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김천법당
남편이 도반입니다

‘활짝 핀 벚꽃같다’ 김천법당 이미란 총무를 첨 봤을 때 든 생각입니다. 밝은 웃음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활기를 주는 김천법당 이미란 님. 문득 돌아본 삶에서 허전함을 느꼈을 때 만난 정토회. 봉사자로서 서툴지만 당당히 걷는 걸음은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정초법회 ( 맨 앞줄 오른쪽 네번째 )
▲ 정초법회 ( 맨 앞줄 오른쪽 네번째 )

삶의 의지처를 찾다

고만 고만한 아이 넷 청년으로 키워내고 이런 저런 삶의 굴곡들도 지나고 나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년이 되고 갱년기가 시작되자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탄탄한 의지처를 갖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따라 간 김천문화원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고 속이 뻥 뚤리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 때 기분으로 지나갔을 뿐 정토회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토회에 먼저 간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길거리 현수막을 보고 불교대학에 입학한 남편의 맘속에, '속이 뻥 뚤렸다'는, 제 말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남편도 뭔가 허전했던 것일까요? 제가 정토회에 발 디딘 계기는 남편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생전 부엌 들어가는 일 없었던 남편이〈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뒤에 설거지는 물론 밥도 해주는 것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정토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눈치를 알아 챈 남편이 '불교대학 입학금을 냈다'면서 정토회에 같이 다닐 것을 권했습니다. 못이기는 척 슬그머니 정토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허름한 건물인 법당에서 스님 영상으로만 법문을 듣는 수업은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자주 결석하면서 겨우 졸업했습니다. 그래도 바로 이어서 경전반에 입학했고 수업을 듣던 어느 날 뒤통수를 얻어맞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

금강경 구절을 색안경에 비유해서 설명해주시는데, 그 순간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제껏 내가 색안경을 끼고 살았구나 ! 괴로움을 없애려면 내가 쓴 색안경을 벗어야 하는구나! ’

환희심이 들고 제가 가진 상을 없애고 싶은 원이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경전반 수업뿐 아니라 정토회의 모든 활동과 봉사에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지처를 찾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반인 남편과
▲ 도반인 남편과

과거의 고난들

사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는 지난 과거가 고난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집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비교적 부농인 아버지는 농사일 보다는 밖으로 돌았고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 화는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집이 싫었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집이 그리울 때도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 ’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빠질 틈이 없이 친정은 큰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아버지의 몇 차례에 걸친 선거 출마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낙선한 조합장 선거, 시의원 선거.

결혼하고 고만고만 손 많이 가는 아이들 키우고 있을 때 친정집마저 빚에 넘어갔습니다. 동생들과 조금씩 돈을 모아 부모님께 집을 마련해드렸고 빚도 대신 갚았습니다. 친정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무렵 시어머니의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당신 아들에게 며느리가 대하는 것이 못마땅하셨던 모양입니다. 딸 여섯 낳고 얻은 8남매의 장남이니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평소 제게 잘해줬고 여장부 같은 분인데 술을 마신 날은 욕설이 심해서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호되게 당하는 저를 보면서도 효자인 남편은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그저 제 어깨나 토닥여 주었습니다. 그런 남편이 야속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과 다툼도 잦아졌고 , 저는 시댁 흉보기로 분풀이를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 넷 키우면서 혼이 빠지는 날이 이어지면서 사는 게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꾸준함으로 장애를 넘다

정토회 만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지옥을 만든 것은 내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후 불교대학 담당자로 봉사 할 기회가 주어져 법문을 다시 듣게 되고 경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천일결사1 입재식2날 도반들 맞이하는 봉사자가 불참해서 대타로 나갔다가 얼떨결에 입재도 했습니다. 꾸준히 3년을 정진하고 나서 9차 천일결사 회향하는 때 문경에서 3000배 정진도 했습니다. 이 때 대중을 대하는 법륜스님의 겸허하고 정성스런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10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면서 저는 김천법당 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그냥 즐겁게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니 컴퓨터로 인한 장애가 왔습니다. 컴맹 수준이라 일을 할 때는 두려움이 커져서 숨이 막히는 듯도 했습니다. 또 일하는 방법의 차이로 도반들과 부딪히면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습니다. 봉사하면서 이렇게나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으니 괴로움이 생겼습니다. 이 고비에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300배 정진을 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첨에는 도반들을 원망하고 욕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 업식이 일으킨 것'이라는 확연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탁 부딪히는 순간의 내 마음을 먼저 받아주었습니다. 그다음 상대방 마음을 짐작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상대방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부딪힐 때 분별하기 보다는 나를 먼저 보는 힘이 좀 생겼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자존감도 커졌습니다. 나와 남을 인정하는 아량도 생겼습니다. 컴퓨터 다루는 능력도 도반들 덕에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 인도 성지 순례

매일 남편에게 3배로 보답하다

제가 총무 소임을 할 수 있게 가장 큰 도움을 준 도반은 남편입니다. 처음 저를 정토회로 이끌어준 사람도 남편입니다. 기꺼이 총무 소임을 맡을 수 있게 격려하고 양해해준 남편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제게 불편함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로서 역할보다 법당 총무로서 역할이 크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남편과 내놓고 다툼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인체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도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정진에 참가했고 그 때 명심문이 상대를 배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천과제로 매일 아침 남편에게 3배를 했습니다. 남편도 저에게 3배를 했습니다. 이 과정으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법당 모둠장 소임을 하면서 총무인 아내에게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3배를 하면서 아내이자 총무인 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진이 끝난 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솔직해졌고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남편은 모둠장 소임과 활동가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가장 잘하는 일이 맛있는 밥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 아침밥 차려줄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JTS 거리모금 ( 앞줄 가운데 아이 안은 )
▲ JTS 거리모금 ( 앞줄 가운데 아이 안은 )

전법의 모델이 되고 싶다

저의 큰딸은 행복학교3에 입학했고 둘째딸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법한 것이 큰 기쁨입니다. 저희 부부의 활동이 좋아 보였으니 아이들이 정토회에 발을 들였겠지요. 앞으로도 저는 행복해지는 길을 주변에 당당히 전하고 싶습니다. 컴퓨터 켜는 것도 어려워하던 제가 성장하는 모습이 소임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저보다 더 서툰 도반들을 도울 수 있다면 큰 보람일 것입니다. 한 발 한 발 내딛고, 한 뼘 한 뼘 자라는 저와 함께 해주시는 모든 도반들 감사합니다. 도반들이 저의 스승입니다.


드라마틱한 수행담이 아니라고 조금은 수줍은 듯 얘기를 시작하더니, 깨달음의 순간을 말할 때는 진지했고 활동을 말할 때는 화통했습니다. 이미란 님의 꾸준한 수행의 길이 아름답습니다.

글_희망리포터 윤정인 (달서정토회)
편집_한숙 (서초정토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3.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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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선

드라마틱해요
짧은 시간에 가족이 다 같이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소속이 됐다는 것이 축하합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어요
백팔배 빠지지말고 꾸준히 해야겠다 나늘 돌아봅니다.

2021-01-08 12:45:37

박신영

이미란님의 수행담에서 남편과 같이 도반이 되어서 서로의 속마음을 나눌수 있고 서로에게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2-30 06:03:41

강상원

가족이 도반인 경우 더욱 배려하고 존중해야함을 배웁니다.

2020-12-28 16: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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