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재앙이 복'임을 깨닫게 해 준 백일출가

"백일출가 53기를 모집하고 있는 지금, 23기 소감문이라니! 혹시 숫자가 잘못 적힌 것은 아닐까?" 처음 이 글을 받아 들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서영 님이 백일출가를 한 것은 무려 12년 전입니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깨달음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때 쌓은 수행의 경험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예기치 못한 시련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막막한 순간 '아, 나에게는 수행이 있었지!' 하고 떠올린 박서영 님은 '이만하길 다행입니다'라는 기도로 매일 새벽을 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배운 바른 법의 관점으로 돌이킬 수 있다면 위기도 넘어설 수 있음을 이 글은 보여 줍니다.

깨달음의 장 이후, 백일출가에 들기까지

저는 소위 ‘사랑고파 병’ 때문에 입방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것은 친구 집에서 보던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 무렵부터 방 안에만 계셨는데, 할머니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집에 일하러 온 사람이 행패를 부려도 그저 가만히만 계셨습니다. 집안 살림부터 생계, 할머니를 모시는 일까지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도 이따금 이성을 잃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곤 하셨는데, 그 모습이 저는 너무 싫었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아버지가 저를 때리셨고, 저는 경찰에 신고한 뒤 그대로 집을 나왔습니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저는 외삼촌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친척 집에서 지냈습니다.

박서영 님
▲ 박서영 님

그 시절 저는 가정에서 채워지지 못한 사랑을 어떻게든 밖에서라도 채우려 애썼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렸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애로 그 갈증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날씬해야 연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던 마음은 결국 섭식장애로 이어졌습니다. 음식을 삼키는 것이 두려워 씹고 뱉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폭식하면 수치심이 밀려와 밖에 나가는 일조차 어려웠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사는 일도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정신과에라도 가자’ 싶어 병원문 앞까지 갔다가도, 인정하기 두려운 마음에 울며 돌아선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 안 되겠다 싶던 차에 어머니께서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소회가 어땠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라는 분명한 생각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렇게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명상 바라지를 거쳐, 절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제가 무작정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 속에 날아든 청천벽력

백일출가는 12년 전의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저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있었고, 욕심으로 백일출가에 나섰던 탓에 이렇다 할 만한 변화나 깨달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를 향해 깊이 참회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던 일입니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삼배를 올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제 부모님은 더 이상 제 삶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공덕이 지금 제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일출가 일 수행 중에(앞줄 맨 오른쪽이 박서영 님)
▲ 백일출가 일 수행 중에(앞줄 맨 오른쪽이 박서영 님)

저는 백일출가 이후에도 섭식장애를 완전히 고치지 못했고, 사랑에 대한 갈망도 여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여건 덕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습니다. 결혼도 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잘 다녔고, 이내 예쁜 딸까지 생겼습니다. 부족함이라곤 없어 보이는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아휴직 동안 법륜 스님의 책 《엄마수업》에서 “세 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내용을 보면서도, ‘에이,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하며 1년의 휴직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어머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 처음 간 날, 원장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아직 못 걷는 게 이상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영유아 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저희 부부는 단지 조금 늦을 뿐이라 여기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의 계속된 권유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뇌성마비 같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 살이 채 안 된 어린아이라 채혈이 쉽지 않아 손발이 피투성이가 되어 울던 아이를 보며 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면마취를 하고 축 늘어진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부랴부랴 모든 검사를 마치고 또 속절없이 석 달을 기다리니 더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전이 아닌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희귀병으로, 10만분의 1도 안 되는 확률로 생겨나는 한국에도 몇 없는 병이었습니다. 게다가 세부 유전자 변이는 전 세계에 딱 한 명밖에 없는 희귀한 사례였습니다. 20년 경력의 재활 전문가들조차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데이터가 없어서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아이가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령 재활치료가 잘 되어 성인기까지 불편하게나마 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는 휠체어를 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련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 수련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12년 전 백일출가의 경험으로 일어서다

갑자기 어린 딸이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힘들다고 여겨왔던 제 ‘사랑고파 병’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식에게 일어난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 달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울면서 병에 대해 공부하고, 물리치료를 알아보고, 재활센터를 수소문했습니다. 그다음 한 달은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기도도 해보고, 온갖 영성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달래보려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정토회가 떠올랐습니다. ‘아, 나에게는 수행이 있었지!’ 백일출가 때 매일 깊은 정진을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절하던 그때의 마음가짐, 괴롭지 않게 살겠다던 다짐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아 그날부터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정진하니 놀랍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기도하는 중간중간 나중에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도 꾸역꾸역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백일출가에서 배웠던 바른 법에 대한 관점으로 자꾸 돌이켰습니다. ‘장애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괴로운 것이다. 장애는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 불편하면 도구를 이용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만큼만 하면 된다.’ 잘 안될 때도 그냥 다시 알아차려 보았습니다. 매일 정진을 하니 불편한 마음이 하루를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새벽 다섯 시 기상과 108배를 매일 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백일출가 때는 네 시에도 일어났고, 매일 500배씩도 했으며 만 배도 해냈다’라는 생각이 들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기억에 힘을 얻어 ‘그것쯤이야’ 하는 자신감이 일어났습니다.

백일출가 졸업생들에게는 엄청난 애프터서비스도 있습니다. 매달 모이는 ‘파견 복귀’입니다. 그곳에서 저도 정말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번은 임진각으로 평화 통일 정진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전쟁의 흔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장애를 넘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법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북한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을 돕는 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가고 계신 이야기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휠체어만이라도 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내 문제는 별일 아니다’라는 관점이 딱 잡혔습니다.

백일출가 도반들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 백일출가 도반들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다

아이의 병을 알게 된 이후, 오히려 제 마음은 이전보다 더 편안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교육열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같은 어린이집 엄마들이 입고 오는 명품 옷과 비싼 차, 관리된 외모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에 내 아이를 맞추려 교육에 관심을 쏟기도 했고, 육아에 지친 마음으로 퇴근이 늦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내 중심은 없이 오로지 남 탓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밖이 아닌 안으로 돌이키는 기도를 하니, 아이 문제뿐만 아니라 자잘한 다른 문제들까지 함께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지혜가 부족하여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적어도 괴롭지는 않습니다. 설령 또 괴로움이 찾아올지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꾸준히 수행할 뿐입니다.

제가 누리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모래성 위에 쌓은 행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엄청난 수확입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거나, 직장을 잃거나, 아이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한순간에 사라질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의 남편과 일, 아이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고락苦樂이 다 고苦’라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오히려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불법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직접 육아할 수 있었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서도 단단히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직업적 측면에서도 더 좋아졌습니다. 출판사 에디터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소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유명 작가, 잘 팔리는 책, 돈 되는 책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매일 아이의 재활치료를 다녀야 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더니, 정토출판과 인연이 되어 법륜 스님 책을 편집하는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에디터가 되어 꿈꾸던 일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합니다. 백일출가를 하고 난 뒤에 이 일을 겪어서 오히려 복이 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나눔의 장에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 나눔의 장에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서영 님)

삶 속에서 온전히 내 것이 된 백일출가 체험

백일출가는 제 삶에서 넘어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번 진득하게 진리를 알고자 수행해 본 경험, 그리고 ‘할 수 있다’라는 체험이 시간을 돌아 다시 지금의 저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힘겨웠기에, 기도하면서도 ‘나를 버리고 중생의 요구에 수순한다’라는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부감마저 들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할 때조차 저에게 해당하지 않는 내용은 읽지 않고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제 삶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겪으면서, ‘아, 내가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바로 나의 일이구나’,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의 일일지라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결국 삶 속으로 온전히 내 것이 되었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장애인은 제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애인이 눈에 보이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그들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일 뿐,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닌 소중한 존재로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저의 수행 과제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잘 돌보는 데서 나아가, 다른 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 함께 보살피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살아갈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힘쓰는 일입니다. 아울러 전쟁으로 고통받거나 굶주림과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치료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의 재활치료로 바쁘고 몸이 지칠 때면 자꾸 핑곗거리가 생기면서 ‘나도 좀 쉬면 안 되나?’ 하는 번뇌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돌이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부모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 세상을 동시에 가꾸어 가는 일이 지금 제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로지 나만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던 지난날의 제게, 그래서 자신을 괴롭히며 살던 저에게 진리를 설하시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꾸준히 수행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 아이와 함께


이 글은 <월간정토> 2026년 5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_박서영(23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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