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광산법당
새벽을 여는 감꽃 같은 수행자

광주 광산법당 개원부터 2년간 새벽집전을 맡았고, 지금도 새벽예불에 참석하는 기순덕 님. 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새벽을 맞으며 광주로 향했습니다. 기순덕 님은 광산법당에서 통깁스를 한 채로 여여하게 새벽 정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했다는 기순덕 님이 맡았던 소임을 세보면 무척 많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기순덕 님의 삶을 변하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부터 그 수행이야기 속으로 출발합니다.

저는 1993년 9남매 중 막내인 남편이랑 서울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편찮으신 시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2년만에 시댁이 있는 무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엄격하신 친정아버지는 어려워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습니다. 반면 시댁은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와 애교 많은 시어머님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할머니 요강 담당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편찮으신 시어머님을 막내지만 저희가 모시자고 남편을 설득해 무안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제게 시어머님 병간호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꽃반지
▲ 꽃반지

시부모 병시중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시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아 두 분의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두 딸이 할머니를 좋아했습니다. 딸들이 집에 친구들도 잘 데려오고, 활기차서 시부모님 병간호가 힘들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 치매 증상으로 돌보기가 힘들어지면서 종교를 갖고 싶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의 대소변을 받아낸 지 10년 즈음,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를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왼쪽 두번째)
▲ 부처님 오신 날(왼쪽 두번째)

도심에서 불교 공부를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불교 공부 해보실래요?”라고 권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려면 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도심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해 보니 마침 그 날이 2013년 가을 불교대학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대학이라고 해서 일반 대학교로 생각하고 짧은 치마와 정장 차림으로 갔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불교대 입학식(첫번째 줄 제일 오른쪽)
▲ 불교대 입학식(첫번째 줄 제일 오른쪽)

내성적인 저는 나누기에서 제 마음을 이야기할 때가 무척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했으니 2년은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꾸준히 다녔습니다. 수행맛보기에서 시어머니 병간호할 때 시어머니께 서운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님께서 홍시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드렸더니 '쥐 뜯어먹은 거 줬다'고 역정을 내서 종일 울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어머니께 어떻게 해 드렸는데라는 생각에 서러웠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상처로 남았습니다.

수행맛보기와 나눔의 장1에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 산소에 가서 혼자 말해 보았으나 서운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수행맛보기 나누기와 나눔의 장에서 '내가 시어머니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었구나. 가벼운 치매 증상으로 정을 떼는 과정이었는데 내가 상처를 받고 서운해했었구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일에도 큰 상처를 받은 저를 알아차리니 가벼워졌습니다.

JTS 거리모금(두번째줄 왼쪽에서 세번째)
▲ JTS 거리모금(두번째줄 왼쪽에서 세번째)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깨달음의 장2에 다녀오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누구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동안은 친정아버지의 엄격한 성격으로 부모 자식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한 저의 성격 때문이었음을 알고나니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소심했지만, 긍정적이고 한결같은 성격의 저는 10년간 병간호 하면서 효행상을 받고, 직장에서는 우수상 표창도 받았습니다.

정토회 와서 여러 소임을 맡았습니다. 경전반 학생 때 경전 담당과 집전을 했고, 졸업 후에는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을 했습니다. 또 불교대학 모둠장과 수행법회 담당, 새벽예불 집전 소임에 이어 현재는 통일특위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원래 낯가림이 있고 발표를 못 해 나누기가 부담스러웠던 제가 지금은 속마음도 가볍게 말합니다. 낯가림이 없으니 학생들도 저를 편하게 생각합니다. 정토회를 다니며 제 습이 조금씩 바뀐 것을 알겠습니다.

시숙이 저희 전 재산을 날렸을 때도 괴로워하지 않고, 슬기롭게 넘겼습니다. 아마도 수행이라는 예방주사를 미리 맞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수행하라고 하나 봅니다.


시어머니의 병시중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통깁스를 한 채로 새벽예불을 진행하는 모습. 어린 시절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감나무 아래로 뛰어가 꽃반지, 꽃목걸이를 만들며 놀았다는 기순덕 님의 얼굴에서 소녀 같은 감성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_전미숙 희망리포터(광주정토회 광산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 김해법당)


  1. 나눔의 장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입니다. 

  2.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전체댓글 15

0/200

박혜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자극이 되어 저도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7-25 20:14:00

변상용

대단하시단 생각 밖엔 안 나네요. 벌써 많은 복을 지어 놓으셨네요. 그걸 바란건 아니겠지만요 ^^
아이들의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가 보여주는 것이 확실한 듯 해요. 감동이었습니다~

2020-07-01 08:17:38

관음성

한번도 뵙지 않았지만 마음이 얼마나 크고 푸근하실지 짐작이 갑니다. 시부모님 병간호 하시는 그 긴 시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셨다는 그 마음.. 살아가시는 삶에 복되게 돌아 오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나날이 행복한 수행자이신거 같습니다

2020-06-30 20:27:23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광산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