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100점이었던 신혼에서 애교 100점 여우 되기까지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막내 이은영 님 수행담)

아무런 기대 없이 무조건 믿고 따라도 되는 큰언니의 권유로 시작했던 불교대학. ‘절에 가면 읽는 어려운 글귀의 뜻을 알고나 읽자’ 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것도 학교니까 이왕 시작한 공부, 결석은 하지 않으리라는 맘으로 시작했다.

가까운 절의 주지 스님으로부터 듣는 법문에 익숙해 있던 나는 처음 영상으로 접하는 게 낯설었다. 하지만 곧 큰스님들의 법문에 목말랐던 나는 친절하고 쉬운 법륜스님의 법문에 끌리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불교라는 법이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공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을 내어놓아야 진정한 공부가 될 것을 알았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하던 중 내 인생 최초의 4박5일이라는 큰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바로 ‘깨달음의장’이었다. 길다고 생각하며 갔던 4박 5일! 그곳에서 나는 항상 밝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내면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있는 덩어리의 실체를 본 것이다. 하지만 원인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처음 아이 낳고 학원 강사 생활하던 나는 시어머니의 아주 한가한 시간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손자를 두어 시간 봐달라는 부탁을 드렸는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셨다.

입재식에서 세자매 (이은영,이순영,이진영 님)
▲ 입재식에서 세자매 (이은영,이순영,이진영 님)

길거리에서 오갈 데 없이 천덕꾸러기가 된 4살짜리를 생각하며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화기로 통사정하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쏘아붙였다. 퇴근 후 밤 10시에 시작된 부부싸움. 술 취한 시아버지의 방문, 폭력으로 가전제품은 다 부서졌다. 정신없이 아이 안고 피신 갔던 친정집 쪽방에서의 31살 여자의 울부짖음.

이상한 아버님을 받아주기 싫었지만 미안하다고 매달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착하디 착한 불쌍한 신랑이 보여 다시 참아냈다.

그런 나에게 아버님의 사업부도로 엄청난 빚과 함께 합가라는 청천벽력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혼은 못 하니 울며불며 시작한 합가 5년의 생활. 술 취한 아버님의 새벽 잔소리, 자기 속옷까지 내놓으며 갑질하는 한두 살 아래의 시누이 3명. 세 번까지는 참아보자 이를 악물며 살았다. 그렇게 4번까지도 참았지만 죽을 것만 같은 생활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두고 아이 하나, 내 차 한 대 갖고 빈털터리로 나와버렸다.

그때 나에게 따스하게 손 내민 큰언니. 언니 집 바로 앞에 옥탑방을 새로 지었다. 여기 와서 네 능력껏 살면 아이는 돌봐줄 수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이혼 생각하며 내려왔던 진주. 나에겐 평화의 도시였다. 뒷돈 몰래 해주신 친정 엄마 덕택에 겨우 자리 잡을 수 있었고, 6개월을 내려와서 빌던 남편도 큰언니의 너그러운 설득으로 내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려움 없이 자라 결혼을 했고, 그 굴레를 통해 5년간의 응어리만 남았다. 52평의 아파트도 다 줘버리고 나와 옥탑방에 다시 시작했다. 큰아이가 "집이 왜 이렇게 짧아?" 라고 말했던 그 옥탑 방에서 공부방을 시작해 2칸짜리로, 2층 독채로, 11년 만에 2015년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러면서 만난 불교대학! 착하고 착한 사랑스런 신랑 생각에 내가 그토록 싫어하면서 접할 수밖에 없는 시아버지. 가식적으로 말고 진정 좀 편안한 맘으로 대하고 싶어서 갔던 깨달음의장! 나를 그래도 이해해주신다고 생각했던 시어머니의 입김으로 모든 게 시작됨을 알아 내 못된 마음의 씨앗이 아버님이 아닌 어머님인 줄 알게 되었는데, 불교대학 공부를 더 많이 한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었음이 인정되었다. 때론 하기 싫고, 자고 싶은 맘 꿀떡 같지만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지켜온 108배 수행을 하던 10월 어느 날, 나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속에서의 내 0~2살까지의 삶을 보게 되었다.

6남매 막내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맡겨두고 장사 다니시던 부모님!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내내 온 동네 아줌마 모두 자기들이 내 엄마라고 하는 통에 돌아버리도록 싫었던 기억! 애정결핍의 결과로 보여줬던 육손이 될 뻔한 내 오른 손의 엄지손가락. 오줌싸개라는 오명.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나 내가 유독 ‘아이’에 대해 민감함을 알게 되었다. 그게 내 업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절을 하면서 파노라마 영화처럼 순식간에 떠오르며 깨쳐지는 순간! 눈물이 마구 흘렀다. ‘아이를 못 봐주겠다던 어머니’를 기점으로 시작된 시댁과의 벽! ‘북한, 인도 등 굶주리고 가난한 전 세계 아이들의 영상’ ‘내가 없으면 내 아이는 못산다.’는 등 아이들을 향한 내 업식이 보이면서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됨을 오롯이 느꼈다.

스님께 아기 때의 엄마 양육의 중요성을 들으면서도 나의 이야기인 줄을 몰랐다. 언니의 도움은 받으면서 아이를 키워도 내가 내 자식을 키웠다는 자부심만 있었지, 나 어릴 때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왜냐하면 너무나 존경하는 친정 부모님과 언니, 오빠의 사랑 듬뿍 받고 애교 부리며 자랐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내 무의식의 세계가 보인 것은 정말 수행 덕분이다. 아무리 법문을 들어도 내 것이 되려면 내 진정한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진의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깨달음의장’에서 시아버지를 진심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불교대학 공부 중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신랑 월급으로 시부모님과 생활하는 신랑에게 가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주말 부부하는 신랑을 시부모님이 챙겨주심에 감사하다. 다행히 내 능력으로도 우리 집 살림은 할 수 있으니 또 감사함을 느낀다. 야무지게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고 일한다고 예뻐해 주시는 시부모님 마음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니 내가 행복해진다.

돈 많이 벌어 용돈 많이 달라는 시부모님께 20만원 넣은 봉투에 예전에는 투덜대고 짜증내면서 10만원 더 웃돈 드렸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어머님께 20만원 드리는 봉투 건네며 웃돈 20만원을 시아버지께 살짝 전달하는 여우짓도 할 줄 안다. 내 인생 신혼 초 5년은 -100점이었는데 불교대학 다니면서 그 끔찍했던 과거가 지금은 어리석음에 몸부림쳤던 중생의 모습임을 알게 되어 미소 짓는다.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이라는 말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더 공부해야 함을 느낀다. 평생 가야 하는 이 길 위에 있는 정토라는 좋은 차는 갈아 탈 이유가 없기에 내리는 사람 붙잡지는 못해 안타깝지만 ‘내리지만 않아도 반은 성공이다.’ 는 스님 말씀 맘에 새긴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깨달은 삶을 살다가 가신 위대한 분.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실 수밖에 없었던 인간 붓다. 그 이름 부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 길에서 직접 보고 느꼈습니다. 부처님의 길을 오롯이 가고 계시는 또 한 분의 인간, 작은 붓다. 법륜스님을 돕는 일이 내 일임을! 완전하지 못한 저희가 모여 모자이크 붓다로 하나가 되겠습니다.”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말도 못할 척박한 현실이 무지에서 옴을 알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먹고 입을 게 없기에 먼저 먹여야 하고, 먼저 입혀야 함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면서 오늘도 자타일시 성불도를 꿈꿔봅니다.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심 봉사 “청아!” 하고 눈 뜨듯이 나를 보다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① 둘째 이순영 님 수행담>

아홉 번 바라보고 열 번째도 바라만 보는 돌부처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② 첫째 이진영 님 수행담>

글_이은영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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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6-10-26 12:03:59

백한숙

감동입니다
멋진분^^

2016-10-21 22:37:28

주선자

세자매 완결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실 분들~♡♡

2016-10-21 14: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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