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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언니, 오빠의 그늘에 별로 어려운 일을 겪어 보지 않고 성장해서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까지 가졌습니다. 부모님에게는 공부 잘하고 순한 딸이었습니다. 직장 생활도 선배들의 관심과 지지로 별 어려움이 없었고, 학생들은 제가 감당할 만큼의 테두리 안에 있는 착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무서워할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없이 결혼이라는 세계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세 명의 누나를 위로하고 태어난 막내 외아들이었습니다. 일찍 홀로 된 시어머니와 주위 어른들로부터 '아들인 너는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일상처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에게 그런 남편은 처음으로 부딪치는 세파였습니다. 단단한 벽이었습니다. 남편이 사는 지역으로 옮긴 직장은 결혼 전의 곳과는 다르게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터였습니다. 가정과 직장 생활이 모두 힘들게 느껴졌고 날마다 괴로웠습니다.
결혼 후 첫 월급을 받은 날, 남편과 함께 월급을 이렇게 받아왔다고 시어머니에게 보이는 순간 우리 부부의 월급을 시어머니가 가져갔습니다. 우리 부부는 용돈을 타서 써야 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시절이라 용돈은 늘 모자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 년이 지나서야 제 월급을 온전히 제가 관리할 수 있게 넘어왔지만, 시어머니와의 심리적 불편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배운 당신이 참으라'는 말로 저의 불편함을 무마했습니다. 순한 성격이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바늘구멍만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 보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을 찾아갔고,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신도들에게 법보신문 구독을 권했습니다. 그 법보신문에서 법륜스님의 《행복한 출근길》이라는 책 광고를 보고, 사 읽으면서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강릉에 정토법당이 없었습니다. 정토회 법사님이 평창 진부에 사는 것을 알게 되어 일주일에 한 번 진부까지 다니면서 법륜스님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마음이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동해에서 강릉으로 퇴근하고 다시 진부로 가서 법문을 듣고 또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스님 법문이 있는 곳이면 먼 곳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강릉에 불교대학이 생기게 되어 1기 수강생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이 생기긴 했지만 법회 할 장소가 없어 고민하던 중에 남편의 허락을 얻어 우리 집에서 가정법회를 열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이 책 저 책 연구하며 읽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해결되지 않던 일들이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감동과 함께 길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알았다고 해서 며칠 후에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나를 지적하면 여전히 서운하고 꽁하고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10년을 절하면서도 여전히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구나!' 절망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수행자의 관점을 잊고 사는 날들도 많습니다. 다행히 수행자에 대해 질문을 하는 도반들 덕분에 관점을 다시 잡고 돌아오고 새롭게 다시 또 해봅니다. 어제 꽁했던 마음이 108배를 하고 나면 저절로 녹아 없어져 신기합니다. 어제도 성질내는 남편에게 꽁했는데 절하고 나서 메시지로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셔요' 하고 보냈더니 남편도 순하게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힘든 건 제 말에 공감해주지 않고 제가 무언가 말을 하면 저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어 남편에게 들어 달라고 하는 말인데, 도리어 그런 말을 들으면 ‘아, 괜히 했다. 하지 말걸’, ‘혹 떼려다 혹 붙이는구나!’ 합니다. 오히려 가슴이 두 배로 답답해지고 화까지 났습니다.
남편은 자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럴 땐 ‘들어주나 봐라!’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이 확 올라왔습니다. 마음의 문이 꽉 닫히고 서운해서 며칠 동안 입을 다물고 살았습니다.
“의지하지 말고 의지처가 되어라. 제1의 화살은 맞더라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말아라.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 나를 괴롭히지 말아라” 등의 법문을 듣고 새기며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그냥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그냥 저 사람한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꽁하지 않습니다. 제가 꽁하고 있을 때면 남편도 저의 성품이 못됐다고 했는데, 꽁하지 않으니 자기가 뭘 서운하게 했는지 제 눈치를 안 보게 되니 편안하고 부드럽게 대합니다.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일어나지만 제 마음은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철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되어 만난 시어머니와 남편이라는 험한 세상이 제 마음공부의 원천입니다. 법문에 ‘남편이 부처님입니다’가 딱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남편이 시골에 가서 근무하는 동안 저는 혼자 아흔을 넘긴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며 모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남편 마음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여한이 없는 듯합니다. 시누이는 해마다 겨울이면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배추와 고추로 김장을 해줘서 감사히 잘 먹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책을 읽어도 찾지 못해 답답했던 삶의 답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전해주시는 스님의 법문에서 얻었습니다.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언제나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신영순 님. 그 목소리에서 긴 세월을 견뎌내고 행복한 인생을 꽃피운 단단한 내면이 느껴집니다. 여전히 수행자로 살아감이 어렵고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편안해 보입니다. 매일 남편과 별일 아닌 일로도 아웅다웅하며 사는 저에겐 언제쯤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하는 날이 올까요? 그날을 기대해보며 수행담 나누어 주신 신영순 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글_유정원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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