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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울 때, 윤은정 님은 문득 문경을 떠올렸고, 바라지장을 찾았습니다.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인지 어떤 소임도 기쁘고 재미있었고, 몸이 바쁘다 보니 미움이나 원망이 일어날 틈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고 정화되는 듯했다고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찾았던 문경에서, 잘 쓰이고 돌아올 때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편집자 역시 슬며시 바라지장 신청이 싶어집니다.

세상이,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궁금한 것들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불교대학 입학과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다녀온 인연으로 정토회 일원이 되었습니다. 제게 ‘깨장’은 깜깜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환희를 안겨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정성 가득한 공양이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 기억이 선명합니다.
5~6년간 불교대학 담당, 팀장으로 봉사하다 제 업식에 걸려 나자빠졌습니다. 신생 법당이라 소임이 많았고, 불교대학 학생들이 저를 수행자로 우러러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점점 소임이 무거워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남편이 실직하자 그 핑계로 도망쳤습니다. ‘그래도 지금껏 배웠는데 기본이야 하겠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사정없이 한 대 맞았습니다. 미움과 원망이 극에 달해 그 칼끝이 저를 향했고,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댔지만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졌습니다.
괴로움으로 당장 죽을 것만 같던 그때, 문득 떠오른 문경! 괴로움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그 청정한 곳을 찾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문경은 따스하게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준비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채개장에 들어갈 고사리는 줄을 세워 같은 크기로 자르고, 숙주나물은 녹두 껍질이 한 알이라도 들어갈세라 아기 다루듯 씻었으며, 사과를 반쪽씩 썰 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집에서는 일하기 싫어 주리를 틀었는데,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인지 어떤 소임도 기쁘고 재미있었습니다. 잡초를 뽑을 땐 속 시원함과 짜릿함이 느껴졌고, 수련생들에게 주차 안내를 하면서 땡볕 아래 뛰어다녀도 그저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몸이 바쁘다 보니 남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일어날 틈이 없었고, 바쁠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정화되는 듯했습니다.

법사님과 문답 시간에는 괴로움을 호소하자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울 일이 아니고 로또 맞았네~한턱 쏴!” 딱 죽을 것만 같았는데 축하받고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니,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함께 활짝 웃었습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저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순간 이동한 것입니다. 바라지장 나누기도 ‘깨장’, ‘나눔의 장’처럼 수련 시간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술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정토회를 만났고, 10년이 훨씬 지나 남이 된 그 사람 덕분에 문경을 찾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미움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미쳐갔습니다. 남 일로만 여겨지던 일이 막상 내게 닥치니 어떤 말도 안 들리고 어떤 길도 안 떠오르고 제 생각에만 빠져들었습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불법을 모르던 때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수행을 놓쳐서 그렇다는 것을.

2주 후 다시 문경을 찾았습니다. 계획에 없었는데, 당장 와달라고 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여전히 허우적대며 휘청거리는 저를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말입니다. 힘들어 손을 내밀었고 여전히 붙잡고 의지하고 싶어 모든 일정을 미루고 달려갔습니다. 문경에 가겠다는 생각만 해도 죽비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듭니다. 보살행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그 청정한 곳에 민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가 봅니다.
7월에는 그저 ‘나’ 살기 위해 머물렀다면, 8월에는 ‘잘 쓰이기’ 위해 문경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그 속에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잊고 있던 수많은 인연의 사랑과 배려, 베풂이 떠오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숲은 깊고 짙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하고, 마음을 나누고 돌이킬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의 바라지는 저를 다시 살린 시간입니다. 앞으로도 이 마음 잊지 않고 지치고 힘들 때, 내 고향 문경의 그 길을 걸어가렵니다. 공양간의 푸근한 내음, 신선한 새벽 공기,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스러운 풍경, 그리고 도반들의 맑은 미소가 벌써 그립습니다.

글_윤은정 (부산울산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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