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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에 소개될 희망자 조사에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는 원종선 님.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맞겠다.’ 싶어 자원했다 합니다. 인상적인 첫 마음 나누기를 시작으로 인터뷰 내내 미소와 여유로 담담하게 수행담을 들려주었습니다. 마무리 나누기에서는 정토회 수행 3년 중 가장 많은 나누기를 했다며 웃었습니다. 어떤 삶이, 어떤 수행이 지금의 원종선 님을 있게 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남편과 저는 소방공무원입니다. 소방공무원은 긴박한 현장 출동과 심각한 상황을 목격하는 일이 많아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현장에서 대면하는 상황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초를 다투는 일입니다. 충격과 스트레스, 긴장이 누적되면서 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했습니다.
남자 소방대원들의 경우 저처럼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보다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 초부터 잦은 비상근무와 과중한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습니다. 한번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고, 술에 취해 귀가한 날에는 남편의 술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화를 냈습니다. 제가 피곤에 지쳐 잠이 들면 또 밖에 나가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남편이 사람을 폭행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제 목을 졸랐습니다. 그 순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처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주와 폭행으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그때마다 금전으로 합의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 일이 커지지 않게 무마했습니다. 나아지겠지 싶어 참고 지냈지만, 남편은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참고 버텨왔던 인내심이 폭발하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까지 떠올라 제정신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힘들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법문 중간에 불교대학을 홍보했습니다. 예전부터 명상과 요가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궁금증이 생겨 불교대학에 바로 접수했습니다. 얼마 뒤 담당자로부터 안내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입학 절차와 수업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법륜 스님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때였습니다. '이곳에 다니면 나도 저 사람처럼 친절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토회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지나친 음주와 폭행으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호소하는 상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바로 제 문제였고, 질문자는 제 거울이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간단명료했습니다. “남편에게 술은 보약입니다.” 질문자들처럼 제 마음에도 이 법문을 새겼습니다.
관점을 바로잡고 기도하면서 남편 문제를 제 고집대로 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해도 화내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술은 보약’이라는 말을 수백 번 가슴으로 되뇌니 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진 순간, 남편의 음주는 제 마음이 일으킨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술을 끊든 안 끊든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불만이 있으면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마음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다가 수행법회에서 법륜 스님 법문을 듣고 남편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았습니다. 스님은 “남편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기, 나 좀 봐 달라는 상대의 마음 읽기, 원하는 것 다 들어주고 해주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화를 내거나 하나하나 트집을 잡아 따지며 잔소리하고,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대신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표현했습니다. 남편을 이기려는 마음과 잔소리를 버리니 전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시선이 천천히 제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원거리 출퇴근에, 정토회 소임으로 제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 남편이 살림을 합니다.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는 법문이 또 통했습니다. 이 법문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남편과 함께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남편은 따로 알코올 클리닉도 다녔습니다. 어느 순간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건강 문제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술을 끊은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저는 아주 편안합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 놓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서울 강남, 부자 동네에 살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문방구에서 산 리코더를 준비해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은 악기점에서 전문가용 악기를 가져왔습니다. 사복을 입었던 중학교 시절이 가장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유명 브랜드 가방과 옷, 학용품으로 빛났는데 저만 짝퉁 칠갑이었습니다.
가난한 게 너무 싫었고,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절망하는 저 자신도 싫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만 공부 못하는 애가 되어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늘 화가 났습니다. 장사를 했던 부모님은 언제나 바빴습니다. 장녀인 제게 동생들을 돌보고, 부모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도 살펴야 하는 책임을 지웠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저 스스로 알아서 하라며 다그쳤습니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맞춰야 했을 때도 적당한 가격의 안경을 알아보고 스스로 결정하라며 혼자 안경 가게에 보냈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어린 제게 시킨다는 억울한 생각에 몰두하며 길을 가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 인대가 늘어나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버지는 무서웠습니다. 늘 술을 마셨고, 취하면 자식들을 앉혀 놓고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원망과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태도를 따지고 대꾸하며 아버지를 도발했습니다. 급기야 아버지는 저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소방관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대할 때 대처하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즐거웠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법문을 듣고 수행하며 제일 먼저 화를 잘 내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화가 나려고 할 때 탁 알아차립니다. 그 알아차림에 뿌듯합니다. 아버지 흉을 보거나 불만을 털어놓는 어머니를 대할 땐, 제 어린 시절 돌봄을 받지 못해 부모님에게 가졌던 불만과 원망을 마주합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어린 시절의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제가 아버지를 원망하며 뛰어가다가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뿐인데, 아버지 탓만 했음을 알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의 삶도 이해했습니다. 제게만 유난히 책임을 많이 지운 일도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법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라"는 아버지의 훈련 덕분에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지금까지 직장 생활하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키, 뚱뚱한 체격, 거기다 여자, 어떻게 소방관이 됐지요?” 사람들은 신기한 듯 저를 보며 궁금해합니다. 1996년도에 응급구조학과 2기로 입학해 응급구조사가 되었고, 이 분야 공부를 계속해 소방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구급차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응급구조사입니다.
소방공무원은 화재 진압, 인명 구조, 응급 구조 등 여러 분야의 구조 활동을 합니다. 26년간 현장을 누비며 응급 구조 활동을 했습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24시간 교대로 근무하지만, 언제든 비상이 걸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출동해야 합니다. 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소방공무원은 멋있고 숭고한 직업이지만, 그 안에는 대원들의 목숨을 건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대원들은 위험한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해야 합니다. 자칫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사람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어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소방공무원 중 많은 대원이 정신 건강을 위해 심리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26년간 했다면 전문가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소방관에게 '숙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응급구조사 활동을 하면서 늘 자문하고 갈등합니다. ‘이 직업이 나와 맞나?’ 어느 날 수행법회에서 26세의 공무원이 법륜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이 일이 정말 자신이 원한 일이 맞는지,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도 물었습니다. 바로 제 고민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처방이 특별했습니다.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을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입니다.” 제게 딱 필요한 맞춤형 법문이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방공무원이었구나.’ 제가 그걸 놓치고 그렇게 괴로워했음을 단박에 깨달았습니다.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벅차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새로운 소임을 맡을 때도 늘 질문합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 이 일을 안 할 이유는 없나?' 하며 자문하지만, 막상 해보면 소임이 모두 연습이고 그 연습은 직장 생활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어떤 업무를 맡아도 크게 어렵지 않고,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지금은 현장 출동이나 구급 활동은 하지 않고 신입 소방대원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맡고 있습니다.
즉문즉설과 법회에서 저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이 나눠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직장 생활의 고통과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매월 어김없이 받는 월급에, 도와주고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직접 찾아와 인사까지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방공무원이라는 제 직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모둠장 소임을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이 마음이 어디서 왔나?’ 하고 살펴보니 인도 성지순례 후유증이었습니다. 모둠원들에게 제 민낯을 다 들켜 체면을 구겼다는 민망함에 걸려 망설였습니다. 모둠장은 포용과 친절이 기본인데, 모둠원들에게 부린 짜증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여러 사람과 생활하며 행동할 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지나치게 긴장하고 애를 쓴 결과가 짜증이었습니다.
직장 승진 시기와도 겹쳤습니다. 승진하려면 비상근무를 해야 하고 근무지 이동이 뒤따라 사실상 모둠장 소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소임에 대한 압박과 밀려오는 업무에 4박 5일 명상수련을 신청해 도망쳤습니다. 묵언 수행과 행동 제한으로 명상도 계속하기 힘들었습니다. ‘여기 왜 왔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도 말을 걸거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저는 화를 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가볍게 그냥 해보면 되는데 왜 그리 핑계를 대며 소임을 맡지 않으려 애를 썼는지…’ 저를 옭아매고 있는 생각에서 놓여났습니다.
평소 저는 나서는 것을 아주 좋아해 누가 “이거 해 주실래요?”라고 하면 무조건 “네!” 합니다. 저지르는 걸 좋아해 저돌적으로 마구 합니다. 그러다 쿵 하고 넘어지면 다시 벌떡 일어나 또 달려나갑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수행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또 넘어지는 날이 오면 ‘넘어졌네’ 하고 또 벌떡 일어나 달려가고 있겠지요. 이런 제 수행법을 ‘도장 깨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수행을 도장 깨기 하듯 다 해보고 싶습니다.

자주 만나는 도반들한테 “저는 법사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사가 뭔지도, 얼마나 힘들게 수행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말을 뱉은 책임감에 소통방에 안내되는 수행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 <전법 회원 교육>…, 봉사활동도 일정을 조정해 참여했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 진행자와 돕는이, 그리고 모둠장을 하면서 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보탰습니다.
<정일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전법 회원들이 부러웠습니다. 직접 해보니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도반이 "조절할 수 있는 힘도 수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토회에 다닌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활동으로 빨리 깨달음을 얻고 싶었나 봅니다. 이젠 조절하면서 꾸준히 가보려고 합니다. 멀리, 오래 가려면 조절이 필수겠지요.
두 시간을 꽉 채운 특별하고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로켓처럼 빨리 깨달음을 얻고 싶어 맹렬히 수행한 지난 3년, 이제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도 수행임을 깨달은 원종선 님입니다. 법사가 되는 게 간절한 소망이라는 원종선 님은 백일 출가도, 행복본부 일도 하고 싶답니다.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원종선 님이 저지를(?) 멋진 활약을 기대하며 열렬히 응원합니다.
수행담 내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글_이혜정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금정지회)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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