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그냥 한번 해봅니다

최근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에 다녀오셨다면, 정갈한 원목으로 된 공양 배식 테이블을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테이블은 오늘의 주인공인 박황근 님이 판재를 고르고 골라 직접 만든 것입니다.
박황근 님은 처음에는 그저 쓰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봉사활동을 하였지만, 보리수 7기로 활동하면서 환경이 달라지자 '왜 나한테 이런 일거리만 주는 거지?' 하는 분별심과 씨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 수행을 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여유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문경 정토수련원을 오가는 길에 느끼는 가벼워진 마음을,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표현하는 그의 말에서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박황근 님
▲ 박황근 님

착각 속에 살았던 시간

저는 아내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생활이 험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쫓기듯 항상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꽁해지고 말수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큰 사고나 부부싸움 없이 살았습니다. 회사 생활은 저녁 회식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많던 회식이 없어지고 조금 한가해졌을 때, 아내와 처형의 권유로 2022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까지 다녀왔습니다. 깨장 수련 기간 중 매일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항상 나를 짓누르고 있던 걱정과 무게감이 사라지면서 뭔지 모를 환희심이 샘물처럼 올라왔습니다. 그 환희심이 사라질까 봐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걸음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20년 넘게 갑질하며 살아온 속 좁은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아내가 늘 저에게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시작한 봉사, 보리수의 길

깨장 마지막 날, 자광 법사님께서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설명해 주시며 봉사활동을 권유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시설물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실천 활동 장소로 익숙했던 정토연수원에 가보니 일거리 천국이었습니다.

공양간 배식대는 상판도 없이 바닥 일부가 내려앉아 있고, 비품 창고에는 선반이 없어 물건이 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뛰어난 실력이 있거나 대단한 발심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배식대 상판을 만들고, 비품 창고에 선반을 달았습니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연수원과 수련원의 그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별것 아닌 재주가 이렇게 좋은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몇 개월 이어가던 중 전국 보리수 7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교육받고, 한곳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조용히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시설물 관련 봉사활동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회에서는 당연히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서울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교육과정도 좋고 유수 스님께서 직접 법문도 해주신대”라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보리수와의 인연은 그렇게 대전지회 으뜸절 죽림정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리수 시설팀원들과(맨 왼쪽이 박황근 님)
▲ 보리수 시설팀원들과(맨 왼쪽이 박황근 님)

주인의 마음이 다독여 준 분별심

문경에서 봉사활동은 일거리가 생기면, 내가 편할 때 가서 확인하고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말씀드린 후 만들거나 수리하면 끝이었습니다. 일도 단순한 것뿐이고 재활용 창고에서 웬만한 자재는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설이 적당히 낡고 비전문가가 작업한 것이 많아서 초보자인 제가 작업해도 결과물이 있어 보여 만족감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림정사는 달랐습니다. 최근에 제대로 지은 신식 목조건물이라 초보자가 손댈 수 있는 부분도 적었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자재도 거의 없었습니다. 일감도 그때그때 필요한 일이 즉흥적으로 배분되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요사채 뒤편에 있는 철제 에어컨 스탠드를 농사용 자재 수납장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자재도 없는데, 한옥에 어울리는 수납장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에어컨 스탠드에 살을 붙여서 해야 한다니, 취지는 좋았으나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예, 하고 합니다’라는 전통이 있다고 해서 말도 못 하고 시간만 점점 흘렀습니다.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다 만들어 놓고 나면 이상한 물건이 되어 오히려 없애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수련장 현판 수리 중에
▲ 수련장 현판 수리 중에

어느 날 급하게 할 일이 많다고 해서 부랴부랴 갔습니다. 요사채 실내 화장실에 사용자가 갇히는 사고로 문을 수리해야 했습니다. 전통문 고리형 손잡이가 문 옆 책장에 끼면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누가 봐도 책장과 문 사이의 간격이 문제였고, 책장을 옆으로 밀든가 책장과 손잡이 사이의 공간을 좁혀주면서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또 다른 일은 접이식 빨래 건조대와 부러진 갈퀴 손잡이를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빨래 건조대는 버리는 게 맞고, 갈퀴 손잡이는 철물점에서 손잡이를 사서 끼우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로 기름을 소모하며 급히 오가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껴 쓰고 고쳐 쓰는 게 정토회 정신이라지만 ‘오며 가며 소모하는 기름과 내뿜은 매연이 더 문제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죽림정사 교육관을 한번 둘러보니 손봐야 할 곳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법상 난간과 조형물 일부가 부러지고 떨어져 나가 보기 흉했습니다. 교육관 마룻바닥 판재가 수축하여 내려앉았고 출입문 대부분이 변형되어 여닫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교육받은 목수가 아니어서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고민하다 보니 방법은 있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피고 수리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여러 사람에게 잘 쓰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수련원 데크 수리 중에
▲ 수련원 데크 수리 중에

따뜻한 마음을 찾아준 보리수

2024년 초 문경수련원에서 목공 관련 일감은 많은데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지원을 나갔습니다. 행자원 보일러실 문이 낡아서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아마추어 목수가 대충 만든 것이었습니다. 합판은 비를 맞아 부풀었고, 기둥은 벌레 먹어 반쯤 썩어 있었습니다.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아 틀이 휘어지고, 문은 삐딱한 사각형이었습니다. 새로 문을 만들어 달더라도 제대로 닫히지 않을 게 훤히 보였습니다.

그 문을 보면서, ‘왜 정토회는 나한테 이런 일거리만 주는 거지? 건물이 제대로 지어진 게 별로 없어’ 하고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만들라는 문은 안 만들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한 달 반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건물 쪽 수직부 문틀은 전체를 철거하고 수직을 맞춘 후 벽체와의 틈새는 판재 조각으로 메웠습니다. 외부 쪽 수직부 문틀은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비슷한 크기의 나무로 이어 붙였습니다. 문 바깥쪽은 비를 맞아도 문제가 없도록 원목 판재를 붙였습니다. 안쪽은 가벼운 합판을 붙인 후 기둥과 문 전체에 오일스테인을 칠했습니다. 사용한 자재는 모두 자재 창고에서 가져온 재활용이었습니다.

재활용 자재 창고에서
▲ 재활용 자재 창고에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 있는 문이었지만, 그걸 고치고 나니 그때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고 뿌듯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내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요청이 있을 때 일을 하다 보니 봉사 실천 장소가 문경수련원이 되었습니다.

2024년 하반기 수련 담당자로부터 공양 배식 테이블을 새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깨장에 참여했을 때가 떠올라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갈해 보이고 실용적인 원목 판재를 고르고 또 골랐습니다. 테이블을 만들 판재와 상다리를 차에 가득 싣고 문경으로 향하는 길은 구름 위를 날 듯 정말 좋았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내가 만든 공양 테이블에 정성을 담은 공양을 차리고, 그 공양을 받은 분들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깨장을 다녀가실 많은 부처님과 나와의 인연이 이 소소한 배식 테이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2023년 깨장에 참여했을 때의 감회가 되살아나면서 옛 인연을 통해 새 인연을 맺게 해준 보리수가 참 고마웠습니다.

행자원 데크 수리 중에
▲ 행자원 데크 수리 중에

일 수행으로 배운 이해하는 마음과 여유

명상하고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항상 깨어있고 알아차리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올라오는데 알아차린다고 없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잠시라도 깨어있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작업을 하다 보면 수행이 일이 되어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고 시비분별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렇게 마냥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전보다 좋아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직원들과 웃으면서 일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문득문득 보였습니다. 또 어느 순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가족 없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혼자 생활하면서도 별문제 삼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부모님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이제는 이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 다들 힘들게 세상 살다 보니 상처받아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니 예전처럼 버럭 화를 내거나 폭발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문경수련원에 봉사하러 갑니다. 문경수련원을 오고 가는 네 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주변을 둘러봅니다. 봄이면 도롯가에 핀 꽃을 눈과 코로 느끼고, 여름이면 나무의 푸르름과 풀 냄새를 맡으며,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을 고스란히 담아 돌아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두 아름답게 느끼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숙여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6년 4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박황근(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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