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아무 문제 없습니다.

2023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전, 김민정 님은 마음이 많이 괴로웠었다고 합니다. 세상이라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법무상의 깨달음과 108배 수행을 통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고, 기독교 신자이던 어머니와 맞추는 법도 배웠습니다. 행복학교를 전하며 더 큰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첫 진행자 소임에서는 부족한 점을 느끼며 더 나아지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행복을 배웠던 시간이 생생히 느껴지는 김민정 님의 글입니다.

방황과 의심의 연속

고등학교 때 연애하느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재수, 삼수하면서도 연애에 빠져 공부를 안 하고 놀았습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학벌 콤플렉스로 인해 명문대 편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에 떨어진 후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명문대를 못 간 제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흙과 모래를 씹는 느낌이었고, 불면증으로 밤마다 뜬눈으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후 일 년 동안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었고, 안정을 찾으면서 실력에 맞는 간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못 갔으니 이 학교에서만큼은 1등을 해야 내 한이 풀리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늘 불안하고 자존감이 낮았습니다. 그때 처음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봤는데, 법륜 스님이 현실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도중에 꺼버렸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무사히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입사하였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으로 퇴근 후에도 밤샘하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일을 잘 못한다며 매번 혼이 났습니다. 그러다 오른 손목이 처지고 마비되는 증상으로 신경총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두 달간 치료했지만 완치되지 않아 업무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병원 동료들은 같이 일하기 어렵다며 불평하였고, 급기야 갈등이 심해져서 결국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사 이후 손목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대학병원 간호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모두 물거품이 되자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다시 즉문즉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법륜 스님 말씀은 와닿지 않았고, 도리어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청년지부 경기동부 모둠활동 중에
▲ 청년지부 경기동부 모둠활동 중에

이후 간호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우울증이 재발했습니다. 밤마다 귀신에게 붙잡히는 악몽을 꾸며 불면증으로 시달렸고, 결국 끊었던 정신과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서 다시 대학병원에 입사원서를 냈고, 이전 병원 퇴직 사유과 관련하여 중점적으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했으나 번번이 함께 일할 수 없겠다는 대답과 함께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뭔가 내 인생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그동안 그렇게 부정해온 법륜 스님 말씀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정토불교대학 홍보 영상을 보았고,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23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통한 깨달음

정토불교대학 첫 수업을 들으면서 죽어가는 나를 살려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고, 하라는 대로 뭐든지 다 해보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수업을 듣는 내내 법륜 스님의 모든 말씀이 귀에 쏙쏙 박혔고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습니다. 인과와 논리가 딱딱 맞는 스님의 명쾌한 설명은 그동안의 제 모든 의심을 한 번에 잠재웠고, 수업이 진행될수록 법륜 스님께 죄송함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쓸데없는 생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느라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번뇌를 만들고 그런 생각 또한 실제로는 공하다는 것을 안 후, 스스로 생각 감옥에 가두었음을 깨달았고,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만 하면 더 이상 생각의 노예로 살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에
▲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에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감사기도를 하며 꾸준히 108배를 했습니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기에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해야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생각, 멋지고 키 크고 잘난 의사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현실의 나는 한없이 못난 사람으로 느껴져 스스로 자존감을 갉아 먹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나를 아주 예쁘게 그려놓고 현실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구박하고 미워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게 뭔지 모르면서 연애하며 남을 사랑한다고 설치고 다니던 것이 부끄러웠고,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명상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만이 진실일 뿐, 본래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은 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알고 나니,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의 평화

정토경전대학을 공부하면서 금강경 말씀대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전법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퇴근 후 내내 정토회 활동에 빠져 있어 빨래가 다 말랐는데도 안 개어놓았다고 잔소리하셨고, 나중에 결혼해서도 살림을 엉망으로 할 것 같다며 걱정했습니다. 마음 편안히 가끔 스님 말씀 듣는 정도로 적당하게 참여하면 되는데, 마치 너 없으면 정토회가 안 돌아갈 것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며 사흘째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출근할 때 옷도 부티 나게 입어야 하는데 가난한 서민처럼 입고 다닌다며 화를 내고 싫어했습니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싫어할 테니 어쩌면 좋으냐며 정토회는 부모가 죽어도 아무 일도 아니라고 가르칠 거라며 혀를 내두르셨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같이 교회 좀 가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 법마저도 공하다는 것을 배웠기에, 어머니와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수행 연습 삼아 매주 일요일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는 생각에 졸음이 밀려왔고, 어머니는 옆에서 제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저를 깨웠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불교만이 옳다는 상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날 교회 합창단의 찬송을 들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게 없듯이,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노랫말이 제 마음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집착하는가.' 돌아보니 참 부끄러웠고, 집착했음을 알아차리니 시원한 마음이었습니다.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부처님 법은 어느 곳, 어느 순간에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머니 등쌀에 할 수 없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성경도 위대하기에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선택하여 주인 된 자세로 예배드렸습니다.

청년지부 JTS 거리모금 활동 중에(앞줄 맨 왼쪽이 김민정 님)
▲ 청년지부 JTS 거리모금 활동 중에(앞줄 맨 왼쪽이 김민정 님)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가니 어머니 얼굴이 선다며 좋아하였습니다. 여전히 제가 정토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못 하게 막지는 않고 예전보다 잔소리도 많이 줄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내가 딸을 낳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나도 정토회 만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행복

정토회를 경험하면서 삶의 관점이 잡혔고, 마음이 많이 편안했습니다. 이 좋은 부처님 법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데 그 친구는 종교적인 색깔을 싫어해서 대신 행복학교를 전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너는 행복학교 다녀봤니? 네가 해보고 어떤지 말해줘야지, 너도 안 해봤으면서 왜 나한테 권유하는 거니?"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고, 친구의 말이 맞다는 생각에 저는 그날 행복학교 마음 편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관계 편, 심화 편까지 이수하고 행복 시민모임에 소속되어 행복시민으로 활동하면서 사람 냄새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행복 시민들은 무엇이든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제가 별로 잘하지도 않는데 항상 "잘한다. 잘한다"라고 해주었습니다. 운전도 못 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저를 위해 늘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습니다. 저질 체력이라 항상 피곤해 보이는 저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날에는 함께 나누어주어서 참 든든했습니다. 모임 소통방에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적은 마음 나누기를 진심으로 읽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때로는 가족처럼, 가끔은 가족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고,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행복 시민들의 소중한 인생 이야기, 그때의 경험담, 행복학교를 만나 행복의 씨앗이 된 과거의 아픔들,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전법회원 수계식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민정 님)
▲ 전법회원 수계식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민정 님)

저는 더 이상 먼 곳에서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행복임을 배웠습니다. 남들에게 말하기 창피한 과거 실패 경험담도 마음을 열어 나누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전법 하려고 시작한 행복학교였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행복학교를 다시 권유해 보았는데,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거절할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기로 했고, 저는 행복학교를 이미 경험해 보았으니 이제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어 여유로운 마음입니다.

보람과 기쁨

처음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을 모두 졸업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했고, 출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습니다. 오프라인 실천 활동을 할 때는 학생들을 잘 이끌어 맡은 소임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고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직 초보 진행자인데 학생들에게 경력이 많은 진행자처럼 잘하고 싶은 욕심을 내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몸이 아파 실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에게 연락해서는 먼저 몸이 어떤지 걱정해 주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동수업을 안내하는 책임에 너무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처음 이끌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소임을 하면서 내가 참 욕심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부족한 점은 자꾸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025년 학사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이 일은 단순히 출석 체크하고 진행 멘트 읽는 일이 아니라 큰 눈으로 보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법사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기 초에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고, 소극적이던 마음 나누기가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돈을 받고 노동할 때보다 봉사를 통해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1월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김민정(청년특별지부)
편집_ 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5

0/200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6-15 08:43:40

이혜연

아주 마음에 남는 수행담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2026-06-15 08:33:03

최상훈

고맙습니다.

2026-06-15 07: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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