 천일결사에 입재하고 기도를 해나가는데 스님 말씀대로 80일쯤 지나니 내 안에 욕심, 화, 상처가 보였고, 지난 과거 속에 부끄러운 제 모습과 그로 인해 상처 받았을 인연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절을 하며 흘러내렸습니다. 어릴 적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 감내하려 하고, 강한 척 했지만 외로워했던 제 모습이 보여 측은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목표를 이루어야 행복이 주어지는 줄 알았지만 승진을 하거나 자격증 따거나 집을 사도 행복의 시간은 길어야 2~3주였습니다. 나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내 욕심과 고집은 나를 옥죄었고 병들게 했으며, 불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밝은 미래라고 생각하고 매번 다른 목표를 정해서 현재를 희생하고 죽어라 달려왔던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 회사 동료들, 주변 모두에게 참회하는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꾸준한 기도를 통해 나를 알게 되니 나와 다른 남이 보였고, 이해하는 마음의 크기도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니 비로소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겨나면서 상대의 입장이 이해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스님의 법문처럼 감사한 마음이 생기니 풀 한 포기 낙엽 하나까지 이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매일의 기도와 감동의 마음나누기는 수행이 흐트러질 때쯤 다시 정신을 차리게 했고 보왕삼매론은 같은 글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르게 와닿는 구절에 매일 다른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수행을 통해 요즘은 매일 매일이 행복합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상도 많이 좋아져 회사에서도 사람 좋다는 이야기도 곧잘 듣고, 선후배 사원들과의 관계에서도 더 편안히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아내도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경전반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며 본인의 업식을 이겨내고자 하는 모습에 너무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절하면 아이들도 따라 하며 곧잘 코치도 해줍니다. 지난주에 발심행자2 법사님과의 대화 이후 지난날 화내고 체벌했던 아들 보기가 부끄러워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는데 이 녀석이 "아빠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하는데 그 순간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고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습니다. 수행이 아니었다면 나 잘난 맛에 아이들을 고치려고만 했을 것이고, 내가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듯이 커가면서 똑같이 나를 미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참 아찔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수행을 통해 내 인생이, 아내와 아이들의 삶이 더욱 밝게 바뀌었습니다. 또한 나만의 이익과 욕심으로 살아왔던 내가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이치를 깨닫고 가족을 넘어 이웃, 세상의 기아와 질병, 환경까지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인연되는 모든 이들과 세상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겠다는 큰 원도 가져 봅니다. 두터운 내 업식들이 정토회 기도 수행을 통해 조금씩 끊어내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욕심은 내지 않습니다. 매일의 기도수행으로 맑은 물 한 방울을 더해 가며 흙탕물이 옅어져 깨끗해지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다보면 오즈의 마법사처럼 그 원들이 이미 이루어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파랑새는 이미 제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여러 도반님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고 힘이 납니다. 이 글을 통해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화현하신 작은 부처님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무지와 어리석음, 두터운 업식으로 가끔씩 농구공이 안 들어갈 때도 있지만, 안 들어간다고 실망하지 않으며 다시 일어나 또 던지고 던지며, 절대 농구 코트는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글_이일재(천안정토회 천안법당)
정리_박연우(천안정토회 천안법당)
편집_이정선(진주 정토회 진주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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