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김미정 님은 2024년 여름 명상 스태프로 갔던 선유동 연수원에서, 의견이나 문제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에는 눈물이 터져 펑펑 울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련이 될수록 차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고, 수행은 결국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 배'라는 큰 산을 넘고, 백일출가를 무사히 끝마칠 무렵, '잘 쓰이고 싶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재입재를 하여 영상팀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참 감동적입니다. 그 때문인지 마지막에 실린 사진 속 눈물은 처음과 다른 환희의 눈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정토회를 만나고 삶이 한층 가벼워졌다. 특히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하자 직장에도, 사람에도 예전처럼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전보다 훨씬 편해졌지만, 어느 날 문득 열정 가득했던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느슨하게 사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올해는 반드시 설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다짐으로 2024년 새해를 시작했다.
어느덧 여름이 되어 여름 명상 스태프로 선유동 연수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나의 업식을 마주했다. 나는 상대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 내 의견이나 문제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못했다. 이런 내 업식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국엔 눈물이 터져 펑펑 울고 말았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수련이 될수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차츰 꺼낼 수 있었고, 그때 깨달았다. 수행은 결국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과정임을. 이렇게 하면 정체되어 있던 수행도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 스태프 중 백일출가를 준비하는 도반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솔깃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 끝에 백일출가 48기에 신청하게 되었다.

입방 면접 중 공통된 질문이 있었다. “만 배 할 수 있겠어요?”
“해봐야 알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이렇게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뿌듯해했다. 그러나 이어진 법사님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중도 포기할 생각이면 백일출가를 안 하느니만 못해요. 벌써 도망갈 구멍을 만들고 있네요.”
그 순간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법사님의 말이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 백일출가 입방 전까지 2주간 천일결사 기도와 300배 정진을 하자! 그런 열정도 없이 무슨 출가를 해? 못 지키면 포기해야지!’
이제껏 천일결사 기도도 꾸준히 해본 적 없으면서 300배 정진을 연달아 해봤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오기인지, 절박함일지 모를 결심은 스스로 약속했던 2주를 기어코 지켰다. 그렇게 나는 백일출가 합격 통보를 받고 문경으로 향했다.
백일출가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입방 전 ‘만 배’라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만 배까지 갈 길이 멀었는데, 허벅지는 찢어질 듯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온몸이 아프다는 말로 부족했다. 나는 왜 만 배를 하는지 생각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고통 때문에 울고 또 울며 절을 했다. 이윽고 마지막 날, 법사님께서 “아무 생각 없이 절만 하다 보면 단순한 운동이 될 뿐입니다. 한 배 한 배 소중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해보세요.”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남은 500배는 밥알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먹듯이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집중하니 신기하게도 아픈 곳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대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사 대표님이 부하직원들 앞에서 마치 기를 죽이려는 듯이 나를 지적했던 일, 당시 나도 질세라 맞서며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그런데 만 배를 하며 돌이켜보니, 은연중에 대표를 무시하고 있었던 나에게 진짜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장 무시하고 있었다. 특히 가족에게는 여과 없이 내 감정을 표현하며 못나게 굴었다. 그제야 나에게 상처받았을 가족, 직장 동료, 지인들이 한 사람씩 떠올랐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눈물로 참회하며 다시는 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만 배는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수련이 시작되고 부모님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부모님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부모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무시하는 것, 체면치레하는 것, 끝까지 듣지 않고 성급히 판단하는 것 등. 그동안 부모님에게 불만스러웠던 점들이 모두 내 모습이었다. 이런 알아차림이 불편하면서도 놀라웠다.

이후 부모님에게 감사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덤덤하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셨으니 감사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고모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무서운 마음에 부모님에게조차 알리지 못했다. 그 일을 부모님께 털어놓은 건 서른 살쯤 돼서였다. 그 후로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고모부만 원망한 게 아니라 부모님도 원망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무능력해서 어린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그래서 어린 내가 혼자서 공포를 견뎌야 했다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모님을 탓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돌이켜보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자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뒤늦게 과거 일을 알게 된 부모님은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았는데, 정작 딸이 필요할 때 보호해 주지 못하고, 의지가 되어 주지 못했음에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집안의 장녀와 장남이었던 부모님은 밑에 딸린 동생들을 건사하고, 자식 셋까지 키우며 온갖 뒷바라지를 하셨다. 오로지 자식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렇게 충분히 사랑받았고, 부모님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자 오랜 원망도 눈 녹듯 사라졌다.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 자랐으니,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세상에 회향할 차례였다. 그래도 내 안에 채워진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무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이었다.
만 배 이후에도 300배 정진을 하다 보니 허벅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서 당분간 주력 정진 주문(呪文)을 지속적으로 외우는 수행법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2주 넘게 주력 정진을 하는데,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어느 순간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절을 하다가, 통증이 느껴지면 명상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정진했다. 그리고 며칠 후, 반장님이 어떻게 정진하고 있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명상과 절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반장님은 “왜 마음대로 정진하느냐. 몸이 나았으면 300배를 하고, 몸이 계속 아프면 병원에 가서 먼저 치료한 후 주력 정진하라”고 하셨다. 꾸지람을 들은 것 같아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오기가 발동해 다음 날 300배 정진을 시도했다. 그런데 웬걸? 허벅지가 당겼지만 300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반장님의 호통이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꾸지람을 듣고 불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반장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정진뿐 아니라 나는 일을 할 때도 몸을 사렸다. 농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어깨가 아프고 손목이 아프면 어느새 속도를 늦춰 적당히 일했다. 같이 하는 한 도반은 “미정 님은 몸을 참 아끼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만 몰입하면 되지 모든 것을 다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적당히만 하는 스스로에 대해 문제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적당히 하는 것에 만족하는가? 한계에 부딪히면 지레 겁을 먹고 멈추는 것 아닌가? 가슴 뛰는 일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나 자신에게 화두처럼 던진 의문들이었다.

백일출가 기간 여러 가지 화두가 떠올랐고, 궁극적으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동안 막연히 따뜻한 사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되물으며 답을 찾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다 도반들과 나누기 하는 도중,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따뜻한 사람, 사랑을 주는 사람의 기준이 따로 있을까? 지금 나에게도 따뜻한 마음과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걸까? 지금 이대로 충분한 건 아닐까?’
결국 내가 찾은 답은 ‘그냥 이대로 살래요!’였다. 몸을 사리는 모습도,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는 모습도,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도, 가슴 뛰는 일을 찾는 모습도 모두 나의 조각이고, ‘이대로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자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것 같았고, 마음이 후련해졌다.

백 일 동안 나에게 집중하고, 도반들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자신의 변화가 아주 만족스러웠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수행의 끈은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백일출가가 끝나갈 무렵, NGO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JTS, 평화재단, 좋은 벗들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토회의 철학에 감탄하며, 한 명의 정토행자로 자부심이 들었다. 그리고 행자대학원을 졸업하고 활동가가 된 백일출가 선배 도반들을 만났다. 특히 영상팀에서 활동하는 선배 도반에게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전법하고 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내 가슴도 쿵쾅대기 시작했다. ‘함께 행복해지자’라는 원(願)으로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늘 생각에 머물 뿐 오직 내 안위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반성이 들었다. ‘잘 쓰이고 싶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엔 실천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재입재를 하였고, 현재는 영상팀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디든 잘 쓰이겠다’라는 마음을 100% 실천한 것은 아니다. 지금 맡은 소임만 봐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100%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해야만 수행이 아니라, 부족해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수행이라는 걸 배웠다. 30%든 50%든,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만 놓지 않는다면, 그 힘을 동력 삼아 모자이크 붓다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물론 여전히 놓치는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놓치면 깨닫고, 또 놓치면 다시 깨달음을 반복하며 느리더라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마다 방긋 웃으며, 새롭게 수행하는 나는 백일출가 48기이다.
글_김미정(48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6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사람을 먼저 보고, 수행으로 다시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