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천지회
“독거노인을 찾는 독거노인”

인터뷰 요청에 수줍어하던 이임호 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단한 경지의 환경 실천으로 이미 여기저기서 잘 쓰였고, 쓰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무렴, 이런 이야기는 널리 널리 계속 알려야지!’라는 사명으로, 행복하고 감사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법륜스님보다 한 살 더 많은 할머니예요’라며 해맑게 웃는 이임호 님의 이야기 궁금하시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삶,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딸이 맺어준 인연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계속 일반 사찰에 다녔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은 딸이 맺어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책을 모두 읽은 딸이, 엄마가 그런 훌륭한 스님에게 불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조계사에서도 불교대학 모집을 했었는데 거리가 멀어 망설이던 중, 길에서 우연히 정토회 간판을 보았습니다. 딸이 1년 동안 꾸준히 권유했던 게 생각나 법당에 들어갔는데, 수행 법회 중이었습니다.

24년 12월 양천 YMCA에서
▲ 24년 12월 양천 YMCA에서

한 남자분이, 처음 온 제가 보시금을 준비하지 못해 곤란할까 봐 "보시 봉투만 넣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배려가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불교대학 입학금을 냈습니다. 2016년 9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11월에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왔습니다. 당시 65세로 나이가 턱걸이였습니다. 법사님이 괜찮겠냐고 걱정했는데, 그냥 돌아가면 딸에게 혼날 것 같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왔습니다. 그때 손수건 하나가 다 젖을 만큼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부터 경전대학까지, 결석 안 하려고 4살 손자도 데리고 다니며 중랑구에서 유일한 개근으로 졸업했습니다. 법륜스님이 즉문즉설 하는 곳은 다 따라가서 봉사했습니다. 법륜스님이 멀리서 오는 걸 보고 있으면 후광이 비추는 듯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있어서 봉사 마치고 집에 오면 허리도 아프고 피곤했지만, 스님 따라다니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천일결사 모둠장도 하고, 코로나 이후에는 불교대학 돕는 이도 했지만 척추 분리증으로 아파서 다 내려놓았습니다. 양천구로 이사 온 후에는 양천지회 환경 부꼭지를 맡았습니다. 양천지회에는 적극적으로 주최하는 분들이 있어서 다양한 환경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며 지냅니다.

24년 용왕산에서 행복학교 홍보활동(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임호 님)
▲ 24년 용왕산에서 행복학교 홍보활동(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임호 님)

유년기와 힘들었던 젊은 날

저는 딸 넷, 아들 하나인 집안의 장녀로, 1952년 전쟁 중에 태어났습니다. 4대 독자였던 아버지가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맬 때 할머니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덕인지 아버지는 상이군인이 되어서 돌아왔고, 동사무소에서 서기를 하다가 자녀가 늘어나니 어머니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동대문에서 장사했는데, 대부분 새벽에 나가 늦게 들어왔고 주말에도 바빴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보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

동생들이 생기니, 아직 어린 저는 애교도 못 부리고 서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던 남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차별이 심해서 질투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 사업에 부도가 났습니다. 숟가락 하나 덜어낸다고 저는 23살에 팔리듯 중매로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술을 즐겼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은 하지 않고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쓰고 싶어서 안달이었습니다. 저는 시장에서 한과도 팔고, 풀 붙이기 부업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남편의 빚을 갚았습니다. 남편은 결국 사채까지 쓰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될 무렵 혼자 사라졌습니다.

24년 7월 우장산 행복학교 홍보활동(맨 오른쪽이 이임호 님)
▲ 24년 7월 우장산 행복학교 홍보활동(맨 오른쪽이 이임호 님)

집 가구마다 빨간딱지가 붙고, 두 아이와 길에 나앉자 정말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몰래 모아뒀던 돈이 약간 있어서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을 얻었습니다. 화장실도 구더기가 많은 재래식이고, 부엌 바닥에는 지렁이가 가득하고, 다락방에 올라가다가 계단이 무너져 발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집을 구하냐고 이해를 못 했습니다. 아빠도 없는 아이들이 주인 있는 집에서 눈치 보며 살면 상처받을까 봐 싫었고, 아이들 놀기 좋은 마당이 있으니 그냥 살았습니다. 저는 자격증을 따서 어린이집에 취업했고, 놀이방 등에서도 일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집을 사야 한다는 목표로 월급 100만 원을 타면 7~80만 원은 저축했습니다. 상하기 직전의 배나 사과를 얻어와서 갈아 먹고, 끼니는 대부분 라면으로 때우며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웃는 걸 보려고 공부했습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하던 구립어린이집에서 나이순으로 권고사직을 받았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죽고 싶었습니다. 그때 딸이, "엄마가 죽으면 우리는 고아가 돼"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두 아이는 엄마가 너무 울어서, 웃는 걸 보려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엄마를 웃게 하려고 늘 1등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꼭 서울의대에 보내야 한다는 큰아들을, 돈이 덜 드는 포항공대에 보냈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닌 아들은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한의대에 입학한 여동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지금도 서로 챙기는 두 남매를 보고 있으면 아빠와 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둘이 우애가 깊으니 그저 감사합니다.

참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제가 인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과 딸이 저에게 너무 잘해줍니다. 한의사가 된 딸은 물심양면으로 저를 돌봐줍니다. 양천구로 이사 와서는 돈 없어서 못 갔던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고 싶던 마음도 다 잠잠해졌습니다.

‘나 하나라도 해야지’

없는 살림에 어렵게 살았던 습관이 있어서 뭐든 절약하고 검소하게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정토회 만나 환경실천을 하나둘 더하다 보니 이제는 13가지 환경실천은 기본이고, 주변에서 ‘왜 저렇게까지 하나’할 정도로 실천합니다.

겨울철 난방비 아끼며 신는 실내화
▲ 겨울철 난방비 아끼며 신는 실내화

여름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지냅니다. 더울 때는 얼린 수건을 목에 두르고 샤워합니다. 작년에는 너무 더워서 땀띠가 올라와 딸이 사준 손바닥만 한 선풍기로 버텼습니다. 겨울에는 매트를 네 개씩 깔고 실내화 신고 옷을 껴입습니다. 전기세, 가스비가 너무 안 나오니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관리인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고기를 안 먹으니 통풍 증상도 없어졌습니다. 세숫비누로 목욕하고 머리도 감고 비누 조각은 모아서 끝까지 사용합니다. 못쓰게 된 양산, 우산에서 분리한 천으로 가방과 돗자리를 만듭니다. 작은 옷은 손빨래하고 큰 옷은 모아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 세탁기 돌립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쓰고, 길에 버려진 멀쩡한 물품과 가구는 집으로 가져와 재사용합니다. 몇 벌 안 되는 옷은, 재활용한 옷걸이에 단출하게 걸어놨습니다. 뒷물 수건과 휴지는 쓰지 않습니다. 정토회 삼별단에서 5관왕을 해서 에코붓다에 글이 실리기도 하고, 담마토크 때 발표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에코스타 5관왕 상장
▲ 에코스타 5관왕 상장

정토회 활동 외에도 양천구청 소속 목5동 환경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안양천과 공원 등에서 봉사자들과 줍깅을 자주 합니다. 최근에는 너무 많이 버린 담배꽁초로 하수구가 막힐까 봐 꽁초 수거하고 일회용 재떨이를 나눠주는 활동도 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지구가 정말 몸살을 앓고 있구나 싶고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일 전쟁이 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심는 심정으로 환경실천을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자랑하려고 운동한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손자들을 위해서라도 환경실천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독립운동은 숨어서 했지만, 환경실천은 떳떳하게 할 수 있잖아요?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와 같은 말을 늘 듣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걸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탄소 발자국 줄이기로 문자도 열심히 지우고 노트북도 정토회 업무 외에는 쓰지 않습니다. 실천하고 있으면 마냥 좋고, 뿌듯합니다.

공동 정진을 하며 새 사람이 되는 기분입니다.

가슴에 울화병이 있어 화가 한번 오르면 감당을 잘 못 했습니다. 슬플 때는 너무 슬프고, 기쁠 때는 너무 기쁘고 감정의 격차가 컸습니다. 한번은 지인이 어깨를 '탁' 치면서 "살 좀 빼"라고 했는데 화가 확 올라왔습니다. 제가 뼈도 굵은 편이고 체격이 다부져서 자격지심이 있었던 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화가 나고 힘들었습니다. 오로지 아들만 챙기던 부모님과 저를 고생시킨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도 깊었습니다. 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해서 일도 중독된 것처럼 하는 편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따라 그린 금강경 그림 50점 중 하나
▲ 따라 그린 금강경 그림 50점 중 하나

작년부터(2024년) 그냥 한번 해보자고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게 너무 어려웠는데, 이제는 아침마다 공동 정진방에서 기도합니다. 정토회 오고 9년 됐지만, 기도를 시작한 최근 1년 동안 가장 많은 걸 배웠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했던 2016년에, 유수스님에게 질문하고 받은 기도문이 ‘부처님,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입니다. 그 기도문을 떠올리며 꾸준히 기도하니 아침 4시에 일어나면 감사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안개처럼 피어오릅니다. 전에는 "보살님처럼 행복 다 가지신 분 없어요" 하는 사람을 보면 ‘당신은 남편이 있잖아’하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열까지 복 중에 남편 없는 복까지 있느냐?"는 말을 들으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 빼고는 다 가졌는데 무엇을 그렇게 원망하고 살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도를 왜 안 하나, 주변에 널리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의 기쁨 이어가겠습니다.

3년 전, 91세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며 죽을 때는 1원도 못 가져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어차피 다 버리고 갈 거 뭐 하려고 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나누는 기쁨이 더 큽니다. 이제 다 큰 자녀들이 용돈을 주면 정토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시합니다. 10만 원을 보시하면 100만 원을 보시한 것보다 더 큰 감사함과 기쁨이 돌아옵니다. 법륜스님 만난 덕분에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올해 목표는 매일 일기 쓰기입니다. 또, 건강한 생활을 위해 손을 많이 쓰려 합니다. 예전에 불교박람회에서 박혜상 작가의 금강경 작품을 보고 감동하여 50장을 따라 그려봤습니다. 나이가 더 들면 손 떨려 못 할 텐데, 아직은 볼펜과 연필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 몸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으려 합니다. 몸으로 못할 때는 보시하면 됩니다. 오늘 오후에는 양천구 목5동 홀로 사는 어르신을 찾아뵙는 봉사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저도 독거노인이지만, 주변을 도울 수 있는 한은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실천도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살겠습니다. 지금 마음 홀가분합니다.

24년 7월 우장산 행복학교 홍보활동(오른쪽이 이임호 님)
▲ 24년 7월 우장산 행복학교 홍보활동(오른쪽이 이임호 님)


일흔이 넘은 나이쯤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이임호 님. 수행자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와 존경스러웠습니다. 작년 6.13대법회 때도 고령자는 참여를 자제하라고 했지만 ‘하기로 한 건 한다’라는 신념으로 무더위 속을 다녀가셨다고 하니, 그 성실함과 우직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시와 그림, 노래를 좋아하는 낭만 수행자 이임호 님의 삶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글_이정원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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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이임호 보살님~ 살아오신 모습에 놀랍고 감동입니다. 환경활동이 엄청나십니다. 수행보시봉사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신다는 말씀에 해탈하신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02-12 11:15:37

오흥란

환경담마 토크 때 환경실천 사례담 들으며 대단하시다~~생각했는데 글을 읽어보니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임호님 같은 분 덕분에 지구가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2025-02-07 13:11:37

조미경

이임호님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 감동입니다. 그나이에도 봉사활동과 정진을 꾸준히 하신다니, 저도 본받겠습니다

2025-02-07 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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