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착한 아이에서 ‘진짜 나’로,
백일출가에서 찾은 세 가지 깨달음

<월간정토> 에 발행된 글을 온라인으로 내보내기 위해, 편집팀에서는 글쓴이에게 연락을 취해 다시 한번 동의를 얻습니다. 장세민 님에게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는데요. 지금 상황에서 다시 보니, 글 속에 자신의 마음을 너무 드러낸 것 같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이 역시 일종의 전법이 될 수도 있으니 발행에 동의한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수행담 속에서 장세민 님은 어릴 적부터 감정을 속으로 삭여온 습관이 있었지만, 백일출가를 통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는데요. 백일출가는 끝났지만 그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일출가를 왜 했을까?

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세 가지 문구, ‘법륜 스님이 추천하는 백일출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장부가 된다’가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먼저 법륜 스님이 추천한다고 하니 해보고 싶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라는 문장은 너무 새롭고 신선했습니다. 그 의미를 곱씹다 보니 제 삶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꼭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백일출가를 지원했습니다. ‘장부’라는 단어는 어릴 적부터 익숙했지만, 늘 상황을 피하거나 타협하며 살아온 제 삶이 장부답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장부가 되어보자’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게는 이 문구들이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백일출가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농사일 수행 중에
▲ 농사일 수행 중에

정토회와의 첫 만남

정토회를 알게 된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당시 유행처럼 번진 명상에 관심을 두고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했습니다. 어떤 질문에도 가볍고 명쾌하게 답해주시는 법문은 무겁던 제 고민을 신기하게도 가볍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더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정토불교대학 모집 공고를 보았고, 때마침 일정이 맞아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직장에서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업무량도 많고 인간관계도 서먹했습니다. 오래된 아웃사이더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늘 불편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며 처음 수행이라는 것을 접했고, 천일 결사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공동 정진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달 반 정도 띄엄띄엄 참여하다가 결국 혼자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혼자 절을 하다 보니 오히려 시간을 조절하며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08배 이후는 줄이거나 예불을 빼기도 했고, 주말에는 아예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진은 제 삶의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나름의 기준으로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백일출가의 문 앞에서

‘백일출가’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제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 ‘출가’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오르던 기억, 정토불교대학 즉문즉설에서 출가와 관련해 질문한 순간들…. 정말 출가하고 싶은 건지, 단지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은 건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정을 망설이는 것도 저의 습관 중 하나였습니다. 회사가 싫다는 마음은 계속 올라오고, 상사는 점점 더 미워졌습니다. 상사는 저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제 위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성과도 없어 보이는데, 시키는 일은 많았고, 게다가 월급은 저보다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웠습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싫었습니다.

회사 생활 2년 9개월쯤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마음이 커졌고,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회사 생활 3년은 채우고 싶었으나, 3월에 시작하는 백일출가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2025년 3월, 백일출가에 입방했습니다.

명상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장세민 님)
▲ 명상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장세민 님)

세 번의 눈물로 통과한 만 배

백일출가 입방 전, 만 배 통과를 위해 매일 300배씩 절을 했습니다. 무리하게 횟수를 늘렸다가 발가락에 염증이 생겨 욕심을 내려놓고 꾸준히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경수련원에 도착해 만 배를 시작했습니다. 첫날, 400배를 넘기면서 다리가 아프고 피곤했지만, 그보다 지루함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 현수막에 쓰인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타인에게 맞춰 살며 낮아진 자존감이 떠올랐습니다. 순간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구나’라고 깨달았고, ‘다리가 부러져도 만 배를 채우겠다’라고 다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첫날 3,000배를 마쳤습니다. 둘째 날, 절을 하다 지쳐갈 때 옆에서 절규하듯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도반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제 슬픈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흘렀고,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어 남은 만 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 다리 통증이 심했지만 유수 스님의 격려 메시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7,000배를 마친 뒤 마지막 3,000배를 하던 중, 자행 스님이 찾아와 격려와 염불을 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 올라 감동을 받았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옆에서 함께해준 좋은 에너지 덕분에 세 번의 눈물을 흘리며 정해진 시간에 만 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 자신이 대견했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공양간에서 배운 수행

백일출가 초기에 역할 분담을 했습니다. 저는 선뜻 공양간 소임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음식 맛에 관심이 많아 ‘이번 기회에 사찰 음식을 배워봐야겠다’라는 순진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양간은 단순히 음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공양주님은 경상도 분이었는데, 말투나 표현이 제게는 꽤 거칠게 느껴졌습니다. 냄비 놓는 자리, 물 사용 방법, 숭늉 끓이는 법, 요리 방법까지 여러 부분에서 지적을 들었습니다. 저는 수도권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이라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양주님과 소통은 쉽지 않았습니다. 공양주님은 그냥 한다고 하는 말이 내게는 핀잔처럼 들린 적이 많았고,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나름 대응하면서 처음엔 금방 적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고, 공양간에 가는 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수련이 끝나갈 즈음에야 어느 정도 편안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제는 공양주님과 편안히 소통하며 공양을 준비합니다. 백일출가 초기라서 긴장되고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느낌은 제 감각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과거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제 업식으로 인해 독단적으로 판단한 부분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일출가 홍보 중에(오쪽에서 첫 번째가 장세민 님)
▲ 백일출가 홍보 중에(오쪽에서 첫 번째가 장세민 님)

미운 마음을 알아차리는 공부

공양간은 많은 음식을 정해진 시간 안에 준비해야 하기에 긴장감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일출가 동기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마음 나누기 시간에 한 행자님이 “장세민 행자님이 너무 재수 없게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해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보다 열 살 이상 어린 도반의 예상치 못한 말에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기려 했지만, 그를 볼 때마다 계속 그 생각이 났습니다. 바라지 경험이 있어 공양간을 잘 아는지라 그의 말투는 때로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원래 대화가 적은 편이었는데 그 후로는 더 미워졌습니다. 그의 원칙주의, 완벽주의 성향이 제 성향과 정반대였습니다. ‘왜 절에까지 와서 저러고 있나?’ 하는 분별심이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론 사회 경험이 없어 이곳에서 열정을 다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코드가 맞지 않아 공양간은 물론 일상에서도 부딪치다 보니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동기와는 아침 공양 당번을 함께 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음식 간이 잘 맞지 않아 “소금을 더 치자”, “깨를 더 넣자”라고 말하면, 동기는 기분 나쁜 티를 많이 냈고, 이런 사소한 일이 쌓이면서 분별심을 내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저에게 새롭지 않았는데, 과거 경험에서 겪은 제 업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부답게 좋게 지내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예민한 저는 그게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수행 중이기에 마음에서 올라오는 미운 감정을 알아차리고, 생각을 이어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친한 사람을 만들고 좋은 추억을 쌓는 것도 좋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제 마음의 반응을 살피고 대응하는 법을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래원에서
▲ 여래원에서

마음을 표현하며 찾는 평화

백일출가를 통해 저는 제 마음을 알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와 연락이 끊긴 작은 공동체 생활에서 저는 밖에서 겪던 문제들이 대상만 바뀌어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투, 표정, 생활 방식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내 업식이구나’라고 알아차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정을 속으로 삭여온 습관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는데,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없어 제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스트레스 받았을 일도 이제는 ‘알아차리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궁극적인 수행 목표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고, 나아가 분별심이나 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분위기 때문에 참아온 것들을 이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당장은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일단 내가 편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외부 활동 중에(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장세민 님)
▲ 외부 활동 중에(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장세민 님)

작은 변화, 큰 배움

백일출가 수련과 생활을 통해 깨달은 점이 세 가지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첫째, 작은 습관이 저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수련 중 법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청소는 가장 쉬우면서 매일 할 수 있는 수행이며, 삶을 변화시킬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삶을 바꾸고자 한다면 크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쉽게 매일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둘째, 부모님과 관계입니다. 백일출가 초반부터 부모님에 대한 내 생각을 적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본 뒤 부모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막연한 감정만 있었는데, 글로 적어 보니 제 마음을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기도를 하며 계속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내다보니 지금까지 생각과 바람이 달라지고 부모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법사님 말씀대로 우리가 최초로 맺는 인간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기에, 부모가 제 사회성 형성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닥치는 인간관계 문제들은 결국 부모와 저의 관계, 그리고 제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평온한 마음을 가질 때, 다른 인간관계도 좋아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두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부모님과 좋은 관계로 지내며 성인 대 성인으로서 괜찮은 추억을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셋째, 지금의 삶이 내가 원하는 삶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있고 그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매일 나는 얼마나 노력하는가?’,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이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해왔지만, 막연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바쁘게 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이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련을 마친 후 안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여기에 깨어 살고자 합니다.

저는 백일출가를 하려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1년 전에도 하고 싶었으나 회사 일정 때문에 못 했습니다. 그만큼 백일출가는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백일출가에서 제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백일출가 핑계를 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온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돈도 벌고 일도 재미있게 하는 두 가지를 다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한 가지에 집중해 그것에 만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제가 원하는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곧 제가 살고 싶은 삶임을 잊지 않고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1월에 수록된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장세민(백일출가 49기)
편집_ 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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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적성에 맞지 않고 다니기 싫은 직장을 12년을 다녔습니다. 20대 청춘을 '돈'의 노예로 살았지요. 3년 안에 직장을 그만 둔 장세민 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장세민 님이 원하는 삶이라니 응원합니다. 소중한 수행담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6-06-22 07: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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