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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7일 수행법회 후 열린 송년회에서 김성희 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딸이 최근 ‘독립’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수행이 있었을까. 며칠 뒤, 김성희 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덟에 얻은 둘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댁의 참혹하고 냉담한 반응이 더욱 힘들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지옥 같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평소 불심이 신실하고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딸이 생사마저 불확실한 성치 않은 아이를 안고 시름에 젖어 지내자, 같이 절에 가보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를 들쳐업고 한 선원을 찾아간 것이 불교에 입문한 계기입니다.
당시 저의 사정을 듣고 선원장이던 스님이 아이의 명을 아는 듯이 명심문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현실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달에 두 번씩 열리는 법회에는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그때마다 웬 눈물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눈물샘이 터진 듯 엉엉 울기 일쑤였습니다. 실컷 울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나마 기운을 차리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힘든 생활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죽는 방법은 없을까?’를 수없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6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결국 짧은 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울며 다니던 선원의 스님 법문과 저에게는 정신과 의사와 다름없는 친정 엄마 덕분에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슴에 묻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말고 첫째만 잘 키워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남편이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신을 했는데 트라우마 때문인지 열 달 내내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불안감이 태아에게 전해졌는지 아이는 태어나서 잘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변에서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고 해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상담을 받아보니 아이가 말할 힘이 없을 정도로 뼈에 가죽만 붙은 상태라며 몸을 보하는 음식을 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물도 삼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끼고 앉아, 먹이고 재우며 돌보았습니다. 왜 저에게 이리도 어려운 자식을 주는지 신이 원망스럽고, 정말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 사치였고, 초중고 12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잘 다녀와라. 넌 잘할 수 있다” 하고 안아주며 학교를 보냈지만 아이는 언제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우리 공부 그만할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공부도 하지 않을뿐더러 해도 잘되지 않아서인지 성적은 항상 하위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학창 시절 내내 스스로 일어나 한 번도 깨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래도 먼저 간 아이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괴롭고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거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 한 끼를 먹고, 저녁에 한 끼, 이렇게 하루 두 번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걷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보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생활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저 앞이 캄캄할 만큼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쁜 말이나 생각이 없어서인지 얼굴이 더없이 해맑았습니다.
'아이를 언제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골몰해 있을 때, 법륜 스님의 해외 강연 중 오사카에서 열린 법문에서 저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둔 엄마가 이런 아이를 언제까지 보살펴야 하는지 답답하다며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부모가 형편이 되면 아이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아픈데 어쩌겠느냐, 그냥 밥을 좀 먹여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친구도 사귀지 않고 사회와 단절된 채 지내며 밤낮이 바뀐 생활까지 이어지자, 우울증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걱정 속에서 아이가 원할 때는 심리상담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아이는 자라 지방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취업을 요구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라”는 잔소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경제 활동도 거의 하지 않으며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마치 수도승 같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만 20세가 되면 독립시키라는 스님 말씀도 제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내가 사는 날까지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가볍게 살아가려 했습니다.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인도 성지순례 영상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영상에서 “내가 만든 울타리인데 뭘 그렇게 달라고 하느냐. 먼저 줘보라”는 말씀을 들으며 저는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명상센터에서 10일간 명상을 마친 뒤, 이를 더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명상을 이어 왔습니다. 그렇게 700여 일이 흐를 무렵,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고 1차 만일결사 10-5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이어가면서 감정의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줄곧 절에 다니기는 했지만 108배는커녕 10배 이상 절을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무릎에 물이 차고 붓기도 해서 그만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 도반이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도반이 법륜 스님께 발목 십자 인대가 끊어져 절을 하기가 힘들다고 질문하자, 스님이 걸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 도반이 걸음을 걷자 “그럼 절을 할 수 있겠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래! 무릎이 망가지더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08배가 너무 힘들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절반씩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한꺼번에 해보았습니다. 70배가 넘어갈 때쯤이면 정말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매일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다리에 근력이 붙어 튼튼해졌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절을 합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듯, 몸 스스로 변화를 통해 가르쳐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가 수행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명상 한 시간을 하고 이어 108배 정진을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경계가 닥쳐도 그저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예전보다 마음을 빨리 돌릴 수 있고, 그만큼 화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이 역시 한결 비워진 마음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앞둔 어느 날,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자기 계획을 말하면서 필요한 서류도 이미 다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딸은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마친 다음 날, 미국을 경유해 캐나다 캘거리에 안착했습니다.
저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숱한 일을 겪는 사이 어느덧 육십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의 수행 덕분인지 이제는 걱정이나 염려 같은 감정이 예전처럼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마음에 오래 머물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며 지켜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삶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나 우연은 없다고 이제는 분명히 느낍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법을 믿습니다. 정토회와 스님과의 인연 속에서 108배 정진과 법문은 저를 바꾸는 큰 힘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저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는 다짐을 명심문으로 정하고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김성희(서울제주지부 양천지회)
편집_이현숙(서울제주지부 양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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