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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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삶? 잘사는 삶!

잘사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김동현 님은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삶'이 그것이고, 내 욕구를 최대한 누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욕구의 주인'이 되어 보기 위해 백일출가를 하였습니다. 만 배를 무사히 마치고 밭 비닐 제거 사건, 공양간 밥 사건 등을 겪으면서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지만 오히려 머리만으로 하던 마음공부를 실제로 해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동현 님은 과연 '잘사는 삶'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씨앗심기 일수행 중(김동현 님)
▲ 씨앗심기 일수행 중(김동현 님)

잘사는 삶이란 뭘까

“공부가 인생의 전부야.” “공부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해.” “고등학교 3년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해 봐.” 공부가 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나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성적 비관으로 우울증까지 겪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을 돌아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뉴스에서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다. 뉴스 댓글에는 죽은 학생들이 원래 정신이 나약했다든가, 공부가 아니었어도 다른 이유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란 악플이 달렸다. 학업 성적으로 고민이 많던 나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혹시 나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막하고 절망스러웠다. 공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부모님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교육을 탓했다. 탓하는 삶이 무척 괴로웠고, 그렇지만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다.

내가 이토록 괴로운 이유는 남이 하라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나는 스스로 결정한 대로 살았다.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했으며, 재미있게 일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부족함 없이 돈을 벌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내면 깊은 곳에서 공허감의 원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만약 내 앞에 고등학생인 내가 있다면,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잊고 있던 오랜 화두였다. 내 안에는 고등학생 때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퇴사한 뒤 과거 나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했다. ‘내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삶’이야말로 잘사는 삶이라 생각했다. 내 재능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심리 진단 도구인 ‘강점검사’를 알고는 강점검사를 바탕으로 내 재능을 탐구하면서 강점 전문가 과정을 듣고 사람들에게 강점을 찾아주는 코치로 활동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잘사는 삶에 대한 탐구도 이어나갔다.

정화조 청소 일수행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동현 님)
▲ 정화조 청소 일수행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동현 님)

내 인생의 주인인 삶?

우연히 동네 뒷산 입구에 붙어 있던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고,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면서 백일출가도 알게 되었다. 백일출가 포스터에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에게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말은 ‘내 욕구의 주인’을 의미했다. 내가 추구하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삶’에서 ‘재능’에는 감정이 뒤따른다. 재능을 따르면 긍정적 기분이 따르고, 재능을 거스르면 부정적 기분이 따른다. 즉, 내가 추구하던 삶은 ‘내 욕구를 따르는 욕구의 노예 같은 삶’에 가깝다. “욕구를 따라야 기분이 좋고 행복한 것 아닌가?” 욕구를 최대한 누리는 것이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구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 길이 정말 행복한 삶인지, 지속 가능한 삶인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욕구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 이것이 내가 백일출가를 결심한 이유였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첫 관문, 만 배

만 배를 시작하고 1000배가 넘어가면서 오른쪽 무릎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하기 싫어도 하기로 했으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절을 하자 통증은 곧 사라졌고 자신감이 올라왔다. 그런데 1500배를 넘길 즈음, 오른쪽 무릎에 큰 통증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아야!”하고 소리를 냈다. 마음속으로 ‘이러다가 진짜 못 걷는 거 아니야? 그만 포기하자. 그깟 만 배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절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반쯤 포기한 상태로 첫째 날이 지나갔고, 다음 날 유수 스님의 격려 편지를 들었다. 유수 스님은 “만 배를 하지 말고, 한 배만 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음이 왔다. ‘내가 만 배를 하려고 해서 힘들었구나.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한 배일 뿐인데.’

만 배를 언제 다 하나 싶은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엎드린 몸은 어떻게든 일으킬 것 같았다. 그건 언제든 한 배는 할 수 있다는 뜻이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만 배도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만 배는 육체적 한계보다 내 마음의 문제임을 자각했다. ‘다리가 안 되면 손을 짚어서 일어나고, 손이 안 되면 머리로 박고 일어나면 돼. 내 몸이 어떻게 되든 만 배를 해내고 만다!’ 죽을 각오로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주인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을 넘겼다.

밭갈기 일수행 중에(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 밭갈기 일수행 중에(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몸이 아픈데 왜 괴롭습니까?

만 배가 끝나고 각종 후유증을 겪었다. 무릎 통증, 허리 통증, 8000배 이상을 팔로 절을 하다 보니 체중을 고스란히 지탱한 손꿈치와 어깨에도 통증이 왔다. 만 배 이후에도 매일 계속된 300배 개인 정진과 좌식 생활로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수련이 시작되고 법사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괴롭냐?”고 질문하셨다. 나는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괴롭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법사님은 “몸이 아픈데 왜 괴롭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몸이 아프니까 당연히 괴롭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법사님은 또 “몸이 아픈데 왜 괴롭습니까?”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셨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몸이 아프면 괴롭다’라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명제에 ‘왜?’ 라고 붙이니 당혹스러웠다. 계속 생각해봐도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밭 비닐 제거 작업을 할 때였다. 나는 법사님과 2인 1조가 되어 움직였다. 법사님이 호미로 땅을 파면 내가 앞에서 비닐을 당기는 식으로 작업했다. 어떤 구간은 비닐이 잘 벗겨졌지만, 어떤 구간은 비닐이 땅속 깊이 묻혀 있어서 당기면 딸려 나오지 못하고 뚝 끊어졌다. 법사님은 나에게 비닐을 당기라고 하셨다. 하지만 비닐이 얼마 못 가 끊어져 버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직 제거할 비닐이 한참 남았는데, 계속 끊어지니까 일 속도가 안 나오네. 비닐을 왜 이렇게 깊이 심어놓은 거야!’ 나는 속으로 투덜대고 있다가 법사님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법사님 얼굴은 짜증 나는 기색이 하나 없었다. 법사님은 비닐이 끊어지면 다시 땅을 팠고, 또 끊어지면 다시 땅을 팠다. 그저 묵묵히 호미질을 계속할 뿐이었다. 나는 그저 평온한 법사님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나와 법사님의 차이가 뭐지?

‘나는 왜 짜증이 날까? 비닐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비닐이 잘 벗겨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건가? 법사님은 그런 기대가 없어서 짜증을 내지 않으시는 건가?’ 비닐이 잘 벗겨지길 기대해도 이미 땅속 깊이 묻힌 비닐이 위로 올라오는 것도 아닌데, 기대해 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혼자 괴로움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번뜩 한 생각이 스쳤다. ‘몸이 아픈데 괴로운 이유가 기대 때문인가?’ 몸이 아프지 않기를 기대했으나 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괴로웠다. 좋지 못한 자세로 만 배를 했으니 아픈 건 당연한 이치였다. 아프지 않길 바라는 건 허황된 욕심이었다. ‘몸이 아파도 마음은 괴롭지 않을 수 있다.’ 이후 이 문장은 내 수행 과제가 되었다.

공양간에서(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 공양간에서(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셀프 가스라이팅

주방에서 칼 한 번 제대로 안 잡아본 내가 얼떨결에 공양간 소임을 맡았다. 공양간에서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발우공양 준비를 할 때였다. 나는 주로 밥과 국을 맡았는데, 같이 하던 도반이 밥솥을 열어보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김동현 행자님… 밥이 하나도 안됐는데요?” 깜짝 놀라 밥솥 안을 들여다보니 물을 부은 그대로였다. 가스 밥솥을 사용하는데 가스 공급이 불안정했는지 불이 중간에 꺼진 것이다. 발우공양 시간은 다 됐고 올릴 밥은 없었다. 대형 사고였다. 나는 대중에게 상황을 알려 양해를 부탁드리고, 공양주님은 우리를 올려보내고 혼자서 뒷감당을 해내셨다. 대중과 법사님 약 서른 명이 30분가량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괜찮아요? 많이 놀랐겠어요…”라고 오히려 많은 분이 내 걱정을 해주셨다. 묘수 법사님은 우황청심환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분의 걱정과 달리 내 마음은 담담했다. 가스불을 잘 확인해야 한다는 인수인계는 애초에 내 머릿속에 없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가스불 확인은 안 할 것 같아서 후회는 없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지금 벌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몸이 이상하게 이쪽저쪽 아팠다. 머리가 아프고, 오른쪽 승모근이 자꾸 뭉쳤고, 음식은 먹는 대로 설사했다. 이런 나를 보고 도반들은 밥 사건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픈 거라고 했다. ‘아닌데? 그때 분명히 내 마음은 담담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데?’ 자신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약 2주일 후 비슷한 사고가 벌어졌다. 밥솥을 열어보니 이번엔 밥이 죽이 되어 있었다. 원인은 밥물 조절에 있었다. 불린 콩과 은행을 넣어 밥을 했는데, 여느 때와 같이 손을 담가서 물을 맞췄다. 불린 콩을 넣거나 적은 양의 쌀을 큰 밥솥에서 할 때는 물을 적게 잡아야 한다는 상식이 내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죽이 된 밥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내 마음은 크게 출렁이며 모두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상했다. 더 큰 사고를 쳤을 때는 담담하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마음이 출렁거릴까. 나는 내 마음을 돌이켜봤다. 나는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이 오면 갖은 수를 동원해 내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잖아’, ‘네가 이해해라’, 머리가 마음에게 이해를 강요했다. 당시에는 내 마음이 어찌어찌 설득당해 ‘그런가…?’ 하고 넘어가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이 난동을 부렸고, 그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두통, 오른쪽 승모근 경직, 소화 불량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체 증상이었다.

이 사건 이후 내 마음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폭주했다. 이전에 나누기를 할 때는 ‘담담하다’는 마음이 주를 이뤘다면, 이후에는 ‘불편하다’, ‘화가 난다’는 표현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네가 공양주님을 이해해야지’라며 묵살당하던 마음이 “공양주님의 말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로 바뀌었고, ‘좌식 생활로 몸이 아프지만 괴롭지 않을 수 있어. 네가 욕심을 부리니까 괴로운 거야’라고 덮어놓은 감정이 “좌식 생활로 다리가 아파서 불편하고 짜증이 납니다. 당장 회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로 변했다.

셀프 가스라이팅에 가려진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나누기가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은 후련함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내 마음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마음공부를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상대의 행동을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짜증이 났지만, 짜증이 난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면 머리로 이해를 강요하기만 했지, 진짜 내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이해는 반쪽짜리였다. 백일출가가 끝나갈 즈음에야 비로소 내 ‘꼬라지’를 마주해 아쉬웠지만, 늦게나마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제설 작업 중에(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 제설 작업 중에(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동현 님)

잘사는 삶이란 게 따로 없다

‘잘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본다. ‘만약 내 앞에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있다면,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나니 나는 고등학생인 나에게 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마음을 낸 그 순간,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일출가 수련을 통해 고집하는 나를 놓아보는 경험을 하면서 ‘나를 놓으면 어떤 걸림도 없고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무엇을 해도 상관없으니 남은 삶을 온전히 세상을 위해 바칠 수 있다’, ‘그렇게 산다면 진정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이 생각은 여태껏 살아온 가치관과 충돌하여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 욕구를 좇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 욕구를 좇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을지라도 괜찮다. 그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며 그 이치가 무엇인지 마음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은 이해하지 못함을 깨달으면서,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 나는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회향하고 여전히 여러 번뇌에 사로잡히고 있지만, 언젠간 다시 출가할 것 같다. 마음 깊이 삶의 방향이 강렬히 새겨진 것 같다.

욕구의 주인인 삶을 경험해 보겠다고 입방한 백일출가에서 ‘나는 욕구의 주인이 되어보았는가?’, ‘그 길은 정말 행복의 길인가?’, ‘잘사는 삶인가?’ 나에게 다시 질문해 본다. 잘사는 삶이란 ‘잘사는 삶이란 게 따로 없다는 걸 머리와 마음으로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사는 삶이 따로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내 욕구의 진짜 모습을 알아내 마음을 살피며 욕구의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 나아가 지혜의 눈이 떠져 세상에 잘 쓰이는 삶을 살고 싶다.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내가 받은 공덕을 세상에 회향하겠다는 마음, 세상의 괴로움을 다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내어본다. 마음을 낸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지금 마음 평온하고 감사하다.


글_김동현(백일출가 49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0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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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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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님, 글 고맙습니다. 수행과 삶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니 어리석었던 저의 청춘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5-04 08:44:51

진영자

만배를 하지 말고, 한배를 하세요.
마음에 담아갑니다.

2026-05-04 08:18:18

윤정환

멋지네요
마음이
잘 봤고 고맙습니다

2026-05-04 08: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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