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모자이크 붓다의 손길, 국경을 넘다

의료인정토회 특집 김진석 님 이야기 1편에서는 김진석 님의 삶을 따라가며 의료인의 전문성이 어떻게 수행과 봉사로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정토회 외부 행사 의료지원 부스로 시작된 작은 모임은 다문화센터 무료 진료와 해외 의료봉사로 차츰 확장되었고, 그 속에서 의료인정토회는 '치료를 넘어 삶을 회복하는 의료'를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해 왔습니다.

2편에서는 그 실천이 국경을 넘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조명합니다. 필리핀과 인도에서의 의료봉사 이야기를 통해 수행이 의료인의 삶과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의료인정토회만의 협력과 고민도 함께 살펴봅니다. 해외 의료봉사의 보람과 한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질문들, 무엇보다 '모자이크 붓다'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의료인정토회는 해외 의료지원 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나라를 방문하고, 현지에서는 어떤 진료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해외 의료봉사는 인도와 필리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인도 지바카 병원을 방문해 어떤 방식으로 의료지원을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후 2020년 2월, 공식적으로 지바카 병원 의료봉사를 준비하며 참가자 네 명이 항공권까지 모두 발권했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출발을 불과 사흘 앞두고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의약품들 역시 유효기간이 지나 모두 폐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험을 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는 2018년과 2019년에 다녀왔고,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2024년과 2025년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특히 2025년 민다나오 의료봉사는 여러모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보니 체계도 잘 갖춰졌고, 현지에서도 소문이 나 환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20년 넘게 필리핀 JTS가 민다나오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지역사회 활동을 이어온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현지 의사와 협진 중에(맨 왼쪽이 김진석 님)
▲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현지 의사와 협진 중에(맨 왼쪽이 김진석 님)

사실 해외 의료봉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지역을 개척하고 약품을 반입하며,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는 과정입니다. 나라마다 의료법이 다르고 기관마다 규정도 제각각이어서 외국 의료진이 현지에서 진료를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리핀은 협조가 원만하게 이루어져 감사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해외 의료봉사의 특징은 현지 의료진과의 협진입니다. JTS와 함께 봉사하고자 하는 현지 의료인 두세 명, 보건소 의사 두세 명, 그리고 한국 의료진 서너 명이 한 팀을 이뤄 진료를 봅니다. 현지 의료진이 환자 상담을 맡고, 저희는 준비해 간 약품을 설명하며 어떤 처방이 적절한지 함께 의견을 나눕니다. 이런 협의 과정을 통해 처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 의료진만 단독으로 진료할 때 생길 수 있는 의사소통의 한계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지에서 흔히 발생하는 질환의 경우에는 현지 의료진의 경험과 판단이 큰 힘이 됩니다. 한번은 뎅기열 쇼크 증상을 보이는 젊은 남자가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례였지만, 현지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보자마자 즉시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함께 진료 방향을 논의한 끝에 구급차를 불러 2차 의료기관으로 후송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되면 생활환경은 어떤가요? 이 글을 읽는 예비 봉사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일 것 같아 대신 질문드립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 있는 JTS 센터는 제가 경험한 정토회 시설 중 가장 좋은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1인 1 침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고, 산 아래에 자리해 공기가 맑고 조용해 매우 아늑했습니다. 선발대로 한 달간 머무는 동안 불편함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쉬어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의료봉사 본진이 합류해 30여 명이 함께 움직일 때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실제 봉사는 JTS 센터가 아니라 차로 4~5시간 더 들어가야 하는 산속 마을에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하루 진료를 마치면 다시 거점 도시로 이동해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차량으로 보건소까지 간 뒤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 산속 봉사 장소로 들어가는 일정이 반복됐습니다. 교통 여건이 열악해 이동 시간이 길었고,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직접 마주하면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한 가구당 자녀 수가 여덟 명 정도 되는 경우도 많았고, 나무로 지은 오두막 같은 집에서 부모와 조부모,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회의실보다도 작은 공간에 바닥은 대나무나 합판으로 되어 있고, 한쪽에서는 나무를 때 밥을 지었습니다. 옆에는 돼지와 소가 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많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더운 지역이라 추위 걱정은 없다는 정도였습니다.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한의학 의료봉사
▲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한의학 의료봉사

최근에는 K-컬쳐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온 의료진에 대한 호감도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젊은 봉사자들은 거의 아이돌처럼 환대받는 분위기입니다. 2018년과 2019년 봉사 당시에는 다소 경계심이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특히 한의학 진료를 낯설어하며 침 치료를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현대의학 진료에 비해 한의학 부스가 상대적으로 한산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의학을 ‘한국에서 온 신비로운 의술’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치료 후 팔이 올라가지 않던 분이 팔을 들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한의학 부스에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그만큼 한의사 선생님들의 수고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현장 분위기는 매우 밝고 활기찼습니다.

2024년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세 번째 줄 맨 오른쪽이 김진석 님)
▲ 2024년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세 번째 줄 맨 오른쪽이 김진석 님)

인도 지바카 병원 의료봉사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018년에 인도 지바카 병원에 약 한 달간 머무르며 현지 의료 시스템을 조사한 뒤, 인도는 필리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의 경우, 산속 원주민 마을이 주요 대상이어서 병원이 없거나 접근이 매우 어려운 지역이 많았습니다. 의료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수 의약품을 처방하고 기본 진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면 인도 지바카 병원 주변은 조금만 걸어 나가면 시가지가 형성돼 있고, 의료기관도 비교적 많은 편이었습니다. 이곳의 문제는 병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지바카 병원에는 ‘까미스와지’라 불리는 로컬 닥터가 상주하며 기본적인 1차 진료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민다나오 의료봉사 중에(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진석 님)
▲ 민다나오 의료봉사 중에(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진석 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 의료봉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구상했습니다. 첫째는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보건 사업입니다. 영양 상태 평가나 혈액 검사 등 간단한 검사를 통해 철분제나 영양제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학교마다 보건실이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인정토회의 많은 보건교사 출신 봉사자들과 함께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보다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둘째는 지바카 병원이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인도는 의료제도가 조금 독특한데, 정부에서 허가받은 의사가 아니더라도 일정 기간 의사 밑에서 수련하고 시험을 거치면 제한된 지역에서 진료할 수 있는 로컬 닥터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바카 병원의 로컬 닥터는 종기 등 외과적 처치는 비교적 능숙했지만, 내과 질환이나 근골격계 통증 치료 등에서는 보완이 필요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의료인정토회의 전문성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인도 지바카 병원 의료봉사는 2026년 2월 21일부터 3월 1일까지 다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의료인정토회는 앞으로 매년 인도와 필리핀으로 의료봉사를 가는 건가요? 체류 경비나 의약품 구매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매년 여름에는 필리핀, 겨울에는 인도로 의료봉사를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보통 열흘 정도 머무르며 진료를 진행합니다. 항공권은 개인이 발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숙식은 JTS에서 전반적으로 지원해 줍니다. 의약품은 정토회원들의 보시와 후원을 통해 상당 부분 마련하고 있고, 부족한 물품은 JTS에서 일괄 구매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해외 의료봉사는 의료인정토회 활동 가운데서도 특히 보람을 크게 느끼는 분야입니다. 의료인으로서 잘 쓰이며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고, 현지 주민들의 환대 또한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어디 휴가를 다녀오는 것과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오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에 매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체력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에는 약 25명이 참여했는데, 그중 3분의 2 정도가 귀국 후 몸살로 앓아누울 만큼 일정이 빡빡했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도움을 드리려다 보니 무리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게 되는 것이 해외 의료봉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2018년 인도 지바카 병원 의료지원(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김진석 님)
▲ 2018년 인도 지바카 병원 의료지원(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김진석 님)

의료봉사 현장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안타까운 사례와,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하나씩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안타까웠던 경우는, 한국이었다면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거나 최소한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인데 현지 여건 때문에 도울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을 때였습니다. 얼굴에 큰 혹이 있는 환자나 선천성 심장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그랬습니다. 또 요즘 결핵은 약만 꾸준히 복용하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지만, 환자분이 사는 마을에서 보건소까지는 걸어서 편도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왕복 여덟 시간을 오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거리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보건소에 갈 수 있도록 차비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개인에게 직접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그마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핵은 장기간 꾸준한 복약이 필수이기에, 저희처럼 일회적으로 방문하는 의료봉사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보건소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는 정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2025년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전 9시에 진료를 시작해 오후 3시에 접수를 마감하고 4시쯤 철수할 예정이었지만, 산길을 서너 시간씩 걸어 온 환자들까지 모두 진료하다 보니 그날 하루만 약 600여 명의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체중이 2kg밖에 안 되는 미숙아를 안고 찾아오셨습니다. 아이는 열이 나는 상태였는데 다행히 소아 병동 근무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 선생님이 함께해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기 관리 방법을 산모에게 충분히 설명해 드리고, 산모가 복용할 영양제도 함께 챙겨드렸습니다.

한방 진료를 받은 분들 역시 큰 만족을 보였고, 마지막까지 현장 분위기는 밝고 활기찼습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진료를 이어갔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 없이 그 많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료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은 그리 크지 않을지라도, 이렇게 모이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의 의미가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2025년 민다나오 한방 진료 모습
▲ 2025년 민다나오 한방 진료 모습

일반적인 의료 현장과 비교했을 때 의료인정토회만의 분위기가 있나요? 특별한 장점이나 차별화된 접근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크게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하다 보니 양방과 한방의 협진이 잘 이루어지고, 직종 간의 조화도 잘 된다는 점입니다. 다문화센터 진료현장에서는 한의사와 일반 의사가 함께 진료를 보는데, 각자가 먼저 진료 볼 수 있는 부분을 살핀 뒤 다른 분야에 협조를 요청합니다. 그 덕분에 환자들은 보다 종합적이고 질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팔이나 허리, 어깨 통증은 한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감기나 소화기, 피부과 질환은 일반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식으로 한 번 방문하면 양방과 한방의 도움을 동시에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의료계는 보통 위계질서가 강하고 그 질서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조직이지만, 의료인정토회는 조금 더 유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사나 의사나 간호사나 서로를 같은 수행자로 여기다 보니, 현장이 바쁠 때는 의사가 직접 약을 짓거나 간호 보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진료 현장을 한층 평화롭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에게도 더 도움이 됩니다. 물론 직종 간의 의견 차이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봉사하는 도반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어,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좀 더 쉽게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

경주 남산 순례 의료 지원 중에(맨 왼쪽이 김진석 님)
▲ 경주 남산 순례 의료 지원 중에(맨 왼쪽이 김진석 님)

의료인정토회 활동이 김진석 님의 직업관이나 일에 대한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직업적으로도 도움이 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변에서 제가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직장에서는 보통 승진이나 연봉 같은 문제에 전전긍긍하기 쉬운데, 저는 그런 부분에 조금 초연해지면서 오히려 더 당당해진 것 같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줄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 법륜 스님께 직업과 관련한 고민을 질문드린 적이 있습니다. 근로자들에게 직업병 진단을 내리면 당시에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보상을 해주지만, 직업병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유도하거나 경비직이나 창고 업무 등 다른 부서로 보내곤 했습니다. 심지어 회사 측에서 직업병 진단이 나오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부 역시 노동부 감독관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상황을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은 힘들어도 참을 만한데, 근로자들로부터 “선생님이 직업병 진단을 내려서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원망을 들으면 힘이 쭉 빠졌습니다. 이 일을 소명으로 여기며 해왔는데, 정작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지쳐갔습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법륜 스님께서는 제가 하는 일이 분명히 의미 있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당시 누가 좋아했겠냐며, 그렇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계속하되, 문제가 있다면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는데, 그 격려와 지지가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기 법회 중에(앞줄 맨 오른쪽이 김진석 님)
▲ 정기 법회 중에(앞줄 맨 오른쪽이 김진석 님)

마지막 질문입니다. 의료인정토회 활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시나요?

거창한 바람은 없습니다. 인연이 되어 다가오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의료인정토회의 활동이 이웃들에게 과연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늘 저희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다문화센터 진료를 하다 보면, 당장 필요하지 않는 약까지 많이 받아 가길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혹시 꼭 안 먹어도 되는 약을 챙겨주는데 우리가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어떤 환자분들은 실제로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큰 병원으로 안내하면 섭섭해하시기도 하는데, 저희로서도 내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진료를 봐 드리면서도, 이것이 과연 환자분께 진짜 도움이 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해외 의료봉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지바카 병원의 경우도, 일 년에 한 번 한국 의료진이 일주일 남짓 다녀오는 것이 그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미 현지 로컬 닥터가 진료를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잠시 다녀오면서 오히려 기존의 의료 시스템을 흔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유수 스님께 질문드린 적이 있는데, 좋은 일이라고 판단 된다면 “그냥 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해외 의료봉사도 ‘가서 만나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좋은 기억이 될 수 있으니,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진통제 하나라도 드리고 오면, 아플 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더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의료인정토회의 활동이 과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싶을 때도 있지만, 정토회 오프라인 행사 때 의료 부스가 있고 의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반들 마음에 큰 의지가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듣기 좋은 말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도반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힘일지라도,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된다면 계속 곁에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진석 님은, 자신이 특별히 잘난 사람도 아닌데 도반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오다 보니 어느새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의료인정토회와 함께한 시간이 누군가를 돕는 봉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활동을 평생의 소임으로 여기며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김진석 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그 미소는, 의료인정토회가 어떤 마음으로 수행과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편집진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6년 3월 호에 수록된 의료인정토회 특집 2부입니다.

글_김진석(의료인정토회 대표)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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