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환갑의 백일출가,
'나를 넘어 세상'에 회향합니다

김영애 님은 2016년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해외 봉사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환갑을 맞이하여 미뤄왔던 꿈을 실현하는 준비 절차로 백일출가에 도전하였습니다. 눈물겨운 만 배 수행을 겨우 이겨냈지만, 삼십 년 경력의 주부임에도 공양간에서 깨어 있지 못해 공양주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300배 정진을 하며 수국 꽃에 사로잡힌 김영애 님의 마음 변화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어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돌이켜보면 나도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집이 강한 나를 보다

저는 어릴 때 엄한 엄마 밑에서 야단을 맞으며 눈치 보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주변 사람의 평가나 관계에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는 공부를 잘해 칭찬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20대에는 사회 변혁 운동에 관심 두고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초등학교 교사로 35년 재직하는 동안 자연스레 전교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교장·교감의 그릇된 관행과 교육 현장에서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편이며, 교장·교감·부장교사의 저에 대한 지적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혼도 불교 연합 동아리에서 잘 알던 선배와 하였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모습이 진솔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이미지가 와 닿았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 모습을 안 바꾸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 주고 무엇을 하든 맞춰주는 보살 같은 남편이었습니다. 남편과 30년을 함께 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전교조 활동은 물론이고 여행, 정토법당 다니는 일, 아이들 대안학교에 보내는 일, 농촌으로의 이사, 이 모두 제가 선택하였으며 남편은 그런 저를 기꺼이 받아주었습니다. 제가 권태에 빠지거나 힘들어할 때도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서 오히려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농사 일수행 중(왼쪽이 김영애 님)
▲ 농사 일수행 중(왼쪽이 김영애 님)

이러한 남편과 지내면서 저는 내가 잘 살고 있고, 내가 잘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이 마흔 넘어서는 소진되어서 힘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일한 대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 들어와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반복되면서 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저의 내면을 보았습니다. ‘내가 옳고 내 뜻대로 해야 한다’라는 아집이 강한 저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피어난 해외 봉사의 꿈

2016년 인도 성지순례에 참여했습니다. 둥게스와리 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아이들을 만나러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습니다. 친정엄마가 80세를 넘기면서 많이 아팠고, 저는 5년 정도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을 돌보느라 주말에는 제천에서 친정이 있는 의정부까지 오가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91세 때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1년 뒤 5~6년간 병환으로 고생하시던 엄마는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수련원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영애 님)
▲ 수련원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영애 님)

우리 5남매가 한마음으로 의논하며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아서인지 마치 하늘에서 부모님이 웃으시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듯하였습니다. 5남매의 우애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아이들도 다 커서 서울에서 자립했고, 저의 의무감도 덜어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러자 절대 빈곤에 처한 해외 어린이들이 떠올랐습니다. 해외 봉사에 대해 막연했던 생각을 머릿속에서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나이 환갑이고 그동안 딸로서, 부모로서, 아내로서, 교사로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JTS 봉사를 생각해 보았으나, 정토법당에서 오랫동안 대중 활동을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관점이 부족하고 또한 수행공동체 생활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9일 문경살이로 시험을 해야 하나?’라는 궁리 끝에, 일단 용기를 내어 JTS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해외 봉사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문의하였습니다. 며칠 후에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백일출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배의 고비를 넘으니 틈만 나면 일어나는 ‘분별심’

솔직히 만 배 할 걸 생각하면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해!’하는 오기가 생겨 결국 49기 백일출가 신청서를 냈으며, 35년간 다닌 직장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였습니다.

백일출가의 첫날, 만 배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첫날 3500배의 후유증으로 이틀째부터 무릎과 발목이 너무 아파 절하는 동안에 겨우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만 배가 끝난 후, 49기 다른 행자님들은 저의 흐트러진 절 자세와 이틀째부터 제가 통곡하듯이 우는 소리를 듣고 제가 통과하지 못할 줄 알았나 봅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나이 환갑에 통과한 것이 대단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들 또한 모두 힘들었을 텐데 제 엄살이 좀 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쉴 틈이 없었습니다. 새벽 예불, 발우공양, 생활 소임, 일 수행 등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왜 이 닦을 시간을 안 주는 거야’ 하는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또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스태프로부터 “일 수행 중에는 사담하지 않습니다.” 하는 경고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수련원에서(맨 앞이 김영애 님)
▲ 수련원에서(맨 앞이 김영애 님)

눈물의 공양간에서 돌이키는 내 업식

아침 발우공양 때 김치 담당이었던 저는 30년 주부 경력으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양주는 3~4일이 지나도 제가 하는 일이 마뜩잖은지 직접 시범을 보였습니다. 김치 포기를 잘라 배춧잎을 하나하나 예쁘게 다시 쌓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태프에게 더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김치에 이렇게까지 모양을 내야 하나?’라는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또 점심 공양으로 비빔국수를 만드는데, 저는 평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삶은 국수에다 채소와 양념 초장을 넣어버렸습니다. 순간, 공양주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다 한 음식을 망치세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양념, 국수, 채소를 따로 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공양간은 저의 소중한 수행 공간이었습니다.

낮 동안 수행하며 들었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양주, 스태프, 반장한테 지적받았을 때의 제 마음을 꺼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듯, 백일출가 수행 내내 저에 대한 시정 요청을 지적과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제 업식을 보았습니다.

수련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애 님)
▲ 수련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애 님)

수국 꽃에 사로잡힌 나를 통해 60년을 돌이키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끝난 지 며칠 뒤였습니다. 아침 예불을 하고 있는데 불전 위 화분의 수국들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 발우공양 담당이라 일찍 나오는 길에 반장에게 꽃이 시들어 물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불이 끝나고 불전에 올린 청수를 줄 요량이었습니다. 그 후 잠시 잊고 있다가, 점심 공양과 설거지를 급히 마친 후 300배 정진을 하려고 대웅전에 올라가 보니 수국 꽃이 더 시들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300배 정진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들어진 수국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정진 후에는 바빠서 다시 올라올 틈이 없는데 어쩌나……’ 이런 생각 끝에 물을 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해우소에 볼일 보러 갔다가 오는 길에 청소용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서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져 절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정진을 마친 후, 스태프에게 수국에 물을 주었다고 반장에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태프는 대뜸 “누가 정진 중간에 본인 소임도 아닌데, 화분에 물을 주라고 했느냐!”라고 정색하며 저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수국이 죽어 가는데도 스태프가 아직 어려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마음 나누기 시간에 그 일에 대한 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며칠 후였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었던 불교대학 수행 과제가 있었습니다. 도반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고칠 점을 선물로 받아오는 과제였습니다. 저는 정정당 마당에서 함께 일 수행을 하는 도반에게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행자님은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 말이 안 들리고 아무것도 안 보셔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시든 꽃에 사로잡혀서 함께 정진하는 사람들도 보지 못하고 스태프의 말에도 분별심을 일으켰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을 떠서 밖에 두었다가 정진이 끝나고 나서 주면 될 것을 그만 시든 수국에 집착한 나머지 도반들이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 내가 60여 년 동안을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사로잡혀 살아왔구나!’ 이러한 깨달음 끝에 저에게 선물을 준 도반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백일출가 동안 여러 경계에 부딪히며 저를 돌이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순간순간 올라오는 마음에 깨어 있지 못하고 내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아내지 못하는 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상황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제 모습을 알았습니다. 또 일체의 장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지 못하고 저의 주관대로 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간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저의 기준이나 잣대에 사로잡혀 ‘내 생각이 옳아. 그들은 틀렸어.’ 하고 얼마나 고집해 왔는지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쓴 채 옳으니 그른지를 논하며 살아온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필리핀에서 봉사 중에(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영애 님)
▲ 필리핀에서 봉사 중에(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영애 님)

백일출가에서 민다나오로 이어가는 수행,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

백일출가를 마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애당초 해외 봉사를 염두에 두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봅니다. 해외 봉사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 생애에 백일출가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벌어지는 마음의 출렁거림에 집중할 기회를 언제 가져볼 수 있을까요? 백일 동안 깨어있는 의식으로 ‘나를 살피는 연습’을 하고 나니 조금은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백일출가 전, 인도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아이들과의 생활을 꿈꾸었던 저를 돌아봅니다. 또 JTS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회계일, 하지 못하는 영어, 지적을 받아내지 못하는 제 업식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던 과정들을 돌이켜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지금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회계 소임을 해내며 잘 쓰이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더욱이 저를 이해해 주는 남편 덕분에 해외 봉사의 꿈을 실현하고 있으니, 이 봉사가 마무리되어 귀국한 후에도 남편의 뜻과 맞추면서 JTS 자원봉사자로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정한 아침 기도문 ‘나와 다른 이를 보며 일어나는 부정적 마음에 깨어서 그를 이해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갖겠습니다.’ 이 기도문으로 꾸준히 정진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가치나 기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옳고 그는 틀렸어’라는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또 그들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저를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내 기준은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야!’하며 사로잡힌 저의 분별심을 알아차립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 있구나!’, ‘내가 이런 것을 힘들어하는구나!’ 백일출가에서 터득한 이 깨달음을 통해 이제 ‘나를 넘어 세상’에 회향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반들과(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영애 님)
▲ 도반들과(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영애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6년 2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_김영애(49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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