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오늘은 지난 2-1차 회향식에서 정토포교상을 받은 유주영 님의 수행담입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십수 년 간을 함께 번역 봉사를 해온 도반들과 지난 3년간 국제지부 콘텐츠국에서 봉사해 주신 모든 분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며 그 공을 도반들에게 돌렸습니다. 워싱턴정토회 총무, 번역팀장, 미국 JTS 팀장, 콘텐츠 국장, 바라지 팀장, 북미유럽지회 지회장 등 수많은 소임을 맡고도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유주영 님의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보겠습니다.
배가 고파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절을 했습니다. 하다가 지치면 쓰러져 잠들었고, 일어나면 다시 했습니다. 쉴 새 없이 절을 하다 보니 발목과 등, 목까지 온몸이 아팠습니다. 손톱도 깎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면서 온갖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힘들어 내일은 포기해야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절을 했습니다. 마음의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3,000배를 100일 동안 했습니다.

미국 정착 생활을 하던 중, 2008년 남편 사업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낯선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사업이 무산되었습니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은 천 길 낭떠러지로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극도의 불안으로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습니다. 그때 엄마의 권유로 오로지 부처님에게 의존하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시작한 삼천배 기도였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삼천배 기도만 안 해도 삶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100일을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기도를 끝냈을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더 이상 불면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을 괴롭히던 통증들마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부처님께 무언가를 바라며 시작한 기도였지만, 의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려는 힘이 생겼습니다. 백일기도를 마치자마자 워싱턴정토회에서 대중공양으로 백일기도를 회향했습니다.
정토회는 대학 시절에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2월에야 비로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어 6월에 천일결사 입재하고 11월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게, 소임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반들과 화합하며 일을 잘해보려 애썼지만 다른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업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갈등이 풀리지 않아 정토회를 떠날 결심도 했었습니다. 다행히 도반들과 깊은 나누기를 하며 오해를 풀고 지금까지 수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쉽게 상처받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네 남매의 맏이로 책임감이 강했고, 엄마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마음 한편이 늘 무거웠습니다. 남편을 외교관으로 둔 엄마는 외국에 나가 살면서 가까운 친구가 없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제가 친구였고,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을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후에도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마음이 좀 편해졌을 때 엄마에게 어릴 적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지금은 괜찮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네가 힘들었니?” 하며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순간 저는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저 한마디를 바랐습니다. “네가 그랬구나, 그때 힘들었구나”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엄마가 나를 받아줘야지, 왜 내가 엄마를 받아주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수행과 〈나눔의 장〉 등을 통해 제가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로 인해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최선을 다해 우리 네 남매를 키운 것은 당연하고, 내 마음을 안 받아주고,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괴로웠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엄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2년 전, 여든이 되던 해에 미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평생 자기 뜻이 분명하고 고집이 셌던 분인데, 이제는 순한 아이처럼 제가 하자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한편으론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도합니다. 엄마 덕분에 불법 만나 이렇게 수행자로 살아가며 세계전법에 이바지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워싱턴 법당 초기에는 스님의 책이나 법문 영상이 영어로 번역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번역 봉사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육아와 가사, 직장 일, 그리고 정토회 총무 소임까지 맡고 있어 번역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경전과 법문 번역은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전과 법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저는 이해가 부족해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번역한 것을 다시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번역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법문을 이해하는 깊이가 아직 부족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돌이키고 참회하다'에서 ‘돌이키다’는 처음에는 'reflect on'이나 'look back on'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단순히 ‘되돌아보다’라는 의미에 머문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번역을 시작한 지 10년쯤 지난 후에야, ‘돌이키다’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 인식 상의 오류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acknowledge the error in my perception'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부터 시작해서,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며칠씩 씨름했습니다. 실제 영어권 사람들이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끊임없이 확인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법문을 열 번 들어도 그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저 자신이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역하는 모든 과정이 수행이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6년, 한국에서 스님을 모시고 해외 활동가 수련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세계전법을 위해 영어 불교대학을 개설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먼저, 2019년부터 영어 불교대학 기획팀에서 스님의 수많은 법문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필요한 내용을 교리별·주제별로 나누어 정토담마스쿨 1 (근본불교) 교과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법문 영상 번역이 다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2022년 3월에 불교대학을 개설하였고 87명의 영어권 학생이 입학해서 71명이 5개월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매주 필요한 진행자 멘트와 법문을 허겁지겁 번역하며 정말 아슬아슬하게 불교대학 1기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이후 바로 국제지부 영어 번역팀은 정토담마스쿨 2(인간 붓다) 교재와 법문 번역을 진행하여 2023년 9월에 개설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근본불교 9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일어, 불어, 독어 정토담마스쿨도 개설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소수의 한국어권 봉사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어,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학생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하면 이들을 정토행자로 양성해, 이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이끌게 하면 된다. 그렇게 각 나라에서 배출한 정토행자들이 전법을 이어가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는 그때까지 이 사람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왔지만, 돌아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수행이 해외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고뇌를 안고 살아갑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과 갈등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 수행과 봉사를 통해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집니다.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기 수년 전, 천일결사에 입재한 아일랜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정토회가 없어 그분은 천일결사 입재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건너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입재식은 한국어로 진행되었지만, 그분은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손에는 저희가 번역한 《Prayer(기도)》가 들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어 사이트에 천일결사 기도 음원이 올라가 있어 외국인도 쉽게 따라 수행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영어 자료가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그분은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기도하고 절을 하며 수행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행담을 발표하던 그분의 모습을 보며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토담마스쿨을 이어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점점 더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 중에는 몇 해 전 어린 아들을 잃은 분도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누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큰 상처였을 아픔이었지만, 차분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 슬픔을 지나온 듯했습니다. 그때 제가 번역한 스님의 법문이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포교 활동을 하며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2022년, 13년간의 노력 끝에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던 순간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것은 2차 만일결사의 목표인 세계전법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준비된 자료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지부에서는 모든 내용을 현지 정서와 언어에 맞게 새로 번역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자료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에, 세계전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처럼 큰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 국제특별지부에는 54명의 현지어권 정토회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수많은 봉사자의 정성으로 수행자 길을 걷고 있는 소중한 도반들입니다. 앞으로 세계 전법의 주체로 성장해 갈 이들과 함께 오늘도 묵묵히 세계전법의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나와 함께 가는 도반들이 모두 세상의 희망입니다.”

유주영 님과의 대화 속에서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용성기념관 도슨트(전시물 해설사) 소임을 맡아 용성 조사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사님께서는 어려운 한문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백성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유주영 님이 하고 계신 일이 용성 조사님께서 하신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주영 님이 번역한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는, 세계 속 수많은 외국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글_배병갑 희망리포터(경남지부 거제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6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평정심을 유지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