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코로나 시기 숨 쉴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 시골에서 돌밭을 일구다가 남편과 다툰 일을 계기로 결국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다는 신용민 님. 백일출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내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금은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며, 돈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닌 삶을 즐겁게 해주는 노동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코로나에서 백일출가로

코로나와 백일출가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돌이켜보니 나의 백일출가는 코로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코로나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하여 2020년에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신종 감염병으로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은 사람들을 공포와 패닉에 빠뜨렸습니다. 전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고, 대형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남편과 저는 개인 건강상의 이유 외에도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과 접해야 하는 직업인지라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신용민 님
▲ 신용민 님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은 과거 메르스 사태로 많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발병 초기부터 빠르게 대응했으며, 특히 직원들을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남편은 소아암 환자를 돌보는 업무상 집과 병원만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시작했고, 이러한 생활 수칙은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저와 아이들 모두 출근하는 것 외에는 어떤 모임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각자의 공간에 머물러 접촉을 최소화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1년 정도 지속되자 ‘언제쯤 끝날까?’ 하는 기다림과 ‘머지않아 해결되겠지’라는 기대감이 점점 우울함과 답답함으로 변해갔습니다. 몇 년 전 장만한 시골집이 주말마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돌파구였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이중으로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남편이 항상 밤늦게 들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반면, 코로나 중에는 남편이 퇴근하면 식사 준비로 바빠졌고, 주말에는 시골에서 밭농사하느라 육체적으로도 힘든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의 생활 방식에 맞춰야 갈등이 안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철저히 계획하고 사전 준비가 완벽한 남편과 달리, 저는 즉흥적이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충 처리하는 성향이라, 일 처리 방식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잠깐씩 함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쌓여갔습니다. 마치 김을 빼지 못한 압력솥이 터지듯,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시기 1년여 동안 시골 돌밭을 일구며 소처럼 일해왔는데, 이듬해 3월 남편이 앞마당에 심어둔 매실나무가 적절한 장소에 있지 않다며 뒷마당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녹지 않은 땅을 파느라 손에 물집이 잡히고, 두 사람이 끌어야 할 정도로 큰 나무 세 그루를 옮기고 나니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나머지 네 그루도 옮겨야 하니 빨리 와서 땅을 같이 파자고 재촉했습니다. 이미 지친 저는 마음속 응어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 더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일하기 싫으면 뭐 하러 왔냐?”는 남편의 핀잔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저는 화가 나서 “내가 다시는 같이 오나 봐라”라며 감정을 터뜨렸습니다. 그 후 우리는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되었고, 결국 백일출가로 이어졌습니다.

각자 원하는 길에서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일 수행 중(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신용민 님)
▲ 일 수행 중(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신용민 님)

더 이상 남편과 시골집에 함께 가지 않으니, 주말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서먹해진 관계로 주중에도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정말로 재미있어하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남편에게 맞춘다는 명목 아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수동적인 편안함만을 추구해온 제 삶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감출 수 없는 저의 비겁함이자 의존심이었습니다. 계획적이라 꼼꼼하게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남편의 성향은 저에겐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졌고, 저는 점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아이 열이 몇 도인지 묻기에 “몸이 불덩이 같은데 뭔 열을 재. 안 재었어”라고 하자 남편이 “왜 열도 안 재보고 전화하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자식 문제도 감정보다는 직업적 대처가 먼저인 남편의 모습에 상처받고, 쓸데없는 열등감을 느끼며 스스로 마음에 생채기를 만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잘나고 못나고’, ‘옳고 틀리고’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이해와 포용보다는 미움과 원망을 켜켜이 쌓으며 살아왔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큰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제 삶에는 많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저는 시간 대비 효율을 중시한다고 스스로 변명하지만, 작은 일도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하며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남편은 나에게 동지이자 경쟁자이며, 동시에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허상을 벗으니 무아가 보여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데?”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그걸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 생각들은 백일출가 동안 화두처럼 떠올랐습니다. 막연히 남을 위해 봉사하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기쁘겠다고 추상적으로 생각해왔지만, 과연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백일출가는 저 자신의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알아보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일출가는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머릿속을 채우는 건 단지 '식사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언제 화장실을 갈 수 있을까?', '왜 제시간에 끝내지 못해 취침 시간이 늦어지지'” 하는 단순한 몇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 ’무아집(無我執)’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라고 여긴 고상하고 우아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루하루 육신의 편안함만이 가장 큰 관심사인 생명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는 허상이 조금씩 금이 가고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가 해결된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 속에서 내가 추구해온 것들이 결국 정신적 허영심일 뿐이며, 물거품같이 쉽게 무너지고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잘나고 인정받고 싶어하던 제 삶의 방식이 도반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불편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던 중 각자의 느낀 점이나 깨달은 방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스태프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전달해야 한다는 저의 주장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제 삶의 방향이 순수하게 제 생각과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저를 어떻게 보느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방식이 저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상황에 따라 비굴해지면서 자신감과 방향을 잃은 채 헤맸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나를 돌아보게 한 도반과의 갈등

고라니 밭에서(왼쪽 첫 번째가 신용민 님)
▲ 고라니 밭에서(왼쪽 첫 번째가 신용민 님)

단순해 보이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스트레스는 결국 가까이 있는 도반들에게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마음 나누기 시간에, 사소한 문제가 불만의 불씨가 되어 작은 일이 크게 부각되었고, 걸러지지 않은 거친 말들이 오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분담해야 했기에 백일출가 수련생들도 공양간에서 식사 준비를 맡았습니다. 특히 아침은 발우공양으로, 음식 준비가 상당히 까다로워 우리 도반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각자 맡을 소임을 정하던 중, 한 도반이 비교적 쉬워 보이는 밥 짓기를 하겠다고 하자 저도 모르게 “쉬운 일만 하려고 하네”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 도반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뺀질거리는 사람으로 말했다고 생각하여 이후 저에게 상당히 공격적인 말투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반찬을 만드는 일이 실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 밥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 여겼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과했지만 그 도반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차갑고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대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으로서 잘잘못을 떠나 연장자가 사과했으면 수용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풀어나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도반의 모습은 저의 태도와 행동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평소 솔직하게 제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쌓아둔 것들이 결국 다른 부분에서 터져 나왔고, 그 도반도 그것을 알아차려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겉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감정들은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은 가능한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자란 2%를 채우기 위해

일 수행 중(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신용민 님)
▲ 일 수행 중(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신용민 님)

삶의 중반을 넘기고 정년을 맞아 인생 2막을 앞둔 시점에서 돌아본 저의 삶은 외형적으로는 안정되고 부족함이 없으나 어딘가 부족한 2%는 여전히 개인적인 갈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잘 유지하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는 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사회적 기여와 인간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아쉬움, 직장 내에서 어른으로서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모자란 요소들로 느껴졌습니다.

백일출가 생활을 통해 ‘나’를 버리고 ‘내 것’이라는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는 것이 저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습니다. 이제 정년 이후의 삶은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닌, 삶을 즐겁게 해주는 노동을 하고자 합니다. 설령 힘든 일이 있더라도 고(苦)와 락(樂)이 하나이고 윤회한다는 가르침을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참을 수 있는 힘을 얻었기에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의료인으로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진리에 따라 잘 쓰일 수 있는 길을 찾아 인도 지바카 병원에 봉사활동을 신청하였고,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지적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깨우침을 얻은 후, 불교대학에서 백일출가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해온 저의 수행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보려 합니다. ‘시작하면 가능해진다’는 말처럼 저의 봉사와 수행이 하나가 되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첫발을 힘차게 내디디려 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11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신용민(백일출가 4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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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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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화(자재왕)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발로.
나를 찾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수행자로서의 정체성.
우리는 모자이크 도반입니다.
고맙습니다.

2025-05-07 13:00:01

보각심

백일출가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의식주가 갖추어진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인간도 한 생명체라는 것에 공감합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잘 살고 있는것은 나의 수준이 아님을 알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2025-05-07 09:50:20

견오행

깨달음을 실행으로 옮기는 신용민님의 원력을 찬탄합니다. 용민님의 글이 불법의 따뜻한 곳에만 안주하고 있는 저를 뉘우치게 합니다. 많은 부분들을 공감합니다. 용민님의 원행에 제불과 제보살님들의 축복과 가피가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늘 함께 합니다.감사합니다.()()()

2025-05-06 09: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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