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음성법당
내가 편안해지니, 주변도 편안해지네요!

어느 멋진 가을날, 충주에 이웃해 있는 음성법당에 다녀왔습니다. 부총무 소임을 맡은 박진옥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이 진행되는 데에서 남다른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정토회와 함께한 11년의 시간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아홉 번째 딸로 태어남

저희 엄마는 딸만 내리 일곱을 낳고 귀하게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곤 자신감을 얻어서 아들 형제 보겠다고 하다가 딸인 저를 낳았습니다. 안 그래도 예쁘지 않았을 막내딸인데, 애교도 없고, 고집 세고, 반항적이었으니, 부모님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맞으며 자랐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면 억울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저러해서 그랬다고 하면 말대답한다고 또 혼났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그 한마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표현했지만, 부모님께는 그것이 반항으로 느껴졌나 봅니다. 그때 억눌리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 때
▲ 동북아역사기행 때

부모님에 대한 원망심을 놓아버리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던 2006년 여름 어느 날, 곪았던 게 터지듯 화병과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착한 남편과 순한 아이들, 아무 일 없이 비단이불 덮고 잘살고 있는데, 마음은 알 수 없는 불안과 화로 가득 찼습니다. 화가 차오르면 한 번씩 뛰쳐나가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엄마, 짜증 많은 아내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2007년도에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이듬해 청주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오고, 부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꾸준히 하면서 제 마음의 상처를 퍼내고, 퍼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에 대한 원망심을 놓아버리니 막혔던 숨이 트이면서 살 것 같았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덧씌웠던 요구들을 내려놓고, 그냥 한 사람으로 바라보니 이해와 연민의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안 되듯이 그분들도 그래었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니, 집안도 편안해지고, 주변도 차츰 편안해지면서 수행, 보시,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참 신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반들과 점심공양후(왼쪽에서 두번째가 박진옥 님)
▲ 도반들과 점심공양후(왼쪽에서 두번째가 박진옥 님)

봉사하며 수행하며

청주법당에는 젊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가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나 문서 일이나 선뜻선뜻 받아서 하면 칭찬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칭찬을 못 받고 자라서인지, 그 맛에 더 신나게 봉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총무님으로 바뀌었는데 맞추지 못했습니다. 정토회 입문 후, 첫 번째 고비였고, 내 안의 고집, 공격성을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던 중에, 당시 정경주 국장님(현재 향류 법사님)의 권유로 대전충청지부 사무국에 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정도 사무국 일을 참 신나게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의 고비가 있었지만 법사님들, 선배 도반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다가 충북 음성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2015년도에 음성법당을 개원하게 되면서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친화력도 리더십도 부족한데 부총무 소임을 맡아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작은 법당이지만, 전반적인 모든 일을 다 책임져야 했습니다. 온갖 사람이 오고 가고 하는 걸 겪어내는 4년여의 세월이 저에게는 정토회 11년 중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독재 근성과 완벽주의, 급한 성질, 온갖 업식이 춤을 출 때,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은 수행뿐이었습니다. 음성법당 개원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한 300배는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는 정토회 인연 10년 되는 해라는 의미도 있고 해서 매주 한 번 1,000배 정진을 1년간 작정하고 했는데, 그때가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

덕생 법사님이 부총무 소임의 핵심은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원래 남한테 부탁하는 거 싫어하고, 듣기 싫은 소리 요만한 것도 못 듣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같이 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스타일인데, 소임 하면서 늘 부탁해야 하고, 좋은 소리 싫은 소리 다 들어야 하니 부대낍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을 보는 게 가장 큰 수행이었습니다.
이제 집에서는 대체로 편안한데 법당 일을 하다 보면, 온갖 마음이 일어납니다. 잘하려 하고, 빨리하려 하고, 도반들에게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고 바라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불편한 마음 지켜보면서 정진으로, 때론 법문 듣고 알아차리지만, 돌이키기 전에 튀어나와 도반과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럼 또 참회하고, 그렇게 일하면서 도반들과 맞춰가며 하는 공부가 정토회만의 아주 효과적이고 특별한 수행법인 것 같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이지요. 소임을 감당하려니 정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좋으나 싫으나 정진하면서 오다 보니, 시작할 때보다 많이 성장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

2014년도에 법륜스님과 활동가들이 갔던 인도 성지순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다니는 내내 울면서 다녔습니다. 지금도 인도 성지순례 홍보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옵니다. 길이 안 보이는 길을 가고 있는 느낌, 아무런 모델도 없고, 멘토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함이 느껴지던 때 불법을 만났고, 스님의 법문을 만났고, 이렇게 살아났습니다. 이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찔해집니다. 이 길을 찾아내신 부처님, 그리고 지금 삶에 적용할 수 있게 풀어주시고, 끊임없이 지도해주시는 스승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감사의 차원을 넘어선 감동이 다니는 내내 밀려왔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은 부처님 법 만난 것입니다.

인도 성지순례 때 기원정사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 인도 성지순례 때 기원정사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정갈하고 깔끔한 음성법당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사는 날까지,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내내 수행자로 사는 거지요."
박진옥 님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충주로 돌아오는 리포터의 마음도 깊고 고요해졌습니다.

글_최익란 희망리포터(청주정토회 충주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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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8-11-06 19:59:15

대지심

마음 나누기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난 느낌입니다.
나누기하며 딸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지~
그 아이의 마음을 보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8-11-05 06:53:39

김지은

박진옥 보살님~감동입니다. 함께 일할 때 기억도 나고 인도성지순례도 떠오르네요. 간간히 얼굴 뵐 때마다 참 반가웠는데 이렇게 나누어주시니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고 든든합니다~~

2018-11-01 16: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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