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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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님과 정토회의 첫 만남은 무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토회를 만나 변화한 아내의 권유로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게 되었고, 불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스펀지처럼 흡수하였습니다. 잠시 삶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이원진 님은 수행과 봉사를 놓지 않았고, 보리수 활동을 하며 오히려 일과 수행의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불법이 널리 전해져 자신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살려내고 싶다는 이원진 님의 존재 자체가 참 든든한 보리수 같습니다.

삐걱거린 시작, 정토회로 향한 길

이원진 님
▲ 이원진 님

결혼하고 18년이 되던 해, 집사람은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 둘을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우리는 권태기 없는 잉꼬부부였고, 아내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갑자기 뇌동맥류로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황망하고 허망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사치였습니다. 늘 애 엄마가 해주던 일들을 내가 대신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몫까지 보살펴야 했습니다. 받기만 하다가 직접 해보니 집사람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 게임에 빠져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아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아들은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5년이 지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했습니다. 재혼해도 아이들 외조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잘해드려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는데, 그 말에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전처럼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아내는 의부증이 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십수 년간 혼자 지낸 아내의 외로움까지 보상해 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달리 하루하루가 다툼이었고, 몸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아내는 주사기와 약물을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았고, 저 역시 극단적인 표현으로 대응했습니다. 아내가 진짜로 무슨 일을 낼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너무 괴로웠는지 사방팔방으로 알아보고 찾아다니더니 어딘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이 정토회였습니다.

아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조금씩 변했습니다. 어느 날 심하게 다툼을 벌이다 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3년만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내의 권유로 2006년에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 다녀오고 1년 단위로 ‘나눔의 장’과 불교대학에 참가했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할 때는 집에서 가정 법회를 열고, 수행 맛보기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도반 중 한 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는 중이었는데, 법회에 참석하면서 약을 중단하고 병도 나았습니다. 다른 모습이 된 아내와 약을 중단한 도반의 얼굴이 환하게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뭐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고, ‘부처님 가르침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장에 다녀오고 불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배운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습니다. 노년을 잘살기 위해선 온갖 자격조건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불법을 공부하며 실천하는 수행자의 길이 진정 즐겁고 보람된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2010년 9월에 수행담을 발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불교사회대학 나누기 후에(앞줄 맨 왼쪽이 이원진 님)
▲ 불교사회대학 나누기 후에(앞줄 맨 왼쪽이 이원진 님)

건강과 경제력을 잃어갈 때도 놓지 않은 봉사활동

58세에 추간판 협착증이 왔는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있으면 불구가 될 것 같아 시술하려는데 간호장교 출신인 아내와 의사인 조카의 권유로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더 악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밥 한 끼 먹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하루 23시간을 누워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몸져누워 있었더니 근육이 거의 빠져서 체중이 10kg이 줄었습니다.

조카의 조언으로 몇 가지 몸살림 운동과 108배 절을 하던 중 불현듯 명상 수련 때 들었던 법문이 생각났습니다. “통증을 통증으로 알아차리고 지켜보면 통증이 사라지니, 그 한계를 뛰어넘어보고 극복하는 것이 수련이고 수행입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운동하면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지도 법사님의 가르침을 적용했습니다. 덕분에 허리디스크는 자연치유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지간한 통증은 ‘통증이구나’ 하고 지켜보는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으며, 주변의 디스크 환자들에게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전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돈이 조금 있어서 IT업계에 주식 투자를 했습니다. 계열 세력에서 경쟁력이 있었고 일이 잘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2018년에는 사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포기하라고 했지만, 서울지검 앞에서 물구나무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위 공직자들의 태도와 사회가 정의로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 후 생활이 급속도로 어려워졌습니다. 2020년 9월에는 관리비 낼 돈조차 없어서 단전 단수가 되었고, 부탄가스로 밥을 하면서 겨울에도 찬물로 씻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2021년 4월에는 코로나19로 입원하여 산소호흡기까지 달고 한 달간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 시행 후 마지막 남은 12층 스카이라운지도 가짜 유치권으로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몸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병원에 조기 퇴원을 요청하여 회사와 법원 등을 오가며 문제를 해결하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때 향취 법사님이 집에서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콜센터 봉사를 제안하셨습니다. 이어서 한 달 간격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 안내와 숙직 및 방재실 봉사를 맡았습니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도 급했지만, 봉사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수행 삼아 “예”하고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 방재실에서
▲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 방재실에서

정토회와 나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언젠가는 출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보리수 백일출가’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2020년 준공한 정토사회문화회관은 20층 건물로 건축·전기·소방 등 기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나 관리회사가 건물 관리를 해야 하는 건축법에 막혀 무고용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런 위기와 딜레마가 오히려 유수 스님과 향취 법사님, 간부들에게 채찍이 되었습니다. 온갖 아이디어와 궁리 끝에 건물 관리에 필요한 자격증 소지자와 봉사자들을 백일출가 형식으로 전문 교육을 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정토회 원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유수 스님의 고뇌가 사라지고 활기를 되찾아 정토사회문화회관 건물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으뜸절을 관리하는 자원봉사 시스템 ‘보리수’가 만들어졌습니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교육하여 수행자의 관점을 잡아주면서 건물 관리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15명의 도반과 함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보리수 1기가 되었습니다.

냉수마찰로 체력을 다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의지가 솟았습니다. 정토사회문회관 봉사와 온라인 보리수 교육을 같이하면서 건설업 안전교육도 수료했습니다.

생계도 꾸려나가야 했기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지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 취업하여 막노동하는데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과 보리수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것을 융합하는 상호 작용이었습니다. 낯설던 전문용어도 익숙해졌고,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왜 안 되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연구하며 답을 찾아냈습니다. 일과 봉사를 병행하면서 공부하는 자세로 둘러보니 주변 건물과 사물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관심과 애정으로 하나하나 눈여겨보았습니다.

보리수에서 배운 실력과 수행의 힘으로 마포구 공덕동에서 건물 관리를 해보니, 이렇게 하면 정토회 건물을 뛰어넘어 사회나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보리수 법회에서 유수 스님은 보리수 회원들을 으뜸 지도자로 양성하겠다고 힘을 실어주시며, 세계 최초로 건물 관리를 봉사 시스템으로 꾸려갈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 공양간 청소 중(맨 오른쪽이 이원진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 공양간 청소 중(맨 오른쪽이 이원진 님)

수행과 감사의 삶, 이대로 충분합니다.

정토회 만나서 봉사하고 수행하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매일 300배 정진과 냉수마찰을 이어오던 중 작년 4월에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42세 때 편평세포암으로 수술받았는데 또 암이라고 하니 암담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증상이 없어서 미룬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5월에 입원하여 위를 3분의 2 정도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을 받고 체중이 11kg 가까이 빠졌다가 이제 서서히 회복되는 중입니다. 암적 존재를 다 잘라냈기 때문에 위암 환자가 아니라 자칭 '위소 환자'라고 부릅니다. 몸이 가벼우니 다리도 고마워하면서 계단도 가볍게 두 개씩 오릅니다.

몸은 종합병원 수준이고 수십억대 자산가에서 IT 투자와 건물 시행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암에 걸려도, 부도가 나도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증명해 가고 있습니다.

이번 백일 특별정진 기간 동안 일주일에 3일,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 안내 봉사를 맡아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회관을 찾아주신 회원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알기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한 분 한 분에게 “환영합니다”라고 진심으로 목청 높여 외치곤 합니다.

함께 활동하고 정진하는 보리수 도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새벽 정진 후 소장팀과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것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연등 설치 작업 등 일 수행 때 안전모를 착용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다루는 모습은 진한 감동입니다. 곳곳에서 일을 찾아서 하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량의 안전을 위해 꼼꼼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라는 이유로 거들지 못해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같은 보리수 도반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덩달아 자랑스럽고 기쁘며, 보리수 유니폼을 입은 도반들을 마주칠 때마다 존경스러운 마음입니다.

백일법문 기간 매주 토요일에는 1080배 정진을 합니다. 평소에 세웠던 절 운동과 평화통일, 또 하나의 원까지 세 가지 원을 반드시 실현해 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깁니다.

불법이 널리 전해져 누군가를 원한으로 해치거나 자신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화나고 짜증 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순간적으로 ‘아이고, 또 마음의 병이 올라오는구나’라고 알아차리며 내려놓습니다. 지금도 밖으로 향하는 눈을 안으로 돌리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환영합니다!”를 외치며 많은 분이 불법 만나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6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이원진 (보리수 1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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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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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애

진솔한 수행사례담 감사합니다. 부처님을 따라가는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2026-01-12 09:49:03

김옥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를 되뇌며 꿋꿋이 일어서는 모습이 너무도 감동입니다!
도반님, 감사합니다~

2026-01-12 09:45:26

정안진

소중한 수행담 감사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려워 봉사활동만 하는게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는데...즐겁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01-12 08: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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