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조연옥 님은 오랫동안 이어온 사업을 정리할 즈음, 개인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우울한 마음을 혼자 버티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아들의 메모를 보고 정신이 퍼뜩 들어 행복학교에 입학했고, 깨달음의 장까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연옥 님 부부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깨달음의 장, 조연옥 님은 바라지장에 참석하였는데요. 그곳에서 조연옥 님은 어떤 음식을 준비하며 무려 30년간 쌓아온 마음의 화를 감사함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 음식은 무엇일까요?

바라지장에 가기까지

10여 년을 유지해 오던 자영업을 정리하고 개인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6개월 정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입대하기 위해 휴학하고 집에 있던 막내의 책상에서 우연히 "우리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메모를 보았습니다. 퍼뜩 정신이 들어 '행복학교'를 이수하고, 바로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신청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년 전 일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가볍게 다녀오겠다는 마음으로 임한 깨장은 힘들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는 알림과 함께 먹었던 식사는 너무 정갈하고 맛있었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저는 기회가 된다면 꼭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연옥 님
▲ 조연옥 님

올해가 결혼 30주년이고 남편의 만 60번째 생일이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정토회 일반회원으로 활동 중인 남편은 깨장에, 저는 바라지장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남편을 위해 바라지장에 간다는 조금 우쭐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바라지장도 깨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나면, 아침 공양을 준비합니다. 긴장되고 서툰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면 다시 공양간으로 가서 수련생의 오전 공양을 준비합니다. 처음에는 분위기 파악도 안 되고 나서면 안 될 것 같아서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소임을 정할 땐 그나마 어렵지 않아 보이는 과일을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이 제 소임을 보고는 "아니, 조연옥 님이 왜 과일을 하세요? 일 잘하게 생겼구먼, 반찬을 하세요."라고 하고 그때부터 제 소임은 반찬 만들기가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내가 일 잘하는 줄을 어떻게 아셨을까? 내 얼굴이 일 잘하게 생겼나?' 지금도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공양간에서(오른쪽 맨 앞이 조연옥 님)
▲ 공양간에서(오른쪽 맨 앞이 조연옥 님)

'화'의 원인이 '감사함'으로 돌아옴

익숙하지 않은 공양간에서 처음 만난 도반들과 어색함도 잠시, 원래 가지고 있던 무수리 기질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물은 다듬고 데쳐서 조물조물 무치고, 채소는 착착 채를 썰어서 프라이팬에 볶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오랜만에 칼질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에 물집이 크게 잡혔습니다. 다른 도반들도 밥, 국, 김치, 과일 등 각자 맡은 자리에서 말없이 소임을 완성했습니다. 거의 100인분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습니다. 한 번도 맞춰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잘 훈련된 정예부대처럼 뚝딱뚝딱 100인 분을 만들어 내다니, 놀랍고 감탄스러웠습니다.

바라지장에서(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조연옥 님)
▲ 바라지장에서(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조연옥 님)

2일째 되는 날, 팀장님이 추석도 다가오니 연근을 올린 김치전을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열심히 전을 부쳤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해온 전이라 별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오로지 얇게 부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어! 이게 뭐지?' 울컥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여기에 쓰려고 그렇게 단련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외며느리로 30년 동안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제사가 가까워져 오면 억울한 마음과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우리 엄마 아버지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게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났습니다. 유별난 시숙부들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니 제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예민해지고 말이 곱지 않으니, 남편과 싸움도 잦았습니다.

바라지장에서(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조연옥 님)
▲ 바라지장에서(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조연옥 님)

그런 제 화의 근원이었던 제사, 그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이 올라오다니,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 도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칼질을 잘하세요?" 그래서 "외며느리로 30년 동안 제사를 지내면 잘하게 된다"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지속된 마음의 화가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언제까지 제사를 지낼지 모르지만, 지내는 동안은 공양간 명심문처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편을 위하는 척 바라지장을 가겠다고 마음을 내서 왔는데, 오히려 저를 바라보는 바라지장이 되었습니다. 새벽 예불을 올리러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발우에 밥을 담는 순간, 채소를 다듬고 칼질하는 순간순간이 깨어있는 수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저를 살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있지는 못했습니다. "공양 마치고 몇 시까지 어디로 모이세요." 하는 말을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도반에게 되묻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마지막 날 나누기에서도 제대로 듣지 못해 팀장님에게 "잘 듣고 합니다"라는 주의를 듣고 바로 참회했습니다.

나누기는 바라지장의 꽃입니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그사이 일어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저녁 시간 동그랗게 둘러앉아 나누기할 때는 배꼽 빠지게 웃기도 하고, 눈물·콧물 흘리면서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속 깊은 이야기를 어디 가서 이렇게 시원히 내어놓을 수 있을까요? 나눠주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신 모든 도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3일째 되는 날, 점심 공양을 챙겨서 동네 정자로 나들이도 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날 비바람 속에서 라면과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하던 순간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 지어집니다,

휴식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조연옥 님)
▲ 휴식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조연옥 님)

어떻게 살 것인가

제 나이 50대 중후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힘든 시기에 행복학교를 시작으로 깨장, 바라지장을 다녀오고 지금은 경전 대학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많이 가벼워지고, 편안하고, 당당해져 불안감이 줄고 제 삶의 중심을 찾았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돼라,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가볍게 마음을 내라'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마음에 새깁니다. 진정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잘 살아보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고, 주어진 것에 항상 감사하며, 어디에서든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바라지장을 함께한 도반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함께라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씩씩한 장군 같은 권순녀 팀장님! 항상 말없이 지켜봐주고 기다려주신 류양희 팀장님! 두 분이 계셔서 너무 든든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2월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조연옥(서제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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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고맙습니다.

2026-07-13 07: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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