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17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식사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얼마 전 부탄을 두 번 답사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종교인 분들은 스님이 하고 있는 부탄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들 한마디씩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이 부탄에 가셔서 민생을 챙기는 새마을 운동을 하고 계시네요.” (웃음)

“스님은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경험을 정말 유용하게 잘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고생하며 자란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냥 돈만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화덕을 만들고 연기를 집 밖으로 빼고 공사를 같이 하고, 산속을 답사하고, 이런 모습 자체가 현지 주민들에게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 같습니다. 아무나 흉내 낼 수가 없는 활동 같아요.”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수행하는 사람인데 집 짓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자고 살았는데요. 천막을 쳐놓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주민들이 집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집 짓는 활동을 통해서 활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하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주민들은 자꾸 정부에 뭔가를 해달라고 요청만 하고,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고, 이렇게 부탄이 지금 침체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부 관계자들에게 주민들에게 지원해 주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JTS 활동가들이 집수리를 해주니까 맨날 술만 먹던 집주인이 자기도 일을 거들면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스님께서 주민들 스스로 ‘내가 집을 고쳐야겠다’ 하는 생각을 불어넣어 준 것 자체가 굉장한 계몽 운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탄에 답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가볍게 나눈 후 지난 4.10 총선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대한민국이 동서로 나뉘어졌다고 할 정도로 국론 분열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국론 분열을 완화시키고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런 시기에 종교인 모임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지나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통합형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종교인 모임에서 제안해 왔던 내용이기도 하고, 윤석열 정부 초기에도 제안했던 내용입니다. 지금과 같은 승자 독식의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 중심제로 바꾸거나, 최소한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통합형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우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제왕적 제도를 개선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나아가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선거제도 자체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병립형 대신 연동형을 채택하고 있는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위성정당을 허용해 주는 바람에 연동형의 원래 취지와는 맞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면 독일처럼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대안이 있는데, 대신 중선거구제는 정치 신인이 선출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중선거구제에서는 늘 당선되던 사람이 계속 당선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반면에 소선거구제는 아무리 유명하거나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일대일로 다른 후보와 경쟁해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지만 그 장단점을 잘 살펴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독일과 같이 소선거구제에 기반하면서도 정당명부제를 운영하는 방식이 좋은 절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명부제를 전국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경상도는 경상도대로, 전라도는 전라도대로, 이렇게 지역적으로 나눠서 적용하면 조금 복잡해지는 점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균형 잡힌 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제의 경우에도 독일의 선거제도를 일정 부분 본받아서 만든 형태입니다. 그래서 잘만 운영하면 장점이 많은데, 위성정당을 허용한 선관위에서 판단을 잘못했다고 보여집니다. 위성정당을 하지 못하도록 결정을 내렸어야 그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누가 봐도 악용될 소지가 있는 위성정당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좋은 제도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선거제도는 가능하면 사표(死票)가 적은 방향이 좋습니다.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에서는 한 표라도 더 얻으면 그 사람이 당선되고, 나머지 절반 가까운 표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때 당선자에게 가지 않은 표로 나타난 민의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집권하면 이전 정부에서 했던 걸 다 무시하고 새로 판을 짜는 게 아니라, 외교와 안보는 큰 틀에서 중심을 잡아서 이어나가고, 그 외 세부적인 정책은 집권 정당에 따라 특징을 달리하는 정도로 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국민통합형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종교인 모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뜻을 모았는데, 막상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점도 있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국민통합형 헌법 개정과 선거법 개정을 제안하고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6월 13일에 개최하는 국민대법회는 한반도 평화, 국민통합, 국가의 지속적 발전, 이렇게 세 가지를 중심 주제로 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님의 제안에 종교인 분들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이번 총선과같이 다수당이 야당이 되면 국무총리를 야당에서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행정은 국민의 다수당이 하도록 하고,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외교를 담당하는 것이 지금의 민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각자 담당한 바를 맡는 일종의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내각제로 바꾸는 방안도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든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가면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도 대통령이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여서 실제로는 다수당이 할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이게 됩니다. 지난 2년이 그랬으니까요.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반영하는 방법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현 정부의 안보 정책에 우선 제동이 걸린 상황입니다. 앞으로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봐야겠지만, 남북문제만 생각할 때 만약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남북문제는 전향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미국 측에 여러 가지 제안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국에서는 누구보다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도 남북문제를 해결해서 역사에 남는 업적을 이루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었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습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도 만약 남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기여한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에 헌법 개정을 한다면 제7공화국이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소소한 건 다 잊히고 결국 제7공화국의 포문을 누가 열었느냐 하는 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거예요. 만약 헌법 개정을 하는 것과 함께 초당적으로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되면 오히려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전환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겠죠.”

한반도 평화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9시가 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현재 부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생산 활동을 지원하며, 교육과 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부탄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올해는 몇 곳을 지정해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내년에는 이를 본보기로 하여 한 주 전체를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실행할 계획입니다. 잠깐 답사 영상을 함께 보고 대화 나누겠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스님이 부탄을 답사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보기

”재미있어 보이죠? 몸은 피곤하고 고단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요일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다시 부탄으로 가서 일주일간 답사를 할 계획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우리들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오지에서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가 알아주는 것은 그들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참 소중한 존재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즉문즉설을 한 후 11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정기 연구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달 세미나 주제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서강대 명예교수 이덕환 님이 주제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이덕환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이 단순히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목표임을 강조하며, 현재의 과학기술 정책과 교육 현황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해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한국이 과학기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함에도 불구하고 그 효율성과 관리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초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는 과학교육의 현황을 검토하면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과학기술 강국으로의 비전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오해와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문제로 분석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대중 사이의 소통을 강화해야 하며, 과학 연구 및 개발을 더 잘 지원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술적 성취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번영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교육, 정책,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시간 동안 발제를 듣고, 곧바로 토론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과학기술 연구 예산의 부적절한 분배와 정부의 부적절한 예산 관리, 과학기술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화재단 이사장인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잘 들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더불어 다양한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근대화가 늦었기 때문에 모방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100년간의 교육이 대부분 서구를 모방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방 교육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모방 교육이 성공해서 한국이 선진국과 나란히 서게 되니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실패가 곧 성공

그러나 이제는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능력을 키워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는 창조적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모두 모방적인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창조적인 사회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신은 말로만 존재하고, 누구도 쉽게 혁신하기가 어려워요.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죠. 실패는 필연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패를 경험하고 개선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실패를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실패 속에서 배우고 발전하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이덕환 교수님도 짧게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네, 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높은 곳에 올라서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남을 모방하는 성공을 넘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과학기술 지식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만을 위한 노력보다는 함께 잘 사는 미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을 평화재단이 앞장서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사님을 배웅하고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에서는 총선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국론 분열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부탄을 답사하고 온 소식을 간단하게 공유한 후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자책과 아쉬움이 남는다며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스님께 아버지가 간단한 허리 시술을 받으시고 재활 운동을 하시지 않아 대소변을 3개월간 받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질문드렸습니다. 스님께 질문드린 뒤 일주일 뒤에 아버지께서는 봄날 벚꽃 지듯이 편안하게 영면에 드셨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크게 문제없다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편해지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돌아가시니 자식 된 마음으로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께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요?”

“일주일밖에 못 사실 분이었는데 만약 운동을 시켜드렸으면 얼마나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의 생각이 그만큼 짧은 겁니다. 아버지에 대해 고민이 되어 질문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1년을 더 살게 될지 2년을 더 살게 될지 하루를 더 살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래 살게 되면 ‘운동을 시켜드릴걸’ 하고 후회하고, 빨리 돌아가시면 ‘괜히 운동시킨다고 아버님을 고생스럽게 했다’ 하고 후회합니다. 그래서 이래도 저래도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어떤 일을 해도 늘 부족한 게 생길 수밖에 없어서 항상 이러면 이것이 문제이고 저러면 저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부정적 사고라고 해요.

그런데 관점을 바꾸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얘기를 같이 나누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고통 없이 돌아가셨으니까 돌아가신 분한테는 좋은 일입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편안하게 잘 돌아가셨다’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섭섭하게 받아들입니다. 자꾸 내가 섭섭한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아버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게 중요하잖아요.

아버님이 막 고통을 겪으면서 시간을 끌면 자식들은 간호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지칩니다. 그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실 바에야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럴 때 돌아가시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절대로 안 합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돌아가셨다’ 하고 얘기하죠.

그러니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돌아가셨다’ 하고 아무런 미련이 없으려면 아버님이 몇 달을 아파서 고생을 해줘야 하는 겁니다. 자식의 정을 끊으려고 부모가 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병환을 오랫동안 앓고 있다고 해서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조금 전까지 얘기 나누다가 금방 돌아가셨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생사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후회한다고 다시 살아나시는 것도 아니고 되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는 ‘고생 안 하시고 잘 돌아가셨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속 살아계시면 ‘그래도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상황이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고생하고 사셨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니 참 잘 됐습니다. 아버님, 이제 편안하게 가십시오. 자식이 똥오줌 받아내는 것에 미안해할 일도 없고,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항상 일어난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버님을 좀 편안하게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할 수는 있는데,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만 괴로울 뿐이죠.

저한테 질문한 덕분에 아버님이 마음 편안하신 대로 두자고 마음을 냈고, 좋은 마음을 쓰니까 아버님도 ‘그래, 안녕!’하고 잘 가셨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아버님도 편안하게 가셨고, 질문자도 참 잘했다고 정리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붙잡고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바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컵의 물을 반쯤 쏟았어요. ‘안 넘어졌으면 안 쏟았을 거 아니야?’ 하거나 ‘절반이나 쏟다니! 하고 후회한다고 해서 쏟아진 물이 다시 담기지는 않습니다. 절반을 쏟았으면 ‘넘어졌는데 그래도 절반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어난 일은 똑같지만 나한테 더 좋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다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면 ‘기도해도 소용없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기도했더니 한 다리만 부러졌네. 한 발로라도 걸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낫습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부탄에 가서 잠도 못 자고 죽을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아무도 못 가본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덜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안 받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불평하기 시작하면 몸도 아파지고 온갖 괴로움이 생겨요.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걸 계기로 해서 항상 지금이 좋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야단을 쳤는데, 만약 아이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면 얼마나 후회가 됩니까? 우리는 한 치 앞을 못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오늘 저녁에 죽는다 하더라도 후회가 없게 행동해야 합니다.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할까?’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는 항상 지금 좋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지금 일어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제 자신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꾸준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SBS 방송국 공개홀에서 TV 프로그램 ‘좋은 아침’에 출연하여 부처님오신날 특집편 녹화를 하고, 저녁에는 인도의 싱크탱크 관계자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하여 함께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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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할까?’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는 항상 지금 좋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4-23 08:38:38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4-23 06:35:30

이은영

정치의 변화.과학의 변화.삶의 변화..
모든 면에서의 실패의 소중한 발견과 그 속의 발전.긍정적인 관점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2024-04-22 0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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