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청주지회
법사님 용변 소리에 깨달음이

새내기 희망 리포터가 되고 나서 첫 인터뷰의 주인공은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토회와 인연을 맺어온 김성욱 님입니다.
청주지회 소속이라 당연히 충청도 분일 거라 예상했지만, 서른 초반까지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사나이'였습니다. 마침 고향이 같아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 도반을 만난 듯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 김성욱'을 지금 만나러 가봅니다.

어머니라는 거대한 산, 그 끝에 마주한 열등감

어린 시절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도 때때로 다혈질적이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깊이 의존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시험은 엄두가 나지 않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포기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차마 부모님께는 ‘못 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4학년 졸업반이 되어서야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 이후로 어머니는 앓아누웠습니다. 실성한 듯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결국 '고시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거짓말같이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고시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에서(가장 왼쪽 김성욱 님)
▲ 2025년 문경수련원에서(가장 왼쪽 김성욱 님)

그렇게 시작된 10년의 세월은 창살 없는 감옥 같았습니다. 거듭되는 불합격 소식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마음이 병드니 관계도 어긋났습니다. 친구들의 가벼운 농담에도 날을 세웠고, 미움은 커져만 갔습니다. 서른을 넘기니, 어머니의 실망 섞인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고통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서른다섯,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고생 끝에 행복이 시작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 높은 열등감이었습니다. 나이는 훨씬 어리고 학벌과 실력까지 뛰어난 동기들 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아들의 합격으로 부모님의 기대는 커져 갔지만, 정작 저의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더욱 깊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2024년 바라지장(뒷줄 오른쪽 두 번째 김성욱 님)
▲ 2024년 바라지장(뒷줄 오른쪽 두 번째 김성욱 님)

수행의 시작, 재앙의 얼굴로 찾아온 복

고시 공부라는 긴 터널 속에서 물심양면으로 힘이 되어준 소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성공한 창업가였던 그 친구는 제가 힘들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사업 자금으로 어려움을 겪자, 합격 후 은행 대출까지 받아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거짓말처럼 친구의 사업이 무너졌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빚더미와 함께 또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졌습니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앞날에 대한 불안이 차오르던 어느 날, 우연히 배우 김여진 님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독교 신자임에도 법륜스님 밑에서 마음공부를 한다는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스님의 저서 《기도》는 마치 밝은 빛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구나. 은근히 친구 덕을 보려 했던 내 마음이 괴로움의 뿌리였구나.’라고 자각하자, 신기하게도 두려움과 원망이 줄었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연수원 수료를 위한 마지막 시험 기간에 《반야심경》 법문을 들으며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동안의 삶은 방향을 알 수 없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었다면, 스님의 법문은 그 안개를 걷어내는 광명이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한 미안함에 연락을 자주 못 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평온합니다. 오히려 이 법을 만날 인연을 만들어 준 그 친구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만약 그때 법륜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가장 힘들 때 은인이었던 친구를 평생 원망하며 괴롭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친구 덕분에 부처님 법을 만났고, 인생의 재앙을 복으로 바꾸는 가피를 경험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 김장 봉사(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 2025년 문경수련원 김장 봉사(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고부갈등의 이론과 실제

‘아이를 낳으면 3년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소신을 아내와 함께했지만, 어머니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가까이 살게 되면서 간섭은 심해졌고, 고부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법문을 들으며 고부갈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마주한 마음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딸과 함께 한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활동
▲ 딸과 함께 한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활동

어머니가 버거웠지만, 사실은 어머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편 아내 편을 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아내가 좀 더 어머니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기대가 숨어 있음도 보았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이만큼 맞춰주니 아내도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거래하듯 한 마음을 본 것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에게 '우리 인생 살 테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매서운 손이었습니다. 뺨을 두 대 맞고 그렇게 어머니와 단절하였습니다.

가정의 중심을 세웠다고 믿었지만,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저렇게 힘드신데 내가 웃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정진을 이어가면서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늘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돌덩이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 한번 만나러 가도 안 되나?

몇 년 후, 보리수 정진 중 법사님께서 툭 던지신 한마디가 멈춰 있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쉽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괴로움이 되풀이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수년 만의 통화였지만, 수화기 너머 어머니는 어제 만난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게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직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차올랐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다시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미안함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지만, 이제 압니다. 그때 법사님의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스스로 그 두려움을 깨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평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2025년 천일결사 회향수련 청주지회 도반들과(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 2025년 천일결사 회향수련 청주지회 도반들과(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법사님 용변 소리에 깨치다.

불교 경전대학을 다니며 담당 소임과 직장 업무를 병행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지원 업무는 생소했고, 일과 소임 사이의 무게는 체력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인 끝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농담에도 불같은 화가 치밀었고, 그 감정을 들키기 싫어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문경수련원 가지치기작업
▲ 문경수련원 가지치기작업

담당 법사님은 몸을 쓰는 봉사를 해보라며 문경 정토수련원의 '보리수' 활동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보리수 8기 활동. 매주 한 번 문경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 아침이면 '가기 싫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문경에 도착해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정기, 전동 가위, 예초기 같은 생소한 도구들을 다루게 된 것은, 도반들의 말대로 그야말로 '출세'였습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정신과 육체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습니다.

물론 고비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혼자 수련원 매실 밭의 칡 줄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데, 바닥에 웅크려 작업을 하니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줄기에 걸려 넘어지고, 누군가 작업 장화까지 가져간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날도 추운데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 매실 밭 칡 제거 작업 중
▲ 2025년 문경수련원 매실 밭 칡 제거 작업 중

그런데 그 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 발로 왔으며,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밭 한가운데 앉아 혼자 화를 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습니다. 하기 싫다는 마음 또한 그저 찰나의 감정일 뿐임을 온몸으로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수행의 정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수련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옆 칸에서 들려오는 법사님의 적나라한 용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의 소리도, 법사님의 소리도 가감 없이 들리는 그 정직한 소음 속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별거 없구나. 법사님도, 나라는 존재도, 내가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수많은 생각과 경험들도 알고 보니 다 별거 아니었구나!'

그날 이후,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의 짐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져 나갔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전정각산에서(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 2025년 인도성지순례 전정각산에서(가장 오른쪽 김성욱 님)

완벽한 수행자보다, 날마다 깨어있는 행자로

어느덧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13년이 됐습니다. 정확히 300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최소 한 시간은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내와 사소한 일로 다툰 다음 날에는 참회 기도를 하며 ‘10년을 수행했는데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행을 통해 나를 온전하게 지켜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고, 베푸는 것보다는 도움받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업식을 하루아침에 싹 바꾸고 싶었습니다. 단숨에 ‘잘난 수행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화려한 변신이 아니라, 투박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깨달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처럼,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깨어있는 정토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은퇴 후 낯선 땅에서 묵묵히 해외 봉사를 실천하는 도반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언젠가 그 도반처럼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그려보며, 오늘도 묵묵히 수행의 길을 걷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뒷줄 가장 왼쪽 김성욱 님)
▲ 2025년 인도성지순례(뒷줄 가장 왼쪽 김성욱 님)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김성욱 님은 “이제야 입이 좀 트인 것 같은데, 더 이야기해도 되나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뷰 초반, 어색함에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열정적인 이야기꾼으로 변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갈등 이야기를 할 때, 혹시 밖에서 아내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리는 모습은 아주 유쾌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잊고 있던 순간들이 떠올라, 새삼 수행의 고마움을 느꼈다며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한 도반의 13년 인생 드라마를 시청한 듯한 이번 인터뷰는 저에게 그 어떤 소임보다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첫 인터뷰라 서툴고 긴장되었던 저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신 김성욱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런 귀한 만남의 기회를 준 희망리포터 소임을 추천한 도반에게도 새삼 고맙습니다.

혼자 가는 길은 막막하지만, 함께 가는 도반이 있어, 오늘도 웃으며 나아갑니다.

글_희망리포터 심학숙(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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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한편의 인생드라마입니다. 어떤 마음의 행로를 거쳐오셨을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친구를 원수로 여길법도 한데 다 털어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시고 오히려 법 만나게 해준 것을 감사하게 여기셨다니 참 기쁘고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은 저도 김성욱 도반님의 수행을 보고 느낀 점을 저의 수행에 참고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2026-02-11 11:17:46

박경미

울다가 웃으며 읽어 본 수행담 감동입니다..함께 해 주시는 도반이 있어 든든합니다~

2026-02-11 10:07:24

견오행

김성욱님, 글 고맙습니다. 늘 함께 합니다.감사합니다.()()()

2026-02-11 09: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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