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청주지회
불법(佛法) Bless YOU

이번 인터뷰를 하며, 부처님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부처님이 어렵게 찾은 길을 기꺼이 따라가는 것이고, 삶 속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임을 또 한 번 확인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불법 만나 부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된 이충재 님의 따뜻한 수행담, 시작합니다.

우리 가족은 불교대학 동문

저는 원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뒤에도 불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형이 먼저 불교에 관심을 갖고 교리에도 해박해 가족들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즐겨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형이 좀 미덥지 않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그 당시, 인생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정권이 바뀐 후로는 뉴스를 보는 것도 싫었습니다. 직장 출퇴근에만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시사방송은 물론 음악방송도 지겨워 불교방송을 들었습니다. 듣다 보니 당시 힘들던 일들이 불교를 통하면 해소될 것 같았습니다. 매일 듣는 법문인데 신기하게도 전혀 질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기회가 되면 꼭 불교를 배워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출가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한 누나가 저와 아내, 어머니와 형에게 전법을 했습니다. 누나는 아내의 학교 선배이기도 해서 아내는 누나를 잘 따랐습니다. 저도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깊었던 때라,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던 2021년에 온 가족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불교대학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습니다. 6개월만 다니면 될 줄 알았는데, 도반들의 관심과 권유로 정토회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2026년 4월 용성스님 열반일, 죽림정사, 어머니(후원회원)와 함께
▲ 2026년 4월 용성스님 열반일, 죽림정사, 어머니(후원회원)와 함께

당연한 듯 맞고 살았던 시절

저는 큰누나, 형, 작은 누나, 저, 이렇게 4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얼굴 보기 어려울 만큼 바빴습니다. 막내라 귀여움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구박을 받거나 심부름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는 군부정권 분위기로 서열에 따른 폭력이 흔한 시대였습니다. 두 살이 많던 형은 남동생이 까부는 게 보기 싫었는지, 훈육을 명목으로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 티를 내면 곱절로 더 맞으니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연기하며 살았습니다. 고통과 절망감에 차라리 죽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 고통은 더 두려워서 맞고 사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 엎드려뻗친 채 허벅지를 너무 많이 맞았습니다. 다음 날 다리가 부어 교복 바지 입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들켜 추궁당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그날 이후로 폭력은 멈췄습니다.

그러나 공포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지냈습니다. 학교에도, 동네에도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성당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미사 때 신부님을 돕는 역할을 하며 만난 친구들이 유일했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형과 누나들이 모두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어쩔 수 없이 저도 따라가게 되어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러던 제가 대학생이 된 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역사와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증조부님은 일제의 흉탄에 희생된 독립 유공자였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가난으로 몰아넣어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증조부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할아버지처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다 죽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생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시위에 나서는 일은 또 다른 공포였습니다.

당시 형은 학생 운동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고, 정말 존경스러울 만큼 똑똑하며 언변도 좋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방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형이 저를 때렸던 일에 원망이 없었고, 용서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2026년 5월 보리수 일 수행 중(앞줄 맨 왼쪽이 이충재 님)
▲ 2026년 5월 보리수 일 수행 중(앞줄 맨 왼쪽이 이충재 님)

외로웠습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성당 친구였습니다. 10년 넘게 간절히 바라던 결혼을 하여 한동안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첫 아이를 갖고 난 뒤 보육에 관한 견해차로 아내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크게 간섭하지 않고 키우는 것이 좋다’라는 제 생각과 정반대로 ‘아이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애가 밥을 먹지 않으면 ‘밥 달라고 요청 할 때 차려 주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아내는 애를 따라다니며 먹였습니다. 그런 아내와 갈등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습니다.

2022년 3월 발심행자 교육 때
▲ 2022년 3월 발심행자 교육 때

민주화 운동 이후,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아내와 알콩달콩 살며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부 관계가 엉망이 되면서 저는 아침을 혼자 차려 먹고 출근하였습니다. 둘째가 고등학생 때는 3년간 제가 아침을 차려 함께 먹고 등교를 시켰습니다. 둘째가 졸업하고 나니 돈 버는 것 말고는 집에서 할 일이 없었습니다. 회사 일도 별로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담배 냄새가 싫다는 아내 말에 담배도 끊고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내와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건강도 나빠졌습니다. 당뇨 초기 증상에 소화불량, 만성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허리 협착도 심해져 허리를 숙여 양말 신는 것이나 머리 감는 일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다리 저림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살다 죽는 거야. 인생 뭐 있겠어? 술이나 마시자.’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천일 넘게 절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순간 편안하게 양말을 신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08배를 지루해서 어찌하나'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삶을 배우고 나서, 부처님의 삶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부처님을 보며 사랑과 행복한 마음으로 절을 하니 거뜬하였습니다. 더불어 법사님의 권유로 1년 반 넘게 300배 정진도 하였습니다.

칡 제거의 원, 함께 하는 힘

저는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었는데, 정토회를 만난 후로는 주말마다 문경에 갔습니다. 드라마 보는 것보다 문경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고 땀 흘린 뒤 도반들과 함께 공양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당시 문경 수련원에는 칡이 많았습니다. 제가 칡에 대해 잘 알아서 '5년 이내에 칡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련원 부지가 22만 평으로 엄청 컸습니다.

2024년 11월. 보리수 일 수행 후 도반들과(맨 왼쪽이 이충재 님)
▲ 2024년 11월. 보리수 일 수행 후 도반들과(맨 왼쪽이 이충재 님)

목표를 너무 크게 세웠다고 자책하고 있었는데, 마침 보리수 수행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함께할 도반들이 생겼습니다. 법사님의 권유로 매뉴얼도 만들고 교육도 하면서 보리수 팀원들과 함께 칡 제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에는 수련원 매실 밭을 뒤덮은 칡넝쿨을 함께 제거하고 거름 주고 가꾼 결과, 처음으로 매실 60kg을 수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반들과 함께 이루어 가는 보람을 크게 느꼈습니다.

고집할 필요가 없구나!

정토회 활동하면서 저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볼 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의견을 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좋습니다. 잘 들어보면 제 생각보다 더 좋은 의견이 많고, 결과도 더 아름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감동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제 생각을 설명은 잘하되, 고집할 필요는 없음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잘난 척이 많이 벗겨졌습니다.

전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필요한 전단지도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단지를 나눠 주다 보니 받아주는 이가 고마웠으며 저 자신이 교만했음을 알았습니다. 보시하는 일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억울했습니다. 요즘은 제가 일을 더 해도 ‘다행이다. 행복하다. 내가 해서 잘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처가 됐을지도 몰라’라며 너그럽게 넘어갑니다.

2026년 3월 청주 미원 미동산수목원. 모둠 불대홍보(앞줄 맨 왼쪽이 이충재 님)
▲ 2026년 3월 청주 미원 미동산수목원. 모둠 불대홍보(앞줄 맨 왼쪽이 이충재 님)

모든 게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잘난 척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고,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보다 똑똑하고 많이 아는 사람은 있겠지만 지혜롭지는 못할 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니 아내를 위해줄 리가 없었습니다. 회사를 아홉 번이나 옮겨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자리를 잡을 만하면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육아도 대부분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갈등이 심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담되는 시댁인데 미운 남편에게 끌려가자니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내에게 도덕이 어쩌구, 도리가 어쩌네 하며 가르치고 고치려 애를 썼습니다.

2025년 1월. 정초 1천 배 통일정진(뒷줄에서 맨 오른쪽이 이충재 님)
▲ 2025년 1월. 정초 1천 배 통일정진(뒷줄에서 맨 오른쪽이 이충재 님)

그런데도 아내는 저를 믿고 따라와 주고, 아이들도 잘 키워주었습니다. 아내에게 참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 준 두 아이에게도 고맙습니다.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마음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법을 만나고 보니 다 고마운 사람들뿐입니다. 제가 칡넝쿨을 참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칡넝쿨도 예쁘고, 짜증나게 했던 정치인도 다른 시선으로 봐줍니다.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사정과 고단함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온 세상 모든 것이 다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과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모둠장을 하고 싶습니다. 모둠장이 되고 보니 이제는 잘난 척하며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책임 있게 나서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겸손하게 나서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 일이 바쁘면 모둠 일에 신경을 덜 쓸 때도 있습니다. 모둠원이 전화를 안 받거나 쌀쌀맞게 대하면 연락을 할까 말까 저울질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바라보며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둠장은 대중과 조직을 이어 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임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3년이 지나 소임이 바뀌더라도 마음만은 늘 모둠장으로 남아 있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소임을 맡기 어려운 날이 오더라도 모둠을 응원하고 돕는 사람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수행법회와 명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힘을 보태고, 정토회가 크게 성장하길 바라며 꾸준히 함께 하겠습니다.

2026년 5월 JTS 거리홍보(뒷줄 가운데 선글라스 쓴 이 어머님, 맨 왼쪽이 이충재 님)
▲ 2026년 5월 JTS 거리홍보(뒷줄 가운데 선글라스 쓴 이 어머님, 맨 왼쪽이 이충재 님)


이제는 이충재 님의 과도한 애정 표현으로 아내분이 도망 다닌다고 합니다. 신혼 같은 알콩달콩한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혜로운 이충재 님의 서원을 진심 가득 담아 응원합니다.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글_이정원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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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

거사님들의 수행담은 더 공감이 가네요
잘 쓰고 잘 편집해주신 이정원, 윤정환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6-06-24 08:31:17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6-24 08: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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