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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진짜 대단하다!"라는 말이 글을 읽자마자 육성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주 6일을 근무하고, 하루 쉬는 날은 문경에 가서 봉사하는 것에서 한 번 놀랐고, 그 일을 3년째 하고 있는 것에서 두 번 놀랐습니다. 이런 뚝심이 있는 분이기에 가장 절망적인 현실에서 자신을 건져내고, 다시 탄탄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의 주인공 고광희 님을 힘찬 박수로 소개합니다.
저는 굴착기 등 장비 대여하는 사업을 하면서 직원으로 기사들도 둘 정도로 한때 돈을 잘 벌었습니다. 수입이 없는 날도 있었지만, 11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업이 어려워져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비상금으로 가구점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하고 싶으면 한 번 해보라 했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생각과 달리 가구점 운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다 보니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은 사람 얼굴 한 번 못 보고 가게만 지키다 퇴근했습니다. 그런 날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횟수가 점점 많아지니 초조해졌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주변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이제 그만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문을 닫기에는 미련이 있었고, 이전에도 사업을 해봤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만 더 잘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옳다는 고집을 부리다 결국 바닥까지 가서야 문을 닫았습니다.
가진 돈도 없는 데다 가게 문도 닫아 갈 곳이 없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습니다. 현실이 원망스럽고 식구들 얼굴 보기가 미안해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맨정신으로 버티기가 어려워 매일 술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직 어린 자식들과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자리를 찾아 천안으로 갔고 일용직 현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혼자 숙소에 있으면서 우연히 유튜브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사연으로 스님께 질문했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대답해주시는 스님 말씀을 들으면 뭔가 시원한 기분이었습니다. 매일 스님 동영상을 보았고, 내 처지와 비슷한 사연으로 질문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계속 듣다 보니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면 괴로워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매일 동영상을 보다 보니 정토회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상가 건물 3층에 천안 법당이 있었고, 정토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게 사이비 단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수요 법회에 참석하여 다른 몇 명과 함께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나누기는 어색했고,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스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던 중 “방법을 매일 알려주는 데 왜 일을 잘하지 못하냐?”라는 선임의 말에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손재주가 없어 현장 일에 서툴렀고, 잘 못하는 분야를 하다 보니 지적도 많이 받으면서, 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일용직이라는 생각에 괜히 울컥하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사장일 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불쾌하고 왜 화가 나는지도 몰랐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변화가 있었고, 이만하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마음이 심하게 출렁거렸습니다.
법문을 들을 때 분명히 이해되었는데 상황에 닥치면 왜 안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배웠는데, 실천 없는 일상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의 하루’에서 주말에 시간 있는 사람은 문경수련원에 와서 봉사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무작정 문경수련원으로 갔고 봉사를 시작하면서 일요일마다 화성과 문경을 오갔습니다. 봉사도 봉사였지만 법륜 스님을 직접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못 만났지만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수련장을 사용하지 않아 곳곳이 망가지고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몇몇 분들과 함께 수련장 정비를 시작으로 화장실 청소, 세면대 수리 등 시설보수를 도왔습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깨달음의 장이 다시 시작된다는 연락을 받고 수련 신청을 했습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참여했는데 말장난하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심한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절박한 시기에 어렵게 시간 내어 왔는데 ‘내가 이런 말장난이나 하러 왔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결국 법사님께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그 이틀의 시간이 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워 곰곰이 되돌아보니 조금씩 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난 왜 반감이 생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고집이 센가? 내가 강하구나, 그래서 넘어졌구나!’ 그동안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쪽에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 새벽 법사님을 찾아가 사과드리고 나서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시 한번 저를 깨우쳐주신 대광 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친 후 틈틈이 문경수련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대광 법사님의 권유로 보리수 정진에 흔쾌히 참여했습니다. 내 업식을 바꾸고 싶은 어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문경에서는 풀베기 일이 많아 처음으로 예초기 작동을 해보았습니다. 설명을 듣고 열심히 해보았지만, 예초기가 생각처럼 작동되지 않아 기계치인 제게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경사면에서 몇 차례나 구르기도 했습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반은 작동 방법을 설명해줄 뿐인데, 괜히 지적받는 기분이 들면서 언짢기도 했습니다. 마음에서 뭔가 ‘훅’ 올라왔고,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고 돌이켰습니다.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마음을 볼 수 있었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면 분별심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상대방은 그냥 말할 뿐인데,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리수 활동, 2년이 지나고 나니 그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3년째인 지금은 출렁거리는 마음도 없고 아무렇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지적하면 내가 부족하니까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모르니까,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더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합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게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내가 옳다 하더라도 다 내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주 6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 날은 봉사하러 문경에 갑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느껴집니다. ‘좀 쉴까? 이런다고 무슨 깨달음을 얻겠어’ 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아내는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저를 보며 종교에 미쳤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내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는데, 당시에는 가시 돋친 말처럼 들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내 갈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본래 기계 다루는 일에 굉장히 서툴렀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줄 정도로 익숙합니다. 그리고 예초 후 깔끔해진 수련원을 보면 나도 여기에서 함께하는 일원이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무엇보다 가슴속 깊이 뿌듯함 같은 것이 샘솟아 감사한 마음으로 보리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라도 누구와 상관없이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전과 상황은 변한 게 없지만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마음이 출렁거려도 빨리 알아차려 그 일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아직은 넘어야 할 언덕이 남아있지만, 보리수 정진으로 탄탄해진 마음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할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글_고광희(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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