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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불문 과일 사랑, 특히 수박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연아 님은 이름처럼 활짝 웃는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인터뷰 추천을 받고는 부담이 컸지만, 먼저 인터뷰를 마친 도반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웃음 뒤에 담긴 박연아 님의 인생 드라마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니다.
남들 앞에 서는 것조차 수줍어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집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아들만 우대받던 그 시절, 남동생 둘을 둔 장녀였지만 집안의 독보적인 '금딸'이었습니다. 권위 대신 친구처럼 다가와 준 아버지와 자식들의 장점만 찾아 칭찬해 주던 어머니 덕분에 언제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늘 영어책을 들여다보던 큰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반해 영어 특별활동반에 들어갔습니다. 노래로 영어를 배우며 즐겁게 놀다 보니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본격적으로 영어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시 제 꿈은 외교관이었습니다. 영어만 잘하면 당연히 외교관이 되는 줄 알았던 순수한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은 당연한 목표였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졸업 후 바로 돈을 버는 게 어떻겠냐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 나 대학 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장녀의 무게 때문에 부모님 뜻을 따른다지만, 저는 일찌감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당당하게 제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딸을 타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주었습니다.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지금도 남동생들과 우애가 무척 깊습니다. 함께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면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은 세상에 없다"라며 입을 모읍니다. 하루는 조숙하고 엉뚱했던 막냇동생이 중학생 때 제시간에 등교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난리가 난 학교에서 "아이가 가출했냐"라며 전화가 왔지만, 아버지는 걱정은커녕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화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아들을 믿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식을 온전히 믿어주었던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가 지금의 단단한 저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사랑과 믿음 속에서 따뜻하게 자란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결혼 생활은 가혹했습니다. 평온할 것만 같았던 일상은 남편의 반복된 외도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가슴 깊이 파고든 상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저를 괴롭혔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원망은 결국 몸마저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뇌경색, '이 모든 게 다 당신 때문이야'라며 눈물 흘릴 때,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아픔은 그 이후였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순간에도 남편은 일관되게 무성의했습니다. 반성이나 사과도 없는 그 차가운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제 마음은 더 깊은 절망으로 내몰렸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자책과 원망 속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저를 구원한 것은 우연히 들은 스님의 법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듣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타인 때문에 내 삶을 망가뜨리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은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혼이었지만, 내 행복을 위해 인생 최대의 결심을 했습니다. 홀로서기를 결심한 순간, 머리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습니다. 남의 기대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내린 용기 있는 선택. 저는 지금도 그 선택에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습니다.
홀로서기 후 지인의 회사에서 일하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다리가 뻣뻣해지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뇌경색의 불길한 감각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병이었기에 병원에 가면 최소 일주일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회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급한 업무부터 처리하려 애썼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지인이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치 깊은 잠에 취한 듯 의식이 몽롱해 정상적인 판단조차 내리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응급실로 들어서는 길조차 험난했고,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경련이 시작될 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예후가 안 좋아 큰 후유증을 남겼을 것입니다.

저를 구해준 지인은 병문안을 와서 행복학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토회와의 인연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습니다. 그 지인은 죽을 고비에서 저를 구해준 것은 물론, 정토회와의 인연을 통해 제 삶을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준 진정한 생명의 은인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저를 건져준 고마운 인연은 이제 같은 지회에서 활동하는 소중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며 수행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함께 일하는 분들이 저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큰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나에게 저럴까?' '왜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릴까?' 하며 늘 의문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불교대학 돕는이를 하며 들은 법문과 학생들의 나누기를 접하면서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제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혹시나 실수할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을 하는 반면, 저는 사장님이 지인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대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 역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럼 나도 당신들 상대 안 해’라며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만 돌렸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는 다른 직원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나라도 그랬겠구나’ 하고 그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좀 맞춰주면 어떠냐"라는 스님의 말씀에, 그동안 제가 얼마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는지를 알았습니다. 지금은 일터에서 함께하는 분들과 잘 지냅니다. 서로 조심하고 맞춰가는 지혜를 소임 덕분에 배워갑니다. 한때 원망하고 미워했던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편안하게 상대를 대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돕는이 소임이 없었더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텐데, 참으로 소임이 복입니다.

불교대학 돕는이와 지회의 평화꼭지를 오랫동안 맡아오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습니다.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어느 북한이탈주민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표정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늘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불평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방문할 때마다 진실된 마음으로 봉사자들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하는 분에게서는 오히려 마음 가득 따뜻한 정을 얻습니다.
가족 혹은 본인이 장애가 있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얼굴에는 늘 밝은 미소가 가득한 고려인들. 우리는 작은 불편함에도 금세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곤 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긍정적인 모습은 봉사자들을 겸허하게 합니다.
통일축전을 준비할 때, 다수인 아랫동네(남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아우르며 축제를 이끌어가는 윗동네(북한) 분 모습을 보며 깊은 존경심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 생각했던 소임이 알고 보니 저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렸던 시선을 저에게 돌릴 수 있었습니다. '잘하려는 마음' '부족한 마음'으로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원망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이 따뜻하고 보람찬 소임의 기쁨을 더 많은 분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살 씩 나이가 들며 몸 아픈 곳이 조금만 생겨도 마음이 흔들리는 저와는 달리, 여러 차례 찾아온 건강의 고비 속에서도 담담하게 삶을 헤쳐 나가는 박연아 님의 모습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불교대학을 거쳐 경전대학을 지나오면서 대나무 숲에서 이야기하듯 가슴속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쏟아 낼 수 있었다는 박연아 님. ‘정토행자의 하루’ 같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빛나는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제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한 걸음 씩 나아가는 박연아 님의 삶이 많은 분께 따뜻한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_심학숙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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