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아시아지회
아시아지회 으뜸절 마닐라법당

8년 전 아시아지회 불교대학, 경전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은 마닐라법당에서 열렸습니다. 아시아에 사는 졸업생들은 각지에서 마닐라로 날아와 여법하게 졸업식을 치르고 정성스러운 점심 공양도 맛보았습니다. 그날 신임 총무라고 수줍게 인사하던 마닐라법당 도반을 인터뷰하게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윤보연 님의 이야기입니다.

2022년 마닐라법당 부처님 오신 날 욕불의식
▲ 2022년 마닐라법당 부처님 오신 날 욕불의식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난하고 평범하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던 제가 삼십 대 후반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상대방과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고 성격 차이가 심해 도저히 결혼생활을 이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는 왜 남들처럼 평탄하게 살지 못할까?’라며 행복을 갈구하며 살았습니다.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 2008년 친언니가 사는 필리핀으로 왔습니다.

언니는 형부와 함께 마닐라에서 정토법당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언니 따라 법당에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닐라로 와 정토회를 운명처럼 만났고, 그때 제2의 인생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도반들의 권유로 2009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법당 총무 한금화 님이 불교대학 학생들을 잘 이끌며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매주 가까이에서 보며 ‘나도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겠구나’라는 희망도 가졌습니다.

2023년 마닐라법당 오프법회
▲ 2023년 마닐라법당 오프법회

필리핀은 태풍 등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계속되고 JTS 필리핀이 있어 봉사할 일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또한, 마닐라법당에는 오랫동안 수행, 보시, 봉사의 삶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도반이 많습니다. 선배 도반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따라 배우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며 행복한 도반들의 삶을 존경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법문만 들었다면 이런 감동을 접하기 어려웠을 텐데 직접 보고 배우며 경험하게 된 봉사의 삶이 제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제 인생에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선배 도반들이 행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드니 아픈 과거가 한층 더 빨리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일반 회원으로 선배 도반들을 따라 하니 어떤 일이든 가볍게 할 수 있었고, 지금의 전법회원도 부담 없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7년 법당 총무 소임을 추천받았습니다. 이미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활동했고, 수행 정진도 꾸준히 하던 도반이 많았습니다. 제가 총무 할 그릇이 된다고 생각지 않았지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자녀도 없고 직장도 다니지 않는 단출한 일상을 사는 ‘내가 나설 차례구나’ 싶었습니다. 또한, 지난 6년간 총무를 했던 친언니 곁에서 모든 법회나 행사를 돕고 있었기에 책임감도 컸습니다.

2023년 마닐라 모둠 활동 쓰레기 줍깅활동 (맨 오른쪽 윤보연 님)
▲ 2023년 마닐라 모둠 활동 쓰레기 줍깅활동 (맨 오른쪽 윤보연 님)

2017년 그 시절은 마닐라법당에서 7대 법회부터 아시아 지역 졸업식, 수계식, 교민 행사인 체육대회, 바자회도 있어서 행사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행사 준비는 기본이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참석을 독려하고, 참석자들에게 대접할 음식 준비까지 해야 하니 책임자로 법당을 꾸려 나가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습니다.

개인적 살림에 더해 또 하나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같아 육체적으로 버겁고 하기 싫은 마음도 올라오고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반들에게 연락해 “법당에서 얼굴 보면 좋겠어요”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참석하지 않으면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과 함께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당시 법당에는 봉사자들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사시예불도 올렸습니다. 그런데 봉사자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 한다.'라고 전화하면 다른 일 제치고 대신 하는 것은 당연히 총무 일이었습니다. 법당 일이 많은데, 이럴 때는 더 하기 싫고 지치고 ‘나 좀 도와주지…’라는 바람과 함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 너무 괴로워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눈 뜨면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당시는 일이 있어 못 하고 늦잠 자서 못 하고 너무 피곤해서 못 하고 변명 거리가 많았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진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4~5번은 꼬박꼬박했습니다. 돌아보니 아침 정진을 제시간에 제대로 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세월 동안 많은 갈등과 널 뛰는 마음을 잡아주는 것은 정진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어떤 활동에 앞서 수행 정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라는 말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2022년 부처님 오신 날, 빈민가 지역 나눔 행사
▲ 2022년 부처님 오신 날, 빈민가 지역 나눔 행사

온라인 법회로 전환되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오프라인 법회와 특별 법회 때 법당에 나갑니다. 법회 시작 두 시간 전에 법당에 도착해 다른 도반들과 함께 법당 청소로 법회 준비를 시작합니다.
법당은 넓고 함께 일할 도반이 없는 날도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법회 날은 남편이 항상 저와 동행하여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법문 영상을 담당하고, 방석도 깔고 사진도 찍습니다. 법회를 마친 뒤 뒷정리도 돕고 든든합니다. 남편은 아직 후원 회원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불교대학에 입학하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멈추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업무 감각이 뛰어나고 사람들도 잘 이끌어 크고 작은 활동을 척척 해내는 마닐라법당 도반들을 보면 부족한 마음이 들고 부럽기도 합니다. 컴퓨터 작업이나 문서 작업은 여전히 서툴지만 소소하고 잔잔한 법당 일들은 그래도 자신 있습니다. 선배 도반들이 보여준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도 물 흘러가듯 일이 됩니다. 누군가 나서기 꺼릴 때 나중에 후회해도 “제가 할게요”라고 우선 일을 받는 제 성격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법당 총무에서 모둠장까지 정토 일을 한 지 올해로 9년째입니다. 머지않아 이 소임을 놓고 다른 소임을 맡을 것 같습니다. '새로 올 모둠장도 저를 통해 배울 텐데'라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수행 정진으로 많은 일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좋은 모습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독송하는 수행자의 열 가지 자세를 마음에 새기고, 그저 꾸준히 실천하는 정토수행자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또한 선배 도반들이 그랬듯 새로 인연 맺은 도반들을 잘 챙기며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학교 기공식 (왼쪽 세 번째 윤보연 님)
▲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학교 기공식 (왼쪽 세 번째 윤보연 님)


윤보연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소중하게 법당을 지켜온 윤보연 님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백중 기간을 맞아 마닐라법당에 아시아지회 회원분들의 연등을 하나둘 걸고 있을 윤보연 님과 마닐라모둠 도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시아지회를 대표하는 으뜸절로 언제나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다른 지역의 일까지 챙겨주어 멀리서 이렇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_윤은주(해외지부 아시아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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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니

큰마음을잔잔하게 내어주시니 감동입니다

2025-08-22 07:03:13

문미경

멀리서 가깝게 정토활동 소식을 잡합니다. 매일수행하기 까지 10년 걸렸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4.~5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10년차 되니까 매일 수행하게 됩디다. 뵙적도 없지만 함께 하는 마음입니댜 홧팅입니다ㆍ

2025-08-21 07:16:32

무량심

마닐라 선배 도반이신 윤보연님의 카랑 카랑한 목소리 !
늘 웃으면서 소임 맡아 주시는 모습 뒤에는 이런 사연이 있어셨군요.

함께 경전대학 하면서 "무엇이든 yes!!!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정토 세상 잘 이끌어 주셔서 고마워요.윤보연님♡♡♡

2025-08-20 21: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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