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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넘어선 최영림 님에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늘 마음 속 화두였습니다. 그 답을 찾아 직장까지 정리하고 백일출가를 했지만, 이혼한 아내를 떠올리며 감사기도를 하라는 법사님의 말에는 '내가 왜?' 하는 반발심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이어 가면서 원망은 차츰 고마움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최영림 님은 지난 100일이 매순간 깨어 있는 나를 경험하며 날마다 거듭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며 들어간 백일출가에서, 그는 어떤 답을 찾았을까요?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항상 이 문제는 빠지지 않고 다루는 주제였습니다. 20년이 조금 넘는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임기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2025년 1월,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 우연히 정토회와 백일출가에 대한 내용을 보고 어릴 때 어머니와 절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또 군대에서 군종 법사에게서 대충 들어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일출가는 제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았습니다.
백일출가를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니 벌써 관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불교대학에서는 부처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고, 불교 이론을 배웠습니다. 만 배를 준비하며 절하는 법도 익혔습니다. 평소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바르게 절하는 자세를 보고 따라 하면서 횟수를 조금씩 늘렸습니다. 6월 말, 인사 발령에 맞춰 사직하고 백일출가 입방 원서를 냈습니다. 백일출가 면접을 요식행위 정도로 생각하고 갔다가 그만 탈탈 털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통과하고 저는 8월 30일 백일출가를 했습니다.

백일출가를 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만난 아내에 대한 생각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2001년 혼인신고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2023년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2020년부터 이불을 따로 덮고 이후 각방을 썼으니, 어찌 보면 연착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에, 누군가의 며느리나 아내로 살기 싫고 자기 인생을 살고 싶다며 아내는 집을 나갔고, 2023년에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가고 없으니 집 마당이 넓고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어머니는 자신 때문이라며 비통해하다가 2021년 2월에 위 천공에 따른 복막염이 발병하여 2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불효를 한 것 같아 어머니에게 미안했고, 아내에게는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고 새로운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자유롭게 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나간 아내가 오히려 저에게 ‘인생을 선물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백일출가도 혼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내를 원망하던 마음을 완전히 정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법사님이 아내를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라고 되뇌며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을 때, 속에서 ‘내가 왜?’라는 반발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거 한번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 새벽 예불 시간에 108배를 하며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속에서 욱하고 올라왔고, 하루 종일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했습니다. 아직도 아내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있고, 미움과 원망을 교묘하게 고마움으로 포장한 채 외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이후 개인 정진과 예불 시간에도 계속해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차츰 편안해지고 아내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나 같이 공부하며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고집 세고 술 좋아하고 아내에게 소홀했던 제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보수적이어서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는’ 게 많다고 자주 말했고, 저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모든 기회를 놓쳐 결국 이혼의 책임이 저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계획하고 준비하는 편이라서 혼자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 효율적이었습니다. 수련원에서는 달랐습니다. 일정을 듣고, 순서를 계획해서 실행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그러면 불만이 생기고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일 수행 중에서 가장 분별심이 많이 올라왔던 작업은 명상원 포행길 야자 매트 깔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굴삭기로 기초 작업을 끝낸 길을 나중에 롤러로 평탄화한다고 하여 그냥 깔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평탄화한 후 매트를 깐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 끝낸 작업인데 깔았던 매트를 걷고 흙을 퍼 와서 일일이 평탄화한 후 다시 하는데 속에서 ‘그냥 해도 될 일을 괜히 일을 만든다’라는 생각에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같이 작업하던 도반이 흔쾌히 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의 실제 사례를 보는 것 같아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을 마치고 평평하게 잘 깔린 야자 매트를 보니 비로소 명상 끝에 풀린 다리를 이끌고 이 길을 걸을 사람들이 생각났고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매일 ‘예, 하고 합니다’를 명심문으로 하면서도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와 분별했던 나를 보았습니다. 어차피 할 거 그냥 방긋 웃으며 기분 좋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 싫어하고 분별하면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마음도 불편했는데, 그냥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일도 더욱 즐거워졌습니다. 이후에 밤나무 길에 야자 매트를 깔았는데, 이때는 훨씬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며 어떤 일도 헛된 것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시로 올라오는 분별심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특히 김장 준비 때 분별심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김장하기 전에 우주복, 장화, 앞치마, 소쿠리 등 김장에 쓰일 물건들을 씻고, 옮기고, 두북수련원에 가서 배추 뽑고, 배추 절이는 등 일을 하며 수없이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했는데, 끝이 나니 비로소 보람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각자 최선을 다해 맡은 소임을 해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의견 차이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맞춰 나가는 것을 보며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백일출가 초기에는 도량석 소리에 벌떡 일어났는데, 갈수록 긴장이 풀려 늦잠을 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반장님이 깨운 적이 있어서 그 이후부터는 알람을 맞춰 놓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잘 몰랐지만, 빡빡한 일정 속에 지내다 보니 나중에는 대웅전에서 정정당까지 주어지는 10분의 시간도 넉넉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시간에 해우소도 다녀오고 널어둔 빨래도 걷을 수 있었습니다. 속옷과 양말 빨래는 3분이면 충분했습니다. 휴대폰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과의 소통 없이도 삶을 영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얽매임 없는 자유롭고 평온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살아지니 삶이라는 말의 의미도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예상외로 저의 체력이 약하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훨씬 더 많아도, 인상이 험해도 제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몸이 아프니 모든 게 다 귀찮고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의 출가 목적과 상관없이 집 생각이 나는 걸 보며 아직도 몸에 많이 끌려다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아프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아픈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고쳐가며 살아가야 함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업식’이라는 말이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마음과 생각이 전부 업식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 몸의 흉터를 보며 몸이야말로 업식의 집합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몸과 마음, 생각이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태어나서 늙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도둑놈 심보이고, 모여서 형성된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생로병사는 물처럼 흘러가는 일련의 변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무상의 의미를 알면서도 애초에 죽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죽음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제 삶이기에, 저는 그저 순간을 살면 되는 거였습니다. 찰나 찰나에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과거도 미래도 붙잡지 않고 순간에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일출가는 매 순간 알아차림을 통해 깨어있는 나를 경험하면서 매일매일 거듭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우리나라의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분단 현실이 주변 국가에 악용되는 현실에 대해 늘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이번 수련 과정의 교육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제가 앞으로 정토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와 관련된 일을 찾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북한 이탈 주민 돕기나, 예전에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던 경험으로 그들의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백일출가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와서 그런지 아직 많은 것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법사님, 반장님, 도반님들의 가르침과 도움 속에서 깨어있는 삶의 방식을 배웠고, 소소한 알아차림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두의 관심과 정성이 모여 제가 존재함을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_최영림(50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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