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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성실한 남편과 자라며 크게 속 썩이지 않은 아들, 그리고 작은 사업체도 있고 나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2015년 8월, 친정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췌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하셨습니다. 장사하는 엄마를 대신해 늘 친구 같았던 아버지, 어떤 얘기도 그러냐, 그러냐 하며 들어주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슬프고 두려웠습니다.
병실을 지키던 중 병원에 법당이 있는 걸 알았고 그곳에서 월간정토를 만났습니다. 월간정토에서 불교대 입학 안내를 보았고 홀렸는지 끌렸는지 조치원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술 후 항암치료의 여정에 올랐고 저는 불교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조치원 집에서 출발해 목포에서 아산병원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질 모시고 이동하며 가슴 졸인 날들을 보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몸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불교대 입학 후 바로 깨달음의장에 다녀왔고 8-7차 천일결사 입재 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직 하나! 아버지가 좋아지기를! 좋아지기를! 거리모금, 스님강연회 봉사, 문경 바라지까지 뭐든지 했습니다. 아버질 위해 복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릴 즈음 정초순회법회에서 덕생법사님 말씀에 가슴이 쿵 했고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다!” “지금 이대로 좋다!” 그 말씀이 너무나 위안이 됐고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저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밖으로 향하던 마음을 안으로 돌이켰습니다. 주변의 시선보다 내 마음이 중요하구나, 부담스럽던 나누기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지금 이대로 좋을 수는 없기에 무작정 매일 새벽 엎드렸습니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고 분별할 때는 아버지가 계신 목포로 내려가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금하면서 입도 못 떼고 쭈뼛댔는데 어느 순간 모금구호가 터져 나오더니 몸이 저절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알았습니다. 누굴 돕는 게 아니라 내가 받고 있구나! 뭉클하고 따뜻했습니다. 불교대 수업에 집전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법당 지킴이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살면서 잔소리 한 번 없던 남편이 “적당히 해라!” 하고, 초파일 날 대전법당 봉축법회에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매일 전화하던 엄마가 일주일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도 전화가 없자, 이제는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옵니다. 봉사는 아버지를 위한 것도 법륜스님을 위한 것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일이구나!
꽃피는 삼월, 잘 쓰이는 기쁨을 알아가던 때 아버지는 마지막 항암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운전하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야야 이제 됐다, 그만 할란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일주일 후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가실 걸 그 힘든 항암치료를 왜 받게 했나, 그냥 편히 계시다 가시게 할 걸!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도반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49재를 목포법당에서 지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아! 자책하는 딸을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구나! 이렇게 건강하게 잘 키워주셨으니 이제 방긋방긋 웃으며 살자!’ 아버지를 보내며 순간순간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정토회와 부처님 법을 만났고 인생의 후반전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고 가신 선물!! 지금 여기 행복하기!! 손잡아주고 이끌어준 조창남 부총무님과 가을불교대 도반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전혜진 희망리포터 (대전정토회 세종법당)
편집_함보현 (대전충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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