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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월간정토> 편집팀은 정토사회문화회관 회의실에서 의료인정토회 대표 김진석 님을 만났습니다. 의료인의 전문성으로 수행과 봉사를 실천해 온 김진석 님의 이야기를 통해, 의료인정토회가 어떤 배경에서 출발했고 어떤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지 직접 듣기 위해서입니다.
의료인정토회의 발자취를 따라 웃음과 눈물이 오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 시간 여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마치 영양제를 챙겨 먹은 듯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했습니다. 의료인정토회의 이러한 이야기를 한 번에 담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2회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의료인의 손길이 수행이 되고, 봉사가 다시 삶을 치유하는 길이 되는 의료인정토회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구미에 거주하며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전공은 직업환경의학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야인데, 근로자들의 직업병을 진단하고 연구하며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의사로서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지 못했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좌파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 직업환경의학은 전공으로 선택하기를 꺼리는 분야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전문의를 준비하던 무렵에는 직업환경의학과가 새롭게 생기며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근로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의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30년 가까이 일해 보니 보람도 크고, 저에게 잘 맞는 전공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역에는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있어, 주로 화학물질을 다루는 근로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유기용제 중독 사례나 시끄러운 환경에서 일하다가 소음성 난청이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근골격계질환 환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 허리나 목 디스크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이러한 질환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직업적 환경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심리적 질환 역시 직업병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하는 때도, 업무가 그 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확실히 증명되면 인정받는 편입니다.

정토회와의 인연은 결혼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구 지역에서 의사·약사 모임을 함께 하던 선배들의 소개로 당시 약사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본 아내는 광채가 날 정도로 예뻤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이 얼마 전 문경에서 수련하고 왔는데 그 후 인생관이 바뀌었다며 저에게도 참여해 볼 것을 권했습니다. 속으로는 ‘서른이 다 된 사람이 어떻게 4박 5일의 경험으로 인생관이 바뀔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1995년 58차 ‘깨달음의 장’에 참여했습니다.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에는 깨달음의 장 후속 프로그램이 따로 없었고, 일 년에 한두 번씩 문경에 봉사하러 다니다가 이후에는 사는 게 바빠 정토회와의 인연은 끊어졌습니다.
결혼 후에는 병원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면 동료 및 선후배들과 친목을 다지고, 고충을 나눈다는 핑계로 음주가무를 즐겼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아내가 좀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 가면 아내는 부엌에서 법륜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틀어 놓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10년쯤 되었을 때 정토회와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당시 아내는 불교대학을 다녔는데, 구미에는 법당이 없었기에 퇴근 후 대구까지 오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대구 법당에서 불교대학 입학식을 하던 날, 아내가 “온 김에 당신도 입학원서나 써라”고 가볍게 제안했습니다. 얼떨결에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공부를 하면서 그동안의 제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의사의 삶을 살겠다고 품었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그즈음에 마침 구미에 법당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녁반을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정말 하기 싫었는데 억지로 등 떠밀려 제가 저녁반 책임자로 소임을 맡게 되었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뒤돌아보니 결국 아내의 공덕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정토회 입재식은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이다 보니 사고가 날 위험도 있었고, 법적으로도 의료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직업이 의사인 것을 아는 분들이 의료부스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제가 둘이서 의료부스를 운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분 두분 참가하여 총 25명의 의사와 한의사들이 모였습니다. 3개월마다 열리는 입재식 의료부스 봉사를 함께하고, 봉사가 끝나면 함께 밥을 먹으며 친목을 다졌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천일결사 입재식은 물론, 불교대학 및 경전대학 졸업식,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 많은 행사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의료부스 설치가 필요했고, 의료부스의 쓰임이 많아질수록 정토회 안에서 의료인의 역할도 커갔습니다.
그러자 단순히 행사 때만 만나 봉사하고 흩어지지 말고, 단체를 만들어 함께 수행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또한 의사와 한의사뿐 아니라 다른 의료계 직종 분들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유수 스님이 정토회를 대표하는 직능 모임으로 ‘의료인정토회’를 만들어 보라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약 1년 동안 준비 위원회 활동을 거쳐, 2018년 7월 7일 서초법당에서 지도법사님을 모시고 의료인정토회 창립대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창립법회에는 약 66명이 참석하였고, 회원으로는 150명 이상이 가입했습니다.

2025년 현재 총등록 회원은 434명이고, 의료인정토회 텔레그램과 네이버 밴드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은 270여 명입니다. 이 가운데 정기적인 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은 대략 100명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료인정토회는 불교대학을 졸업한 일반회원뿐 아니라 후원회원, 공식적으로 국가 자격을 가진 보건의료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재활치료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안경사, 요양보호사 등 정토회의 정체성에 동의하는 의료인들이 해당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사실 의료봉사할 때 가장 필요한 진료 분야가 치과입니다. 지도법사님도‘부탄틀니지원 사업’을 계획하며 의료인정토회에 지원 요청을 하셨는데, 현재로서는 역량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 글을 통해 치과의사 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서 같이 활동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료인정토회는 현재 네 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진료팀’은 다문화센터에서 정기적인 의료봉사를 합니다. ‘요양의료팀’은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각종 오프라인 행사에 의료지원을 나가며, 수행 법회 때 소개되는 ‘건강정보통신’도 맡아 진행합니다. ‘법회팀’은 월 1회 유수 스님 법회와 년 1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진행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무팀’은 회원 관리와 재정 관리, 비정기적 봉사를 담당합니다.
JTS 다문화센터는 안산, 부산, 일산, 서초에 마련되어 있는데, 그중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곳은 안산과 부산 두 곳입니다. 안산 다문화센터는 3년이 넘게 운영되면서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기에 아파도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매주 일요일 안산 다문화센터를 찾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소개하며 서로를 보듬고 있습니다. 매주 6~10명의 의료인이 돌아가며 꾸준히 봉사하는데, 하루 평균 25~30명의 환자가 찾고 있습니다. 이제 안산 다문화센터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단순히 치료를 넘어 일상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부산 다문화센터는 문을 연 지 1년이 좀 넘었습니다. 과거 동래법당 자리를 활용해 개원했는데, 아직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부산 인근의 외국인 근로자는 주로 기장이나 김해, 경주 쪽에 분포해 있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멀고, 아직 홍보가 충분하지 않은 점도 요인으로 보입니다. 방문 환자가 없을 때도 있고, 많아야 4~5명 정도이다 보니 봉사자들의 참여도 최근에는 3~4명 정도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일산 다문화센터는 의료인정토회에서 담당하는 건 아니고, 자체적으로 월 1회 의료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회원 가운데 인근에 거주하는 분들은 개인 자격으로 의료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비정기적인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천안에 베트남인들이 많이 모이는 절이 있는데, 부처님 오신 날 그곳에 부스를 꾸려 의료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봉사자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의료인정토회는 각 다문화센터 별로 팀장들이 진료 봉사 일정을 짜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통 의사 1명, 한의사 1명, 약사 1명,간호사 1명과 같은 구성으로 팀을 꾸리고, 직종별 소통방을 통해 주 단위로 봉사자를 공지합니다.
처음에는 의사 9명이 함께하며 약 두 달에 한 번씩 봉사하는 구조를 만들었지만, 해외 연수나 개인 사정으로 빠지는 분들이 생기면서 현재는 5명 정도만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료 담당 의사가 비는 날에는 봉사자를 구하는 일이 참 힘듭니다. 실제로 안산 다문화센터 봉사를 위해 저 멀리 광주에 사는 의사가 올라오신 적도 있습니다.
물론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안산 다문화센터에서 만났던 조선족입니다. 이 환자분은 한국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황에서 뇌경색까지 발병해 눈앞이 캄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월광 법사님을 통해 안산 다문화센터의 의료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지병이었던 당뇨와 고혈압까지 치료가 되면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후에도 금주와 규칙적인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토회에서 지원하였고, 환자 본인도 꾸준히 노력하여 건강을 회복한 후 불교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현재 그분은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성심성의껏 보살피셨던 월광 법사님의 헌신과, 불법을 만나 건강한 수행자로 성장해 가던 환자분의 감동적인 모습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글_김진석(의료인정토회 대표)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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