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프랑크푸르트법회
쉰 살 생일을 기념한 문경 바라지장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만큼이나 편안하고 잔잔한 아우라로 늘 법당일과 주변 분들을 챙기는 프랑크푸르트법회 조윤경 님,
한국까지 원정 바라지를 다녀오셨다고 하는데요, 그 수행담을 함께 나눠봅니다.

독일에서 맞은 지천명에 즈음하여

법륜스님의 《금강경 이야기》를 읽고 경전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2014년 봄 프랑크푸르트법회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자신의 마음 변화에 훨씬 민감해졌고, 그 원인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얘기하십니다. 외국에서 살다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보통 체류 시간이 길지 않아 가족들과 지인을 만나기도 빠듯한데, 작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간 따로 시간을 내어 문경수련원 <깨달음의장> 바라지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여름, 주변에서 자꾸 올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왔습니다. 가을에 돌아올 제 생일을 놓고 묻는 소리였습니다. 한국에서 환갑에 큰 의미를 두듯, 독일에서는 오십을 크게 생각합니다. 외국 나와 살면서 생일파티 한번 해 본 적이 없는데 오십이라고 새삼 시끌벅적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주는 무게를 생각해 보는 날들은 많아졌습니다. 이 나이를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지천명이라 했는데 나를 보낸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싶다가도 또 한편 이렇게 늙는구나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한층 세상에 마음이 열리고 감사하는 날들이 많아진 덕분인가, 아침 기도 후 문득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오늘 이 자리에 이만큼 살아있음에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이 솟았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잘 지내온 제가 대견하기보다 저를 키워주고 지켜준 세상에 감사한 마음이 훨씬 컸습니다. 저도 작게라도 뭔가 보답하고 싶어졌습니다. 늘 한국을 그리워하기 때문인지, 정토 바라지장이 떠올랐습니다. 오롯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잘 쓰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흔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생일을 기회로 음식을 장만해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감사하고 충만한 기분이었습니다.

법륜스님의 희망 세상 만들기 강연에서 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에 조윤경 님
▲ 법륜스님의 희망 세상 만들기 강연에서 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에 조윤경 님

문경수련원, 아름다운 자연 속에 쉬다

산속이라 춥다기에 겨울옷까지 한 짐 챙겨 배낭을 메고 생일 선물로 받은 침낭까지 들고 정토 문경수련원을 찾아갔습니다. 독일에서 <깨달음의장>을 한지라 처음 가는 길이었습니다. 잘 찾아가려나 했는데, 문경수련원 가는 버스에서부터 수련원 가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팀까지 나눠가며 택시를 타고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에 수련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저 아랫동네까지 활짝 열려 보이는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희양산은 참으로 강건하고 위엄 있어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대웅전에 홀로 들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한동안 물끄러미 앉아 있었습니다. 평온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바라지 온 분들과 인사하고, 팀장님과 담당자님들로부터 안내받고, 소임을 나누고, 그렇게 바라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러 다시 찾은 대웅전 앞에 서서 어둠이 내린 희양산 능선과 하늘에서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 코끝이 찡하면서도 가슴 깊이 시원한 밤공기가 너무도 매혹적이었습니다. 참으로 축복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우주 안에 있고, 우주가 내 안에 있었습니다. 산사의 밤이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울 줄이야... 나를 내놓고 그저 쓰이겠다 했는데, 한 일도 없이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이틀 만이라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첫날은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나를 맡겨본다 마음먹었기 때문인지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겨우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불이 환히 켜집니다. 다들 말없이 일어나 조용히 자리를 정리합니다. 차갑고도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새벽 예불을 하러 올라가며 하루를 엽니다. 수련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같이 대웅전에서 아침 예불을 드리니 마음이 한결 경건해지고 정신이 모아졌습니다.

공양 바리지 동기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 첫 번째 조윤경 님
▲ 공양 바리지 동기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 첫 번째 조윤경 님

공양 바라지, 먹는 일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길

추석 때 연휴가 길어 많은 사람이 <깨달음의장>을 하고 간 뒤라 그런지, 이번에는 <깨달음의장>에 오신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아 바라지 수가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팀장님은 소일거리가 부족해서 우리가 심심할까 걱정하셨다지만, 저는 덕분에 매사 여유가 있어 좋았고, 여유가 있으니 한결 정성을 쏟게 되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매번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하는 명심문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공양준비를 하면서 <깨달음의장>에서 자신과 씨름하고 있을 분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각자 나눠 음식을 준비했지만,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는 우리 마음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간섭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마음과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이 제대로 어우러져 공양간 분위기는 조용하면서도 화목했습니다. 음식을 완성하고 가져갈 준비를 마치면 우리는 공양간을 나왔습니다. 나중에 설거지하러 가서 돌아온 그릇을 보며 다 비어 있으면 뿌듯해하고, 남은 찬이 많으면 음식이 별로였나, 마음고생들 하느라 못 드신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먹는 이들의 표정이나 평가를 보고 듣지 못하니 ‘다만 할 뿐’인 마음도 챙기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하는 발우공양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순간이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퇴수물 따를 때 후회하게 됩니다. 내 손으로 그릇 씻은 물에 떠 있는 고춧가루나 양념 찌꺼기를 마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면서도 가장 별생각 없이 후딱 해치우는 일이 먹는 일인데, 깨어서 내 앞에 놓인 음식에 감사하고 끝까지 그에 예를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음식을 잘해서 바라지 온 것도 아닌데, 수련원에 있는 분들은 우리를 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재료준비 다 되어있는 공양간에서 팀장님의 지휘하에 요리법 놓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문경수련원 식구 전체 공양을 준비하는 공양간 일과 비교가 될까 싶었습니다. 수련생들의 공양을 준비하다 보니 우리 공양 때마다 준비해주신 음식에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독일에서 그리운 나물, 두부, 버섯, 채소들은 너무나도 맛이 있었습니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벤치에 누워 따뜻한 가을 햇살 속 맑은 바람을 느끼며 낮잠 자는 행복도 누렸고, 바라지 오신 분들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즐거움도 느꼈습니다.

저녁예불과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매일 밤 바라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다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분들이라 가볍게 자신을 내놓을 줄 아셨습니다. 가볍게 내놓은 이야기의 묵직한 무게에 많이 놀랐습니다. 각자의 어려움을 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심이 들었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사건사고들로 걱정될 때도 많았는데 바라지 오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백일기도 입재식: 앞줄 왼쪽 두 번째에 조윤경 님
▲ 프랑크푸르트 백일기도 입재식: 앞줄 왼쪽 두 번째에 조윤경 님

더 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낯설게 시작한 4박 5일이 어느새 끝이 났고, 하루하루 물들어 가는 가을 문경에 친숙해졌습니다. 마지막 날 공양간 대청소까지 시원하게 마치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오롯이 남을 위한 시간을 보내 보겠다고 온 곳인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끝이 난 것 같았습니다. 많은 분이 독일에서 와서 귀한 시간 내주었다고 하셨지만, 저는 독일 살면서 보낸 한국 휴가 중 가장 귀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게 한정된 시간이었기에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내게 주어지는 대로 해보는 시간을 마음 편히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어지는 대로 일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쉬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주어지는 대로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어수선하고 복잡해서 늘 이렇게 하는 게 맞나부터 생각하게 되는 게 현대인의 삶이지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도, 지금 여기 그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일 것입니다. 믿고 나를 맡길 수 있었던 정토 바라지장에 감사드립니다.
오십을 제대로 넘고 보니 오십이란 나이는 좋은 나이다 싶습니다. 인생의 경험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이고, 젊은 날 남들 따라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적당히 놓을 줄도 아는 나이이고, 뜻한 대로 다시 한번 인생을 설계할 수도 있는 열정이 남아있는 나이입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조금씩 조금씩 물들듯 달라진 제 모습과 그 길에서 만나게 된 많은 새 인연들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윤경 님이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가 가깝지 않아, 차라도 한 잔 나누면서 들어야 할 소중한 이야기를 먼 거리를 핑계로 서면으로 건네받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법우님의 수행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나와 소통이 되는 사람, 되지 않는 사람 등으로 나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남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는 조윤경 님, 나아가 세상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만나는 그런 길을 걷고 싶다고 조심스레 답하는 조윤경 님의 모습에서 ‘다만 할 뿐’인 수행자의 모습 이전에 아름다운 인간 본연의 진면을 마주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따스함과 평안함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좋은 이야기 함께 나눠주신 조윤경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글_임진선 희망리포터 (뒤셀도르프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원서접수 기간 : 2018. 3. 25 (일)까지

문의 : 02-587-8990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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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연

최고의 생일선물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2018-03-30 21:50:17

임진선

(정정)마지막 사진 - 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조윤경님이십니다. 제가 실수를 ㅠㅠ

2018-03-05 15:02:23

부동심

문경의 바라지장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고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오십의 자신에게 정말 멋진 선물을 해주셨네요. 조윤경 보살님~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진선 보살님~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3-03 04: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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