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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수도권 생활 쓰레기 직매립 금지로 서울의 쓰레기가 지방으로 유입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후 부모님, 언니, 형부, 조카들뿐 아니라 친척들도 많이 살고 있는 제 고향에 매립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환경 문제, 쓰레기 문제가 세상의 일만이 아닌, 나와 우리 가족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환경 문제에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2025년 정토행자 환경상을 받은 환경 실천의 달인인 반청 님을 인터뷰하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있던 저는 반청 님의 활동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절망에서 희망, 지금 시작합니다.

제가 만든 음식은 국물까지 다 먹습니다. 김칫국물도 최대한 먹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없습니다. 재료 손질하며 나오는 것은 땅에 묻습니다. 손질 후 냉장고에 들어간 것은 다 먹는다는 주의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를 통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고, 일주일 동안 쓰레기의 배출량을 확인하는 실천 활동을 통해 더욱더 심각성을 인식하였습니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쓰레기 줍기(줍깅)’를 시작했습니다. 행복시민들과 함께하면 즐거웠습니다.

매번 시민들과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아, 외출 전후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혼자 줍깅을 합니다. 혼자서 하니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지저분했던 곳이 깨끗해지면 제 마음도 깔끔해집니다. 운동도 하고 자연스럽게 좋은 일도 하게 되어, 제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가볍고 편안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통에 종량제 쓰레기 봉지와 장갑을 넣고 외출합니다. 다니면서 어디서든 줍깅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가서도 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이어왔기에 환경 실천이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자발적으로 하니 보니 저 스스로에게 뿌듯함과 만족감을 주는, 재미있는 취미가 되었습니다.

버린 사람들에게 미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머, 어떻게 이렇게 버리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저 역시 그런 생활을 했었기에 크게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버리면서 살았던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편의 정년 후 생활비가 60%로 줄었습니다. 퇴직 몇 년 전부터 줄여 쓰는 연습을 했지만, 여전히 습관대로 썼습니다. 여윳돈이 있으니 편하게 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덜 쓰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정토회의 소비 멈춤 실천단 활동을 신청했습니다. 휴대폰 앱으로 가계부를 작성하며 제가 어떤 소비를 하고 있는지 기록했습니다. 소비 내역을 보며 불필요한 지출을 확인했습니다. 막연히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천단 활동을 통해 무엇을 줄여야 할 지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회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각자의 소비 성향과 언제 소비 욕구를 느끼는지, 소비할 때 마음은 어떤지 등을 돌아보며 마음공부도 했습니다.

마트에서 나오자마자 차 안에서 지출 내용을 바로 작성했습니다. 앱을 통해 그달의 수입과 지출 항목을 확인하고, 소비할 때마다 '제대로 한 소비인가? 불필요한 건 아니었나?' 되돌아보며 생활했습니다. 소비 멈춤 활동 전에도 불필요한 소비는 거의 없이 지냈지만, 활동을 한 후로는 지출 시 한 번 더 생각했고, 줄여진 생활비로도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넉넉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비 멈춤 실천단 활동으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평소 사치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가끔 새 옷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시민모임의 아나바다 장터에서 깨끗하고 좋은 옷들을 보고는 ‘이런 옷들이 있는데 굳이 새 옷을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천 원, 많아야 3천 원에서 5천 원, 비싸도 1만 원 정도였습니다. 한두 벌 정도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나바나에서도 구매하지 않습니다.
처음 옷을 사지 않기로 했을 때는 단순히 지출이 줄어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디자인부터 소재, 색감까지 고민하며 인터넷이나 매장을 뒤지던 그 수많은 과정이 얼마나 큰 정신적 소모였는지, 사지 않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옷을 몸에 꼭 맞게 입는 성향이라, 옷을 사고 나서도 수선을 맡기고 찾는 일 또한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쇼윈도 자체를 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저 보이는 것만 볼 뿐입니다. 옷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싹 사라졌습니다. 옷에 대한 관심 자체가 끊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옷을 사지 않다 보니 다른 것들도 자연스럽게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웃들이 집이나 창고를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을 보아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구매 욕구가 사라지면서 돈과 시간이 절약되고, 삶이 이전보다 훨씬 단순하고 평온해졌습니다. 그만큼 삶에 여유도 생겼습니다.
옷을 만들어본 적도 없고 수선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딸이 손재봉틀을 선물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연습하다 처음에는 어려워 포기했습니다. 몇 달 후 다시 도전했습니다. 실 꿰는 법을 익힌 뒤 드르륵 재봉틀로 박았습니다. 제가 옷을 사지 않는다는 걸 아는 주변 분들이 옷을 나눠주어, 재봉틀로 제 몸에 딱 맞게 고쳐 입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서 보내준 옷이 너무 많아 남편이 버리라고 합니다. 평생 사지 않을 것이라 안 된다고 했습니다. 수선하는 일이 점점 재밌습니다. 이제는 새 옷을 사 입는 기쁨도 잊었습니다. 딸에게 옷을 얻기도 합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제가 해줬는데, 이제는 자녀들에게 물려받으니 이 또한 재미있습니다.

행복시민들과 해양 쓰레기 줍기를 했습니다. 어부들이 쓰던 기구들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단순히 쓰레기 줍기를 넘어 버리지 않거나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라스틱 안 쓰기 캠페인 활동을 하면서 영상을 찾아 학습했습니다. 감상평도 같이 나누고, 일주일 단위로 쓰레기 양을 확인하며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나부터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 혼자 쓰레기 조금 줍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라는 생각도 있겠지만, 크게 바라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만큼은 줄어드니, 그것이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며 저부터 실천했습니다. 쉬운 것부터 했습니다. 채소 살 때 종량제 쓰레기 봉지를 가져갔습니다. 튼튼해서 여러 번 쓸 수 있고, 더러워지면 쓰레기 봉지로 활용했습니다.

정토회 참여 활동으로 제가 한 활동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한 줄만 써도 된다고 해 부담 없이 했습니다. 제 생활이 공개되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해소되었습니다. 누구나 알아도 괜찮은 내용만 올리기로 스스로 기준을 정했습니다. '어디 다녀오면서 쓰레기를 주웠어요'라고 가볍게 기록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볍게 했기에 편안한 마음이었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지구가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배움을 통해 알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재미있어서 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열심히 하라고 했으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볍게 실천하는 것이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년, 지인의 권유로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듣다가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던 중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집에는 재산압류 경고장까지 날아왔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고, 그대로 안고 살기에는 더욱 버거웠던 저는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후 스님과 상담하며 아이는 무조건 제가 키우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네 살, 다섯 살 아이들과 살아가기 위해 무일푼으로 친정에 들어갔습니다. 상근직보다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학교 급식실 조리원과 페인트공 일을 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겐 도반들이 최고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법당에 가면 말없이 함께 놀아주고, 제 힘든 마음도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문경 입재식에서 도반들과 아이들과 함께 먹던 비빔밥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도반들이 최고의 위안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고, 여수로 이사한 뒤 다시 법당에 나갔습니다. 제게 부총무 소임을 맡겼습니다. 생업이 있어 일일 봉사만 간간이 하던 제게 너무 큰 소임이었습니다. 솔직히 부담스럽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부총무 소임을 할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정토회 일을 직장 생활보다 더 열심히 하는 저를 못마땅해했습니다. 부총무 일도 힘들고, 남편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아침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결국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건 수행"이라는 것을.
남편은 정토회 일로 자주 늦게 귀가하는 제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만이 쌓여있던 어느 날, 남편은 개인적인 문제로 화를 내며 제게 손찌검을 했습니다. 저는 짐을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남편은 저를 찾아와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저는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어떻게 해야 돌아오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이 떠올랐고, 저는 그곳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깨장을 다녀온 뒤부터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예전에는 집안 분위기가 어두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엄마가 우리 집에 평화를 가져다주셨어요."
3년간의 부총무 소임을 마친 후에는 행복학교를 진행했고, 지금은 지회에서 수행과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제 인생의 굽이굽이 힘든 순간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환경 인터뷰를 마치며 반청 님의 수행자로서의 내공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가볍게 했기에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는 말은 가벼우면서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무리하게 하지 않았다는 말에서는 욕심을 내려놓은 수행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했다는 말에서는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현명하고 강단 있는 모습으로 가정을 지켜낸 결과,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밝아지고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의 수행자가 세상을 얼마나 환하고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귀한 법을 들을 수 있는 우리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희망입니다.
글_김수경 희망리포터 (서제지부 송파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한국호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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