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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미 님은 무려 8년간 영양사로 일했지만, 바라지장 공양간에서 처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주방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좋은 식재료로 먹는 사람의 마음까지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음식을 차리니, 마지막 날 수련생들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면 받아 볼 수 있는 공양은 단순히 밥 한 끼가 아니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성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라지장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현재의 문제를 깨닫고 풀어나가고 있는 김차미 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더 기대되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 걸까 봐 잔뜩 웅크리고 있던 제가 ‘깨달음의 장’이 끝날 즈음엔 헤어지기 싫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한 달 뒤 ‘일상에서 깨어있기’에 참가하고,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바라지장에 갔습니다.
영양사로 8년간 일했기 때문에 바라지장에서 할 일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초반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소리지르지 않고 화내지 않고, 질타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서로 도와주고 칭찬하는 주방을 여기서 처음 경험했습니다. 예전에 일터에서는 제일 싼 재료, 냉동 야채, 반조리 식품으로 가격 대비 부실해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고, 먹는 사람의 마음을 별로 헤아려보지 않았기에 죄송하고 민망해서 숨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가장 좋은 식재료로 먹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날 인사하러 수련생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바라지들을 바라보는 수련생들의 환영의 눈빛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모습이라 보람되고 뿌듯했습니다.

다음 해 1월 바라지장에 갔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을 계속 곱씹으며 누굴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대로 말을 못 할까 봐 긴장하고, 못하면 자책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긴장이 계속되다가 저녁 나누기 시간에 말할 순서가 되면 심장박동이 정점을 찍으며 왈칵 눈물이 터졌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바라지 팀장님이 “정진밖에 답이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좋다는 거 나도 한번 해봐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지금은 경전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4월에 다시 바라지장을 찾았습니다. 오빠에 대한 미움과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힘들었습니다. 첫날 발우공양을 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아빠와 닮은 분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오빠와 엄마를 미워하느라 아빠를 잊고 있었구나’ 하는 죄송한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 발우공양 때, 노모와 형제가 발우공양 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이 함께하고 있네. 부럽다. 아! 나는 오빠가 미운 게 아니라 잘 지내고 싶었던 거구나. 그런데 그게 안 되니 미웠던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사님께 질문드렸을 때 오빠가 나에게 못되게 군 것이 아니라 엄마가 차별한다고 생각해서 오빠를 미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법사님이 그것을 망상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5월에 다시 바라지장을 갔습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불안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초등학생 시절, 한밤중 침대 밑에 무언가 있다는 공포감에 등을 벽에 붙인 채 잠을 청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무서움을 이기지 못해 엄마에게 가서 “엄마, 잠이 안 와”라고 말하면, 엄마는 돌아누우며 “빨리 가서 자!”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벽에 등을 붙이고 울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마다 절을 하면 그 장면이 보였습니다. 울고 있는 어린 저를 벽에서 떼어내 안아주고 등을 쓸어주며 침대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안심시켰습니다. 어린 저는 어른이 된 저의 품에 안겨 든든한 등을 어루만졌고, 불안할 때마다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새벽 예불을 하며 오랜만에 그 장면이 떠올랐을 때 ‘이젠 안 와도 돼. 나 이제 괜찮아. 이제 침대 한가운데 대자로 누워 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마지막 날, 대중공사 때 바라지 소감을 이야기하라는 말을 듣자 또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할 말을 생각했으나 순서가 되어오자, 심장이 몸통만큼 커지는 듯하면서 손은 차가워지고, 발우공양은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목에 울음이 차올라 진정하려고 온갖 방법을 써봐도 안 되고, 숨이 점점 조여오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놔!’ 하는 순간,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여기는 아무 일도 없는데, 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하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는데 심장이 뛰고 말은 안 나오고 결국 눈물이 터졌습니다. 두 손을 맞대어 코에 대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심호흡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혼자서 말하고 있다는 게 저에게는 큰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라지 덜 와도 되겠다, 정진도 적당히 해도 되겠다’라는 교만함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돌아가서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왜 말만 하려고 하면 눈물이 날까요? 칭찬받고 싶어 솔직하게 말했는데 오히려 혼이 나고, 무서움을 무릅쓰고 말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험들 때문에 사춘기 때는 입을 닫았고, 마음의 문마저 굳게 잠갔습니다. 그 후로도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입을 닫고 끝까지 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고 슬프고 외로웠다는 걸 이제 압니다. ‘사실은 나도 말하고 싶었어.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그런데 말하려고 하면 자꾸 눈물이 나. 그래서 화를 냈어. 화를 내면 진짜 내 마음을 숨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물어봐줘, 내 마음이 어떤지. 지치지 말고 물어봐줘. 화내지 말아줘.’
이제는 압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게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열라고 두드렸는지. 그리고 제가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부모님, 가족, 친구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오도록 항상 열려 있는 바라지장에 감사합니다. 바라지 팀장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_김차미(서울제주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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