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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이 뭐가 문제이지? 우유부단한 것보다 나은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한슬기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읽어볼수록 놓쳤던 부분이 보입니다. '싫어하는 것은 내 문제',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내가 맞다'는 고집이었다는 문장이 마음속에 콕 박혔습니다. 한슬기 님은 자신이 호불호가 심한 것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 성질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나에게서 시작되며,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자유, 하기 싫은 것도 해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실전이라는 내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해외 공동체 생활을 하며 대학-취직-결혼-자녀-노후로 이어지는 삶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돈이 중요하다’라는 인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그 길을 당연히 여겨왔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도 안정감 있게 살아갈 수 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취직, 가정, 내 집 마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일본 공동체에서 1년 비자를 마치고 귀국하던 무렵, 이런 삶을 한국에서도 이어가고 싶었고, 자연스레 정토회와 법륜 스님이 떠올랐다. 2018년 인도 선재 수련을 계기로 정토회 청년 활동을 시작했지만,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다시 정토회가 생각났고, 홈페이지를 보던 중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백일출가에 지원했다.

백일출가 입방 1~2주 전, 108배와 300배를 몇 차례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만 배를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절에서 3,000배를 해본 경험 때문인지 절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고, 따로 연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백일출가는 꼭 하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만 배는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절을 하며 가장 먼저 마주한 업식은 ‘의지심’이었다. 아빠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 먼저 만 배를 마친 사람들과 나눠서 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빠를 얼마나 의지해왔는지 실감했고, 이제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서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예전엔 힘들면 쉽게 포기하거나 누군가에게 기대곤 했지만, 만 배는 오롯이 내 힘으로 완수해야 했다. 조급함이 올라왔지만, 끝까지 완주했고, 그 경험이 백일출가의 단단한 출발점이 되었다.
백일출가는 나에게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마음이 다시 구성된 시간이었다. 원래 사이가 좋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함으로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 기도는 처음엔 형식적이었다. ‘지금까지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기도를 이어가고 수련이 깊어지자, 부모님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맞벌이하시던 부모님, 집에 붙었던 압류 딱지, 새벽에 동생을 달래던 기억, 재개발로 좁은 집으로 이사한 일. 그럼에도 열등감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자주 놀러 다니며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기도를 거듭할수록 동생과 내가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바탕엔 부모님의 큰 희생이 있었음을 깨달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신 것에 깊은 감사가 올라왔다.

백일출가 초반에는 내가 고집이 세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는 걸 잘 몰랐다. 나는 옳고, 남에게 잘해주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불편하면 드러내는 편이었고, 마음 나누기에서도 그런 솔직함이 수행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수련이 깊어 갈수록 그 솔직함 뒤엔 내 기준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싫다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여기던 순간조차 결국 내 감정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붙였을 뿐이었다. 학생 때도 늘 누군가를 싫어했고, 백일출가에서도 그 모습은 여전했다. 돌아보니 이유는 모두 내 기준에서 비롯되었고, 정작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백일출가에서 일상이 시작되고도 나는 여전히 좋고 싫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초반 소임 안내 시간, 스태프의 설명에 집중하려는 찰나 한 도반이 먼저 나서는 걸 보고 ‘저건 옳지 않다’ 싶었다. 이후에도 그 도반의 말이나 나서는 모습이 계속 거슬렸고, 나는 속으로 ‘싫다’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 도반이 말을 걸면 무뚝뚝하게 대했고,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고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어느 날 고구마 줄기를 다듬는 소임을 하는데 나와 그 도반을 포함해 셋이서 두 시간가량을 작업했다. 나는 평소처럼 싫어하는 도반에게는 무뚝뚝하게, 다른 도반에게는 살갑게 대했다. 소임을 마친 뒤 나누기에서 한 도반이 “오늘 처음으로 한슬기 행자님이 웃거나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을 봤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마음 깊이 미안함이 올라왔다. 생각해 보면 학생 때도 늘 한 명쯤은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땐 ‘한 명만 빼고는 다 잘 지내니까 괜찮아’하며 넘겼지만, 그 습관은 백일출가에서도 반복되었다. 이제는 한 명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싫어하는 내색을 했다. 그제야 나는 ‘싫어하는 건 내 문제’임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방식을 고집하는 마음은 공양간에서도 시시때때로 드러났다. 공양주님 말씀이 잔소리처럼 들렸고, 내가 뭘 하려는 찰나마다 나타나 말하는 게 괜스레 짜증이 났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는 공양주님이 늘 큰소리만 치고 정작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공양주님이 방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프 재료를 제안해도 줄이라 하고, 가루도 적당히 넣으라고 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대꾸 없이 대충 넘겼다. 그러다 법사님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뜨거운 돌덩이를 들고 ‘앗, 뜨거워!’ 하면 그냥 탁 내려놔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공양주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부터는 무슨 말을 하든 ‘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반에 대한 불평도 줄어들었다. 돌아보니 공양주님이 없을 땐 내가 잔소리꾼이 되어 있었다. 할 일이 보이면 지적했고, 내 기준에 안 맞으면 불만을 품었다. 상황을 바꾸려는 척하면서 남 탓만 하는 나를 보았다. 공양주님은 언제나 대중공양을 책임지고 세심히 챙기셨다. 나는 내 방식에 부딪히는 모든 말을 잔소리로 여겼고,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도 내 식대로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법사님의 조언은 내 생각이 곧 진실이고 틀림없다는 착각을 무너뜨렸다. 남이 이해되지 않으면 잔소리하고, 뭐든 혼자 하려던 나는 내가 만든 ‘사실’이란 틀 안에서 자만하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불만으로 나타났다. 관계를 가로막은 것은 도반의 부족함이 아니라 ‘내가 맞다’는 고집이었다. 그 고집이 나를 뻣뻣하게 만들었고, ‘나 잘났다’ 식의 착각이었다. 물론 깨달았다고 해서 고집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 따뜻하게 품어준 도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도반들이 있었기에 그런 나를 드러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괴롭게 만든 문제는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분별이 아니라 내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상대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재단하는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나는 좋고 싫음이 꽤 분명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련하며 부모님, 친구들, 공동체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나와 함께 지낸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맞춰줬구나, 나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 성질대로 살아왔구나’ 자각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포부를 안고 백일출가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내 모습을 많이 보았다. 특히 좋고 싫음에 대한 분별은 가장 큰 과제였다. 지난 100일간 수련하며 분명히 자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실전이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자유, 하기 싫은 것도 해낼 자유!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좋고 싫음에 구속되지 않을 때 세상도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재입재를 마치고, 행자대학원 3년 과정을 밟고 있다. 여전히 싫으면 말을 아끼고, 좋으면 친근하게 대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때마다 ‘아, 내가 또 이러는구나’하고 스스로 알아차린다. 백일출가 때도 내 모습을 비춰준 건 도반이었고, 그런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것도 도반이었다. 이제는 내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모두가 화합으로 나아가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글_한슬기(백일출가 46기, 행자대학원 18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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