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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님은 남편 직장을 따라 베트남 하노이 근교 시골 마을에서 5년째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차로 20분만 달리면 해변에 닿는, 눈앞에 푸른 자연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온라인으로 모둠원을 만날 때마다 잔잔한 미소로 맞이하는 모둠장 이진희 님은 그곳 풍경을 닮아 편안하면서도 생기 넘칩니다. 하지만 늘 평온해 보이는 이진희 님에게도 그 평온함을 얻기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게 정토회를 소개한 사람은 노희경 작가입니다. 2009년 미용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한 여성지에서 평소 좋아하던 노희경 작가의 ‘나의 스승님’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글을 읽으며 ‘나도 법륜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정토회를 찾아보았고, 집 근처 일산 가정법당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정진을 한다는 이야기가 반가워 곧바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에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를 간호할 때도, 또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정진만은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남편은 딱히 취미가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토회 활동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남편의 불만도 커졌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에는 법당 총무를 맡아 저녁과 주말까지 바쁘게 지냈는데, 참다못한 남편이 헤어지자며 집을 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이 남편이 회사 업무로 해외 출장이 잦았고, 집에 돌아오면 정성껏 챙겼기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5년 전 베트남에 오면서 갈등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사택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남편은 오후 5시 반이면 퇴근해 집에 있었고, 평일 저녁과 주말을 거의 함께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대학 수업과 회의 일정이 제게 큰 부담으로 다가 왔습니다.
즉문즉설 수업이 있던 주말이었습니다. 남편과 집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수업 준비할 생각을 하며 산책에 나섰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남편이 화를 냈습니다. “내가 이래서 정토회를 싫어하는 거야” 남편에게 “세 시간만 기다려 줘. 수업 끝나고 같이 놀자”라고 했지만, 남편은 화를 풀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불만을 들어주다 수업 시간을 놓칠까 봐 조급해졌고,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서둘러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남편이 싫어한다면 다음 학기에는 불교대학 진행자 봉사를 잠시 쉬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100% 맞춰 보는 게 좋겠다.’ 이후 지회장의 배려로 한 학기 동안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맞춰 살았습니다.

한 학기가 지난 후,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정토회 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활동하는 게 너무 즐겁고 의미 있어. 저녁 회의나 주말 수업도 있겠지만, 그 외 시간에는 당신과 재미있게 잘 지낼게.” 그렇게 진심을 담아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몇 마디 하더니 허락했습니다.
그 뒤로는 저녁이나 주말에 일정이 생기면 일주일 전부터 언제 무엇을 하는지 미리 이야기합니다. 하노이에서 매월 진행하는 JTS 거리 모금이나 모둠 활동이 있을 때는 남편과 함께 갑니다. 금요일 저녁 회사 버스를 타고 늦은 밤 하노이에 도착하면, 저는 토요일 아침에 나가 봉사에 참여하고 남편은 숙소에 머물거나 주변을 산책합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습니다. 활동을 함께 하지는 않지만, 먼 길을 기꺼이 함께해 주는 남편이 든든하고 고맙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 전부터 남편과의 관계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말하다가도 수시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자 형제들과 자란 남편에게는 그저 익숙한 말투였지만, 저는 남편이 큰 소리로 말하면 화내는 것 같아 무섭기도 했고,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싫어 같이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제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혹시 내게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대학을 다니던 때, <나눔의 장>에 가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상하게도 남편 이야기가 아니라 친정아버지 이야기만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술과 친구를 좋아했고, 보증을 여러 번 서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양장점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이웃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려웠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맏이인 제 몫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장이 짊어질 경제적 부담을 대신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차라리 부모님이 이혼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두 분이 싸운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며 제게 흉을 보던 어머니의 모습은 제 안에 상처로 남았지만, 그때의 저는 그것이 상처인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법사님이 “아버지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이진희 님에게 뭘 잘못했다는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저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나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 엄마 편만 들었구나.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움은 온데간데없고 참회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한순간에 달라진 제 마음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막내 여동생을 무릎에 앉히면 괜히 싫었는데, 그 마음은 저 역시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아차렸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30여 년간 가슴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리자 아버지에게 미안했고,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뒤,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교회 ‘아버지학교’에서 받은 과제로 맏딸인 제게 처음 쓴 편지였습니다. 편지의 첫 문장은 “제일 미안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고 해서 우리 큰딸에게 쓴다.”였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풀어낸 뒤 편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해 가정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특히 저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썼습니다.
저는 곧바로 “아버지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저희를 잘 키워 주셔서, 그리고 엄마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긴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 아버지한테 뭐라고 보냈니? 아버지가 지금 울고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남편과의 관계에도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저를 이해시키려다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는데, 저는 그 이유는 보지 못한 채 큰 목소리만 서운해하고 미워했습니다.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말투나 모습이 남편에게서 보이면,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남편에게 쏟아냈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제 감정을 받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그렇게 미웠던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법문도 꼬박꼬박 듣고 수행 연습도 빠짐없이 했습니다. 수행 연습 과제로 ‘가장 화가 났던 일’을 써야 했는데, 예전 일을 떠올리기 싫어 과제를 미뤘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아버지의 중풍으로 힘들어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30분 거리의 시댁에 가서 부모님을 돌봤습니다. 부모님 식사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고,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에 괜히 남편에게 툴툴댔습니다. 그때 남편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라고 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기 부모님 일인데 나보고 힘들다고? 그럼 나는?’ 이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닫은 채 며칠 동안 남편을 미워했습니다.
수행 연습을 하며 그일을 다시 떠올리니 ‘젊은 가장으로서 병든 부모님의 아들이자 어린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남편의 어깨가 참 무거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롭고 안쓰러운 남편을 따뜻하게 받아주지 못했던 제가 떠올라 목이 메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동안 내 고집대로 나만 생각하며 사느라 힘든 남편을 보지 못했구나. 내가 그렇게 돌아보기 싫어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수행연습 과제를 하며 그동안 외면하던 제 밑마음을 마주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이번 학기에도 경전대학 돕는이 소임을 맡아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장, 명상수련, 바라지 봉사와 법당 활동 경험은 온라인 활동이 대부분인 베트남에서도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여름과 겨울 온라인 명상 기간에는 한국 일정을 맞춰 새벽 2시에 일어나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는 1월이라 춥고 흐린 날이 이어졌고, 습도까지 높아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날씨를 탓하지 말고 그냥 웃자.’라며 수행 삼아 지내 보았습니다. 햇살이 잠깐이라도 비치면 참 반가웠습니다. 베트남에서 이렇게 햇살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늘 햇볕이 쨍쨍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는 것이 아니었구나.’ 더는 내가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괴로움이 제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 불편한 일이 생겨도 예전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것들이 사실은 모두 고마운 것임을 압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저를 도와주는 보살입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도반들과 함께 붓다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 오늘도 든든합니다.

글을 쓰고 다듬느라 기사를 수십 번 읽었습니다. 저 역시 남편과의 갈등을 겪었기에 이진희 님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나는 과연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할 수 있을까? 따뜻한 말을 건넨 적은 있었을까?…’ 하고 돌아보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 남편에게 “오늘 수고 많았지.”라는 말을 건넬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글_ 윤은주 희망리포터(해외지부 아시아지회)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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