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함께 행복해지는 길, 보리수!

임지연 님은 평균보다 빠르게 결혼했지만, 6년이 넘도록 아이가 찾아오지 않아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방법을 알지 못했던 임지연 님은 깨장에 참여한 이후 괴로움 대신, 내려놓기를 선택합니다. 이후 기적처럼 임신이 되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정진을 이어가며, 서툰 것도 많았지만 점점 주인 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생각보다는 움직이기, 혼자보다 여럿이 힘을 합치기, 때로는 귀찮더라도 정진 이어가기 등을 통해 임지연 님의 마음은 따뜻함과 보람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임지연 님의 글을 통해, 행복은 우리의 선택임을 또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이제 그만하자, 그만하고 싶다!'

남편이 장남이라 시부모님은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다섯, 조금은 이른 나이였는데 결혼하고 6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보다 늦게 결혼한 시동생들이 먼저 아기를 셋이나 낳았습니다. 우리는 병원에 다녔으나 임신이 되지 않았고, 맏이라는 부담감에다 동서들 임신 소식까지 듣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시부모님은 신경 쓰지 말라며 동서들 임신 사실을 숨겼고, 막달이 되어서야 알고는 혼자만 몰랐다는 것이 상처가 되어 점점 쌓였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저를 배려했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콩밭 김매기 중에(뒷줄 맨 오른쪽이 임혜진 님)
▲ 콩밭 김매기 중에(뒷줄 맨 오른쪽이 임혜진 님)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인공수정도 하고 시험관 시술도 했습니다. 임신에 효과 있다는 약도 먹으면서 좋다는 것은 모두 했습니다. 매달 임신 여부를 테스트하고 실패하고, 또 테스트하고 확인하면서 6년 동안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만하고 싶다, 이제 그만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해온 습관 때문인지 혹시나 하면서 다시 임신 테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이런 법문을 하는 스님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곳은 정토회라는 단체였습니다. 김해에는 법당이 없었고 7~8명이 가정집에 모여 법회를 하는 가정 법회 안내를 받았습니다. 법회 후 법문 들은 소감을 간단하게 얘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거실에 빙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처음 왔는데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힘들어서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말하려니 마음속에 꽉 차 있던 것들이 그냥 울음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등을 두드려주면서 가만히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잘 왔다고 하며 3월에 시작하는 불교대학을 권유했고, 저는 망설임 없이 입학했습니다. 제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 참여를 권하기에 뭔지 잘 몰랐지만 곧바로 '깨장'에 갔습니다.

배추 수확 중에(오른쪽이 임혜진 님)
▲ 배추 수확 중에(오른쪽이 임혜진 님)

생겨도 좋고, 안 생겨도 좋은 거구나!

'깨장'에 다녀온 후 해운대 법당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앞 차례 질문자가 결혼 후 아이가 안 생긴다고 제가 준비한 내용과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는 10년이 넘으니 상처가 되어 TV에서 아이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동네에서도 아이를 보면 피한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느냐, 마음을 그렇게 가지면 안 된다"라는 내용의 법문을 한참 하셨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내가 여태 아이가 안 생긴 게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마음이 좋을 때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내가 옳다는 주장이 강하고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려는 못된 성격 때문입니다. 이런 성향으로 아이를 낳아 길렀다면 아이도 내가 휘어잡고 내 맘대로 키웠을 것 같아 아이가 안 생긴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스님께 질문했더니 병원에 가봤느냐고 했습니다. 가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고 하니까 스님이 "아기가 생기면 생겨서 좋은 거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 게 나한테 좋은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이가 안 생겨도 좋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마음속 숙제가 확 풀렸습니다. 그날 임신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더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생기면 생겨서 좋은 거고, 안 생기면 안 생겨서 좋은 거구나!' 하니 집착이 저절로 놓아졌습니다. 그러고는 신기하게도 그다음 달에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3월에 불교대학 입학하고, 4월에 '깨장' 다녀오고 5월에 임신이 되었습니다. 5월 5일 거리 모금을 하던 어린이날, 선물처럼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임신입니다!"라는 의사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병원 복도에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기쁨인지 회한인지 모를 눈물을 우리는 한동안 훔쳐내야만 했습니다.

아도모례원 마당 잡초 제거 중에
▲ 아도모례원 마당 잡초 제거 중에

보리수 정진으로 주인이 되다.

임신한 몸으로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김해 법당 불사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뱃속 아이와 도반들과 함께하는 봉사는 힘든 줄 모르게 즐거웠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봉사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법당에서는 봉사를 못하고 으뜸절 아도모례원에서 매주 목요일에 마당 쓸기, 풀 뽑기 등 도량 관리를 했습니다. 요일 봉사 꼭지 소임을 맡았는데 봉사자 모집이 어려웠습니다. 으뜸절에 혼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함께 봉사할 사람들을 직접 모집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한 분을 모시고 갔다가 두 분을 모시고 가기도 하고 또 혼자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으뜸절에 가기 전에 도반들에게 "이번 주에 같이 가요"하고 전화를 돌리면 거리가 멀다고 모두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중 보리수 교육 안내를 받고는 아도모례원 봉사자들과 함께 보리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보리수에서 봉사자 교육을 받으니, 힘이 실렸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주인의식이 생겼습니다. 아도모례원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한 곳이 눈에 들어오면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해야지' 하는 주인 된 마음이 생겨서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봉사자 모집 전화를 해도 내가 주인 된 마음으로 하니 상대가 거절해도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아도모례원에서 곶감을 끼워 널던 중에(왼쪽에서 두 번째가 임혜진 님)
▲ 아도모례원에서 곶감을 끼워 널던 중에(왼쪽에서 두 번째가 임혜진 님)

힐링하러 가는 날

보리수 교육을 받고 아도모례원에서 봉사하면서 내가 평소 생각이 많고 몸 쓰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마치고 소파에서 쉬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만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없습니다.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면 '도대체 오늘 뭘 했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간만 보낸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반면에 아도모례원에서 마당을 쓸면 복잡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저 감잎을 얼른 쓸어치워서 깨끗하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뿐입니다. 풀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풀만 뽑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쓸고 뽑기만 하니까 생각이 끊어지고, 생각이 딱 끊어지니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봉사하러 가는 날은 나를 위한 힐링의 날입니다.

보리수 100일 정진 덕분에 도반들에게 많이 배우고 서로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일수행을 하면서 도반이 힘들 것 같으면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함께 콩밭을 매면서 그늘에서 하도록 챙겨주고, 어려운 일은 서로 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하는 도반들의 모습을 본받으며 배우고 있습니다. 도반의 모습이 저한테 큰 변화를 불러왔고 더불어 도반도 변하는 모습을 보니 내 일처럼 기뻤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도반입니다'라는 명심문을 예전에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보리수 활동을 하면서 도반이 전부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봉사하면서 생겨난 도반애로 이제는 소속 지회 상관없이 같은 보리수라는 이유만으로도 만나면 반갑습니다.

아도모례원에서 휴식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혜진 님)
▲ 아도모례원에서 휴식 중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혜진 님)

금요일의 선물 상자, 보리수

일수행은 목요일 낮에 했지만, 보리수 정진은 금요일 저녁에 진행합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은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여유롭게 가족과 외식도 하면서 불금을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리수 교육으로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못 하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2박 3일 여행도 가고 싶은데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100일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며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왜 하필 금요일 저녁이야?'라며 불만스러웠으나 보리수 교육 내용은 정성이 가득한 선물 상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100일이 200일이 되고 300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가족들도 금요일 저녁은 '보리수 회의하는 날'이라고 인정해 주고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 역시 금요일 저녁에는 우리 반가운 보리수 도반들과 만나는 날이라 기분 좋게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배려해 주는 남편과 딸 덕분에 금요일 저녁이 참 행복합니다.

아도모례원 마당에서 감잎 쓸기 중에
▲ 아도모례원 마당에서 감잎 쓸기 중에

최근 8·15 광복절 행사를 하면서 60명의 아침 공양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보리수 도반 세 명이 책임을 맡아 새벽부터 시작해 적은 인원이지만 거뜬히 준비를 마쳤습니다. 보리수들이 똘똘 뭉치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도모례원이 청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면 보리수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동안 내가 꾸준히 해온 게 딱히 없었는데 아도모례원 봉사는 3년째 꾸준히 하고 있으니 이게 다 보리수 덕분입니다. 집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인데도 이제는 익숙한 길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리수를 통해 쓰이는 연습을 해온 공덕으로, 이번 여름 명상 바라지에서도 보름 동안 잘 쓰여서 즐겁고 뿌듯했습니다. 다른 바라지들이 도대체 보리수에서 어떤 교육을 받길래 저렇게 힘든데도 웃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보리수 교육을 꼭 받아보라며, 정말 추천한다"라고 했습니다. 보리수 일원으로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모두 보리수가 되어 함께 정진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0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임지연(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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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고맙습니다.

2026-05-11 07: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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