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26 부탄 답사 2일째 (쿤가랩튼, 삼초링, 콜푸, 납지)
“나이는 드는데 보잘 것 없는 제 모습이 괴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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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답사 2일째 날입니다. 트롱사 종각(Trongsa Dzongkha)의 쿤가랩튼, 삼초링, 콜푸, 납지 치옥을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부탄의 행정 구역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20개의 '종각 (Dzongkhag)'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큰 지역입니다. 각 종각은 여러 개의 '게옥(Gewog)'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 게옥은 더 작은 지역인 '치옥(Chiwog)'과 그 아래 단위인 '마을(Village)'로 나누어집니다. 이렇게 부탄의 행정 구역은 종각, 게옥, 치옥, 마을의 네 단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스님과 JTS 답사단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 4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숙소 인근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운전 기사님은 너무 피곤해서 출발 직전인 6시 30분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관광 운전하는 줄 알고 왔어요. 이런 일정인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겁니다.”

운전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부탄 내각 비서실의 린첸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사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사님에게 부탄이 어떤 나라인지 제가 관광시켜 줄게요. 기사님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들일 거예요.” (웃음)

식사를 마치고 첫 번째로 쿤가랩튼(KuengaRabten) 치옥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수로가 산사태로 파괴되어 그곳을 보러 갔습니다. 수원지로 향하는 길목에 내리자 우리나라의 면장(면의 책임자)에 해당하는 콜푸 게옥의 겁이 나와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지도를 함께 살펴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수로가 파괴된 지점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스님과 JTS 답사단, 내각 공무원들은 함께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가파른데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가시나무와 풀이 정글처럼 우거져 있었습니다. 길도 무척 미끄러웠습니다.




50분을 걷자 산 중턱을 흐르는 수로에 도착했습니다. 1년 전 산사태가 나서 수로를 덮쳐 물이 더 이상 흐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올해 농사를 몇 월부터 시작해요?”

“5월이요.”

“5월 전까지 수리해야 농사를 짓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스님과 답사단은 무너진 곳을 보며 축대를 쌓는 게 좋을지, 기둥을 세워서 파이프 또는 시멘트 수로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더욱 미끄러웠습니다. 스님은 올라올 때와 달리 미끄러운 길도 빠르게 내려왔습니다. 활동가들은 두 발로 내려오기가 어려워 아예 앉아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9시 30분에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지난 2월 답사 때 방문한 적이 있는 삼초링 녹차하우스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티백 10박스밖에 제작을 못 할 정도로 생산 효율성에 문제가 있었고, 티백이 잘 찢어지는 품질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의논을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지난 방문 때 한국으로 가져갔던 녹차를 시음해 본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 가져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었는데 다들 맛은 괜찮다고 했어요. 포장을 해주는 기계가 더 필요해요?”

“포장을 자동으로 해주는 기계가 필요합니다.”

“녹차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는데 자동화된 기계가 필요해요?”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속도가 너무 늦고, 자동화 기계는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그 중간에 해당하는 적당한 기계를 찾아보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아직은 생산량이 적으니까요. 나중에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면 그때 자동화 기계 도입을 검토합시다.”

“티백에 들어가는 양 조절을 손으로 직접 해요? 자동으로 하고 있어요?”

“손으로 직접 넣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본 기계 중에 티백에 넣는 것은 자동으로 해주는 기계가 있어요.”

“네, 제가 찾아본 기계도 그런 기계가 있었습니다. 스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두 번째는 티백 종이를 조금 더 튼튼하게 교체해 줄 필요가 있어요. 포장지를 찢다가 안에 티백도 같이 찢어져 버려요. 그래서 종이의 재질을 더 튼튼하게 하는 방법과 포장지를 찢는 지점에 점선 표시를 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점선 표시된 곳만 찢도록 하면 안에 든 티백을 건드리지 않으니까요.”

논의를 마치고 직접 포장하는 기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녹차 하우스 주인이 직접 포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드네요. 더 좋은 방법을 연구해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40분 동안 회의를 한 후 10시 10분이 되어 콜푸 게옥 사무소로 이동했습니다. 3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며 스님이 실무자들과 부탄 공무원들에게 말했습니다.

“JTS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농업용 수로는 그 마을에 사는 200여 가구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잖아요. 그런 일은 돈이 들어도 할 만해요. 그런데 녹차 티백 생산은 만약 2천만 원 주고 기계를 사준다면 녹차 협동조합원 17가구에만 혜택이 돌아가요. 그 사람들한테만 그렇게 이익을 주면 안 되거든요. 현재 수준에서 조금 더 나은 정도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탄 공무원들도 스님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창밖으로 산 위에 계단식 논이 정말 많았습니다.


“산 위에 논을 만든 것 좀 보세요.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농사를 지을까요? 땅이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그런데 물이 저 아래에 있으니까 농사 짓기가 정말 힘든 거예요.”

콜푸 게옥 사무소로 향하는 길은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절벽에도 도로가 다 깔려 있는 것에 감탄하며 약 3시간이 지나 콜푸 게옥 면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콜푸 게옥 면사무소 직원들이 스님과 답사단을 반갑게 맞아준 후 따뜻한 차와 간식을 내주었습니다.


차를 마신 후 다함께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한류 덕분에 부탄 사람들도 라면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밥을 먹자 마자 곧바로 1시 40분에 콜푸 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치옥은 지난 2월 답사 때 방문하지 못한 곳입니다. 지나가는 길목에 치옥의 리더인 촉바들이 나와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 현황을 보고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방문 때 꼭 들르겠다고 약속했고, 이번 방문에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때 만났던 촉바는 스님이 치옥에 도착하자 무척 기뻐하며 달려 나왔습니다.

먼저 절을 참배했습니다.


절을 참배하고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코와 입을 가리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스님에게 자신들의 숨결이 닿지 않도록 하고 축복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들의 전통에 따라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었습니다.

축복을 하고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나요?”

“네.”

“눈은 잘 보이세요? 귀는 잘 들리세요? 이는 괜찮아요?”

나이 지긋한 분들이 서로 앞다투어 눈, 귀, 치아를 가리키며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스님은 촉바에게 마을에서 가장 열악한 집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 몸이 불편한 딸이 함께 사는 집으로 갔습니다. 화덕에서 나온 매캐한 냄새가 집안 가득했습니다.


무엇을 개선해주면 좋을지 함께 살펴보고 이번에는 마을에서 중간 정도로 잘 사는 집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선반이 있고 가스레인지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선반을 놓아서 요리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네요.”

두 집을 비교해보며 어떻게 개선해 주면 좋을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마을은 아주 오래 전에 지은 전통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촉바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있나요?”

“네, 두 사람 있어요. 움막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물 문제는 정부에 요청해서 지금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재가 가장 걱정입니다. 보시다시피 나무로 지은 집들이 아주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혹시 불이 났을 때 끌 수 있는 시설과 물이 부족합니다.”

두 번의 화재가 있었지만 결국에 집이 타 버리고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와 축복을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차 한 잔 하고 가시라는 촉바의 권유에 함께 차를 마시며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마을을 둘러보고 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두 가구가 있고, 가난한 집이 두 가구가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불을 때는 집은 가난한 두 가구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집이 대부분 나무로 지어져 있어서 화재가 났을 때가 큰 문제입니다. 카다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에 대한 피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농업 용수 문제는 논이 납지 치옥과 같이 있어서 함께 해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 귀, 이가 좋지 않은 노인들을 치료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백내장은 치료가 쉬운데, 녹내장이나 다른 질환은 치료가 어렵습니다. 치아가 빠진 노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치아가 전부 없는 노인은 없었어요. 일부 노인들은 틀니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틀니는 치아가 완전히 없을 때 하는 겁니다. 귀가 좀 안 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아예 안 들리는 사람은 보청기를 껴야 하고요. 그러나 보청기가 비싸기 때문에 증상이 심한 사람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까?”

“스님께서 정확히 파악을 하신 것 같고요. 그러나 마을이 점점 커질 경우를 대비했을 때는 식수 부족 문제가 곧 생길 것 같습니다.”

“파이프를 교체하면 돼요? 수원지를 따로 찾아야 해요?”

“기존 수원지가 점점 마르고 있어서 새로운 수원지로 옮겨야 합니다. 저희가 찾은 새로운 수원지는 마을에서 4km 떨어져 있습니다.”

화재시에 방화수 확보 문제는 일단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차차 해결책을 마련해 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2시간 동안 콜푸 치옥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납지 치옥으로 갔습니다. 건너편 산에 납지 치옥이 보였습니다.

“이야, 저 논 좀 보세요. 저곳이 납지 치옥입니다. 부탄에 이렇게 많은 논이 잘 없어요.”

이 치옥은 지난 답사 때 들렀지만, 400년 만에 고승이 왔다고 환영 행사를 거하게 하는 통에 결국 마을은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납지 치옥 촉바의 안내로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절 주변으로 약 7km 정도를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상태였습니다.


지금껏 방문해 본 마을 중에서 가장 형편이 좋아 보였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등 목재를 다듬고 있는 곳이 세 군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업용수와 하수가 같이 마을에서 흘러 내려오고 있어서 이후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였습니다. 하수도를 보며 스님이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하수와 농업용수를 같이 흘려보내는 것이 괜찮았지만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비누, 샴푸, 세제 등을 사용하게 되면 하수가 오염되어 농작물에도 안 좋고, 강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가정별 하수 처리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농업용 수로 역시 문제였습니다. 수로가 시멘트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맨 아래 논에는 물이 아예 닿지 않아 땅을 내버려둔 상태였습니다.

“시멘트만 지원해 주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수로를 만들 수 있겠어요?”

“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공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열악하게 산다는 사람의 집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이제 숙소로 가서 전체 회의를 합시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방 한 칸에 모여 다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오늘 답사한 결과와 이후 계획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스님이 오늘 방문한 쿤가랍탠 치옥과 삼초링 녹차하우스, 콜푸 치옥과 납지 치옥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어떤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면 될지 큰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방문하게 될 님송 치옥에서 주안점을 두고 봐야 하는 내용들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내일 주민들을 모아야 하는지 촉바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 주민들의 요구를 들었으니까 이번에는 게옥과 치옥의 공무원들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면 될 것 같아요. 굳이 주민들이 모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주민들의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치옥에서 공무원들이 얼마나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치옥에서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게 어렵다면 제가 가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로는 주민들 개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수로를 놓는 작업에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님송 치옥을 종합 개발하기로 결정하면 JTS 스태프가 70가구를 전부 다 조사를 해야 합니다. 주민들의 건강, 주거환경, 농업 등 전수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탄 정부에서도 함께 할 공무원을 지원해 주셔야 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골프 게옥의 리더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노동력을 제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회의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스님이 부탄 공무원들에게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같이 답사해 본 소감이 어때요?”

처음 동행한 공무원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습니다.

“이런 동네에는 저도 처음 와봤습니다.”

스님은 부탄 공무원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앞으로 공무원이 되려면 오늘처럼 세세하게 살펴서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합니다. 이번 답사가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도 좋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내일 다시 답사 일정을 공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JTS 스태프들은 내일 아침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인터넷이 잘 되는 곳을 찾으러 다니는 일을 하고,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수원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나이는 드는데 보잘 것 없는 제 모습이 괴로워요

“저는 7년 전에 창업을 했습니다. 그동안 실패도 여러 번 경험했고, 직원들 월급 줄 돈을 벌기 위해 투잡을 뛴 적도 많았습니다. 눈이 늘 반짝거린다고 주변에서 얘기를 들을 정도로 30대 초반을 일에 대한 열정으로 즐겁게 보냈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은 지금은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감도 잠시였고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대한 기업가들을 보면 굉장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저는 그들처럼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나이는 드는데 제 위치는 아직도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매일 괴롭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더 높은 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열정과 체력을 잃고 기회도 잃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언제쯤 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합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안 죽고 살았네’ 하고 자꾸 반복해 보세요. 늘 새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훨씬 생기가 돕니다.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시작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일하지?’ 하며 늘 인상을 쓰고 시작하니까 하루를 부정적으로 보내게 되는 겁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안 죽고 살았네!’라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뒤집었는데 다 죽고 나 혼자 살았으면 ‘와, 기적이다!’라고 그러잖아요. 물론 사람이 죽은 건 슬픈 일이지만 살아남아서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매일 기적입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잘 피해가고 있는 지금도 기적입니다. 저도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산에 갔다가 떨어져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인도에서는 권총을 든 강도가 이마에 총을 대고 ‘물건을 내놔라!’ 하고 협박을 했는데도 살아 남았습니다. 여러 가지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기적적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사실 그런 순간들에 처해 있으면 굉장히 두려워야 하는데 속으로는 웃음이 났어요. 두렵지 않으니까 강도하고도 대화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고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를 가지면 정신질환은 생기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35세에 창업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고 하면 성공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질문자는 왜 무기력할까요?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기업가인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를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 봐야 열등의식만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과학자가 다 아인슈타인이 되겠다고 하면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겠지요. 고등학생 축구 선수가 손흥민 선수만큼 못 뛴다고 자괴심에 빠지면 축구를 그만둬야지 어떡합니까. 머리 깎고 스님이 되자마자 법륜 스님처럼 안 된다고 괴로워하면 어떡합니까.

그건 다 욕심입니다. 과대망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성공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대단한 각오를 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 위치에 오른 겁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수십만 수백만의 도전자들 중에서 그 위치에 오르게 된 거예요.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오르게 되리라고 이미 정해져 있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제 나이가 칠십이 조금 넘었는데, 100m 달리기 기록이 25초 나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TV를 보니까 올림픽에서 1등 하는 선수는 10초에 뛰어요. 그래서 ‘나도 할 수 있어. 한번 해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내일부터 아침마다 운동장에 가서 연습한다고 제가 10초에 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10초 안에 못 뛰니까 나는 열등한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뛸 수 있는 능력치는 25초라는 겁니다. 23초를 목표로 해서 석 달 연습하면 2초 정도는 단축할 수 있겠지요. 1초 단축을 목표로 석 달 연습하면 이 또한 가능하겠지요. 이렇게 작은 성공을 쌓아 나가야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목표를 10초로 정하면 10년을 노력해도 성공을 못하니까 좌절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과욕을 너무 부리기 때문에 자신이 자꾸 초라해져 보이는 거예요. 타인이 옆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본인이 만족을 못하기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는 겁니다.

우선 질문자에게는 지금에 만족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것을 개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고 접근하려는 태도예요. 기본 생존을 위한 것은 사익적으로 접근해도 되지만, 생존을 넘어서서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열정을 가지려면 그 목표가 공익적이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이 개인적 이익 추구를 목표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숫자에 연연해 하지 않아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실패하면 또 새로 도전해 보고, 그러다가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을 하면 정신질환에 걸려요. 돈 많은 성공한 기업가이지만 정신질환자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돈은 좀 못 벌어도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기를 원하나요?”

“사실 그게 고민입니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 정신도 건강하면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화가 고흐 같은 경우도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어요. 뛰어난 예술가 중에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갖고 창작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지만 인간관계는 굉장히 서툽니다. 스티브 잡스도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고 성공 가도를 달렸으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굉장히 불행을 겪은 사람이에요. 엄청난 수익을 올렸지만 죽을 때 돈 한 푼 가져가지도 못했는데 뭐가 좋아 보여요? 그런 사람들도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까 지금 평가가 좋은 거예요. 사실 실패만 거듭하다가 망했다면 ‘원래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평가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처음에는 강박적 불안감을 가진 약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는데, 그 증상들이 사업에 엄청난 추진체가 되었어요. 전기차는 이익을 못 봤지만 그 가능성 때문에 주가가 폭등해서 이익을 본 거거든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했는데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에 계속 주목을 받는 것입니다. 비트코인도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인해서 돈이 몰리면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하루아침에 폭락하는 거예요. 정치 초년생이 차근차근 시민의 지지를 받아 정치활동을 넓혀가야지 독재자들처럼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단박에 기회를 잡을 생각을 하면 안 되겠죠.

질문자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30대 중반에 스타트업을 해서 적자 안 내고 자리를 잡았다면 대성공이에요. 조금 더 있으면 기회가 어떻게 열릴지 모릅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요행을 바라면 안 되고, 나의 노력이 시대 조류와 맞아야 하는 거예요.”

“좀 더 기다리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기다리고 최선을 다하면 피곤해져요. 인생이 그렇게 최선을 다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냥 대충대충 살면 됩니다. 저도 돌아보면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월말고사에서 1등 해보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적이 떨어져서 기죽고, 성적이 올랐다고 웃고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 월말고사 성적이 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지금 내 인생에 무슨 변화를 주고 있나요?

그러니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하지 말고, 그냥 재미로 해보세요. 우리 속담에 ‘노는 입에 염불한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일 없이 노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오늘 저녁에 혼자 잠이나 자느니 여기 와서 여러분과 대화하는 게 낫잖아요. 청년들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놀기 삼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스님이 부탄의 오지 마을에 가서 고생한다고 걱정하지만, 여러분들은 저만큼 세상 구경을 못 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온갖 구경을 다 합니다.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많이 가지만, 원주민 마을에는 이 세상에서 몇 사람밖에 못 가봅니다. 원주민 마을에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부탄의 오지 마을에 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 이유는 자기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400년 전에 구루 린포체가 왔다 간 이후 고승이 처음 왔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가 들떠서 난리가 났어요. 제가 환영 행사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 먹히지 않았어요.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400년 만에 찾아온 특별하고 귀한 손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이런 구경을 안 해 봤잖아요.

일과 놀이를 따로 분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탄에 관광을 하러 가겠지만, 저는 오히려 아무도 찾지 않고 손길이 닿기 힘든 오지 마을에 가서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합니다. 부엌을 고쳐주고, 울타리도 쳐주고, 주민들과 같이 이야기도 나눕니다. 이런 일들을 해주면 엄청난 환영을 받게 되는데, 관광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다니면 재미도 없고 피곤해요. 제가 가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즐겁고 보람이 있잖아요. 이것은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예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방향으로 재미있게 지내 보겠습니다.”

“재미도 너무 따지게 되면 종국에는 마약을 하게 돼요. 그냥 놀이 삼아서 해봐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은 부탄 답사 3일째로 아침 일찍 한국의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하루 종일 납지 치옥의 수원지와 님송 치옥을 답사하고, 저녁에는 평가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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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재밌다고 세뇌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놀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2024-04-27 13:33:46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22 15:03:05

지자재

노는입에 염불하듯
놀이삼아
연습합니다

2024-04-07 0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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