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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사 실행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울산지회 성유경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일정을 잡으려니 주말은 시간이 전혀 없고, 평일은 저녁 9시 30분에야 겨우 가능했습니다. 얼마나 바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수행법회의 <주간 정토행자의 활동>에서 천룡사 농사팀과 보리수 활동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현장의 도반을 만난다니 반갑고 설렜습니다. 오늘은 천룡사 살림을 맡고 있는 성유경 님을 만나겠습니다.
2002년 친구들과 부모 교육을 받으며, "깨달음의 장!1은 한방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0년 뒤인 2012년 우연히 전단을 보고 친구와 함께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1남 5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외아들로 태어나 딸이 많아도 차별하지 않았고 집안은 평등한 분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내성적이고 감성적으로 제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았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렸고, 늘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훗날 아버지는 “그때 6남매 모두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한 달 월급으로 쌀을 사고, 다음 한 달 월급으로 육성 회비 내고, 그다음 한 달 월급으로 옷을 사고... 이렇게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아버지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습니다.
어머니는 일 년, 열두 달 제사 지내는 종갓집 며느리였고, 활동적이었습니다. 음식을 잘 해서 먹고 싶은 건 언제든 척척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은 그냥 보지 못하고 꼭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가 공사 구분을 못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습니다. 내성적인 아버지에 비해 활동적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못마땅해 늘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2013년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너무 부끄러워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못마땅했는데, 실은 내가 남편을 얼마나 마음대로 휘두르고 살았는지 알게 되고 매우 미안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댁과의 갈등이 있을 때, 백 퍼센트 제 편을 들었고, 친정 부모님이 힘들 때 몸과 마음,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집착이 심했습니다. 남편은 3남 1녀 중 둘째로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저를 엄마이자 연인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받아주기는커녕 바라는 마음만 컸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잘하기를 바랐고,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의 지향점에 남편이 맞추기를 바랐습니다. 퇴근한 남편에게 "애들한테 책 읽어줘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고 계속 채근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지만, 제 마음에는 ‘이왕 읽어주면 잘 읽어줘야지!’라고 불만을 가졌습니다. 제가 행복한 가정, 훌륭한 아버지의 원이 컸던 만큼 남편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많은 걸 요구하고 강요했습니다.
그때는 남편이 ‘벽’ 같았습니다. 나만 내세우고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부부 싸움도 잦았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가기 전 내가 남편을 이해한 건지, 포기한 건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다녀오고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감사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때 바라지 오라는 보광법사님의 말씀을 듣고 "문경은 너무 멀고 두북에 열리면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두북에서 <깨달음의 장>이 열렸고, 바라지하러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공양간2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공양간 봉사는 밥 한번 지으면 끝나는 일이라 매이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고, 다른 활동에는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두북수련원은 규모가 작고 봉사 오는 사람도 매번 비슷했습니다. 4박 5일, 바라지 기간 중 사흘째 날은 법사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라지하면서 보수법사님의 주옥같은 법문을 들으니,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절로 났습니다. 바라지 봉사를 2년 반 했을 무렵 두북에 지진이 발생해 <깨달음의 장>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지회에서 활동했고, 평소 관심이 많던 통일의병3이 되기 위해 먼저 정회원 자격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9개월간 법회에 참여하고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며 정회원이 되었고, 5년 동안 특별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법당에서, 특별위원회에서, 천룡사에서 힘들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건, 스님의 법문과 여러 법사님에게 받은 수행 점검 덕분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천룡사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실행위원회의 장입니다. 천룡사 실행위원장 소임을 받았을 때, 무릎이 좋지 않았고, 정토회 활동 경험이 적은 제가 맡기에는 큰 일이라 망설였습니다.
늘 마음대로 결정했는데, 이번에는 천연스럽게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천룡사에 이런 일이 있는데, 할까?” 남편은 “알아서 해라!”하고 출근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운동하러 돈 주고도 가는데 등산도 할 겸 소임 해봐라."라고 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바빠서 활동하지 못하는 남편은 “당신이 나 대신 많이 해라!”라 했습니다. 요즘은 주말마다 제가 천룡사에 가니 남편이 “그 소임 이제 끝날 때 안 됐나?” 하고 물어봅니다. 그럴 때 ‘아, 남편이 힘들구나!’ 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려고 합니다.
회사에 다녔지만, 정토회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천룡사 일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연등과 백등도 구분하지 못할 때, 천룡사 실행위원장을 맡아 처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 3,200개의 연등을 달아야 했습니다. 연등 구조물을 설치하고 연등을 달아야 하는데, 연등을 어떻게 다는지 몰라 첫해에는 잘못 달았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실행위원장이 일을 잘 알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해 매우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특별위원회에서는 나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행위원장을 하면서 너무 졸아드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중울산지회 도반들이 적극 도와주었고, 덕분에 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천룡사는 2차 만일결사4를 시작하면서 부울지부 으뜸 절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을 맡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조직도 없었습니다.
유수 스님께서 보리수 정진을 시작했고, 농사팀, 도량정비팀, 사찰문화팀, 지원팀, 보리수팀, 시설관리팀으로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지금은 매주 천룡사에 와 큰 힘이 되었던 지회 도반들이 보리수가 되어 천룡사를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천룡사가 조직도 꾸려지고, 산 좋아하고 자연 좋아하는 천룡사 마니아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활성화되었습니다. 매주 천룡사에 올라와 농사짓고 카페 쉼터도 만들었습니다. 내 일처럼 함께하는 보리수 도반이 있어 참 감사합니다.
천룡사는 내년에 불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7월에는 인터넷 광케이블 공사도 시작할 예정이고, 올라가는 길도 정비되면 접근성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용성조사님이 9년간 보림한 천룡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토회원들이 천룡사에서 잘 쉬었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은 어떤 도반에게 “일을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도반은 “지금 막말하느냐?”라며 삿대질하듯 말을 저에게 퍼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도반이 기도 나누기에 이 일에 관해 쓴 글을 보고 억울한 마음이었습니다. '중구난방'이라는 표현은 잘못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절을 하며 방석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때 다른 도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특징을 딱 잡아서 말을 잘하나?"였습니다.
그때 나로서는 바른말이라고 생각한 '중구난방', '마음대로' 같은 단어가 도반의 처지에서는 막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도반 덕분에, 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도반이 스승입니다.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여 갈등이 매우 컸습니다. 아이들 말에 따르면, "엄마가 법당 다녀오면 사흘은 멀쩡하고, 사흘은 자기들을 잡았다."라고 합니다. 남편은 언제나 제 편이라 아이들 문제도 “그러다 너희 엄마 죽는다. 너희들 없이는 살아도 너희 엄마 없이 나는 못 산다.”라고 했습니다. 한 명은 말려야 했는데, 둘 다 같이 애를 잡은 꼴이었습니다.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울고불고했지만, 큰아이는 부모의 뜻에 따라 미대가 아닌 곳으로 대학 진학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대학에 가서도 이렇게 저렇게 개입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을 때 "그냥 쓰면 안 되니까 여행 계획을 세우라"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대만 4박 5일 일정을 짰습니다. 저는 이렇게 짧은 여행은 즐기는 여행이라며, 열흘 이상의 여행 계획을 확인하고 여행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여행에서 길을 잘못 들어 50도가 넘는 더위에 길바닥에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날 아이는 내게 전화하여 “엄마,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여행에서 돌아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저와 아이 모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큰아이가 제게 "엄마는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엄마와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떨어져 있어도 붙어 있어도 좋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제 마음을 잘 받아주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둘째 아이에게 큰 아이 욕을 했습니다. ‘내가 미쳤구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둘째는 제가 큰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지 다 보았기 때문에, 눈치껏 자신을 억압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고 잘 살 것 같지만, 엄마로서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요즘은 둘째가 집에 왔다 갈 때 일부러 기차역까지 배웅하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정토회 활동하며 가장 많이 변한 모습은 화를 덜 내고, 짧게 내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 지금 화내는 거야?”라고 하면 엄마는 화를 멈춘다고 합니다.
제가 둘째로 자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애쓰고 참고 울고 화내고 터트리는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스님과 법사님의 법문을 듣고 수행 정진을 하며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사회는 정의롭고 평등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의로운 것이 꼭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님을 알고 어릴 적부터 가졌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줄었습니다.
천룡사에 남편과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갔다 온 후 비가 오면 전화합니다. "비 오면 천룡사 가지 마라", "오늘은 가면 안 된다."라며 저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남편을 이해하며,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남편이 훌륭하다.'라는 생각도 합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 숙여지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기복적 기도는 하지 않지만, 천룡사 실행위원장 첫 소임으로 연등 달기를 하다 낙상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룡사에 가면 삼배를 올리며 “부처님, 용성조사님, 오늘 하루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 무탈한 하루가 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제 수행과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고, 앞으로 정토회에서 하고 싶은 활동은 지역실천활동입니다. 특별위원회에서 실천활동을 했고, 탈원전 같은 지역실천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성유경 님은 바라지를 3년 하고 싶었지만, 두북에 지진이 발생해 2년 반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마음만 내면 언제나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사도 인연이 되어야 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은 봉사가 참 소중하구나!'를 알았습니다. 또 특별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며 웃는 성유경 님의 모습을 보며, 오랜 수행 정진은 삶을 맑고, 분명하고, 바르게 만드는 것도 알았습니다. 천룡사 불사가 완성되어 많은 도반이 함께 쉴 수 있는 도량이 되기를 저도 함께 마음 모아봅니다.
글과 편집_희망리포터 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공양간수행과 생명공경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정토법당 대중들의 안정적인 식생활을 보장하는 곳. 공양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행으로, 정토회 공양간은 생태적이고 소박한 밥상을 지향함. 공양간 봉사자들은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 ↩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불교의 가르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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