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래법당
1박2일 깨달음의장 바라지, 정토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쁨

만물이 새로이 단장한 4월의 아름다운 봄날!
아끼는 직장 후배의 결혼식이 있던 날, 선배로서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데 며칠 내내 고민하였습니다. 결혼식에 갈 것이냐 봉사를 할 것이냐. 결론은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가벼워져서 그 길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오랜 숙제를 해결하러 가는 날

오늘은 오래전 마음속에 새겨진 숙제를 해결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13년 5월에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제1139차 깨달음의 장을 수료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과 나의 존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끔 일깨워준 깨달음의장!!

그때의 충격은 참으로 컸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이내 고마움으로 다가왔고 중간에 하차하고자 했던 마음이 변화되어 불교대학을 즐겁게 다니고 졸업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회향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장!! 그 속에는 매서운 매의 눈도 있지만, 솜털보다 더 부드러운 사랑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미 깨달음의장을 수료한 선배 봉사자들이 자신을 알기 위해 첫걸음 내딛는, 낯 모르는 이의 공양을 위해 숨은 곳에서 우렁각시 역할을 하는 깨달음의장 바라지 봉사였습니다.

그들 또한 선배 봉사자에게 받은 사랑을 회향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기에 깨달음의장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물 흐르듯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맛보아 주세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무슨 말이지? 내가 부처님이라는 건가??'

첫 공양을 하는 날! 돕는 이가 읽어주는 편지 내용이 나를 의아하게 하였으나 설명을 듣고 이내 의혹은 풀렸습니다. 깨달음의장을 찾는 일면식 없는 이에게 선배 봉사자가 온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밥을 짓는다는 설명이 있었고 난 세상에서 제일 맛 나고 따뜻한 밥! 최고의 밥상을 받는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비밀, 솜씨보다 정성

사무처에 들러 등록하고 처음으로 가는 요사채. 3년 동안 찾아온 문경이지만 요사채에 들린 것은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하고 명상을 하니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공양간에 가니 며칠 전부터 봉사를 하는 분과 나처럼 주말을 이용해 봉사하러 온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소임을 나눈 후 저녁 공양을 준비하였습니다. 나는 음식에 자신이 없어 차 담당과 후식 준비와 설거지 등을 돕기로 했습니다.

봉사자 10명이 마음을 모아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후식을 준비하고~~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준비하는 보살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모두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먹은 밥이 우리처럼 이런 아마추어들이 와서 밥을 지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맛있는 밥의 비밀은 솜씨보다 정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경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와서 이렇게 맛있는 밥을 지었다는 사실요. 그 비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 맛의 비밀은 솜씨가 아닌 사랑과 정성이었군요."

깨달음의장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는 또 하나의 비밀 병기를 알게 된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11명의 바라지 봉사자들의 이름표
▲ 11명의 바라지 봉사자들의 이름표

뒷마무리하고 공양간을 나서니 봉사자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듯 연등이 예쁘게 불을 밝히고 있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밤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수련하러 올 때의 마음과 봉사자로 오는 마음은 조금 다른 듯하였습니다. 왠지 좀 더 여유롭고 주인 된 마음이 생겼습니다. 요사채에서 잠을 자고 수련생이 사용하지 않는 해우소와 세면실. 수행자의 소박한 생활공간을 사용할 수 있어 정토의 속살을 살짝 엿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봉사자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듯 예쁘게 불 밝히고 있는 연등
▲ 봉사자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듯 예쁘게 불 밝히고 있는 연등

수련원의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

일요일 새벽 4시.
도량 소리에 잠을 깨고 침구 정리 후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새벽의 맑은 공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스러지는 별빛도 밝아오는 여명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백일출가생, 법사님, 상근자들로 대웅전은 이내 가득 찼습니다. 유수스님의 모습을 뵈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사사롭게는 대학 선배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스님. 오늘 이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예불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예불을 마친 후 발우공양을 배우는데 처음이라 신기하고 어려웠습니다. 어설프게 따라 배우며 아침 공양을 하였는데 긴장을 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순간 깨어 있어 맛을 음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래어 봤습니다.

가지런히 정리된 발우
▲ 가지런히 정리된 발우

깨달음의장이 끝나는 날은 공양간도 해탈하는 날

두 번째 바라지에 들어갔습니다.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소임을 나누고 명심문을 합창하고 공양 준비를 하는 도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맡은 소임이 끝나면 일손이 부족한 곳에 서로서로 도와주니 어느덧 아침 공양은 정성스럽게 제시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첫 설거지는 EM을 활용하여 씻고 미리 받은 물을 활용한 2번의 헹굼으로 마무리하는 설거지는 지구환경을 지키는 에코 실천이었습니다. 행주는 그릇용과 싱크대 음식물 닦음용으로 분류하여 사용하고 있어 아주 위생적이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이 끝나는 날은 공양간도 대청소하여 아주 깨끗하게 마무리하니 공양간도 이렇게 해탈(?)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봉사자들의 회향식을 끝으로 이번 깨달음의장 바라지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나의 작은 정성과 보탬이, 비록 일면식은 없지만,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여 깨우침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이들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에 비록 몸은 피곤하나 마음은 행복과 뿌듯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의 힘든 인생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수행할 것이고 언젠가는 나처럼 바라지를 하러 다시 찾아오겠지~' 이 생각을 하니 내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자주는 못 오지만 틈틈이 시간 내어 바라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문경을 나섰습니다.

‘또 보자꾸나, 내 마음의 고향 문경~’

바라지 봉사자들과 한 컷! (가운데 숟가락 들고 있는 사람이 필자^^)
▲ 바라지 봉사자들과 한 컷! (가운데 숟가락 들고 있는 사람이 필자^^)

글_정미숙 희망리포터 (동래법당)
편집_이혜진 (부산울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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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선

수고하셨습니다...봉사를 하는 마음이 부처님 마음입니다...늘 행복하세요..._()_...

2016-06-16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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