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최창한 님은 깨달음의 장에서 풀리지 않은 세 가지 화두를 다시 풀고 싶어 백일출가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거라 생각한 만 배 정진부터 큰 위기가 찾아왔고, 급기야 '만 배까지만 하고 그만두자'라고 결심하기도 하였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여러 위기를 잘 넘기고, 49일 무렵에는 한순간에 화두가 풀렸다고 합니다. 과연 최창한 님의 화두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리게 된 것일까요? 자, 이번 수행담은 매우 진솔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브레이크 없이 달립니다. 출발할 준비되셨죠? 갑니다!
2017년, 치열했던 사회적 활동을 접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계획과 노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무렵, 정토회 백일출가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항상 스님이 되기 전 행자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나이가 많아 출가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정토회 백일출가 45기 모집 공고를 보았고, 삶을 돌아보기 위해 참가하기로 했다. 이곳 역시 연령 제한이 있었고,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기회임을 깨달아 서둘러 지원서를 냈다. 선발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템플스테이 하듯 오시면 안 됩니다”라는 조언을 반복했다.
출가 신청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모든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를 대신할 직원을 두 명 더 배치하고,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딸에게 총괄 업무를 맡겼다. 이렇게 세속의 삶을 정리하고, 2023년 3월 30일 백일출가를 했다.
나는 깨달음의 장에서 풀리지 않은 세 가지 화두를 다시 풀고 싶었다. 첫째,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둘째, 재혼을 해야 하는가? 셋째, 노후와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백일출가 첫 관문인 만 배는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고, 이 과정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첫날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4,500배를 마친 뒤 천천히 절하며 적당히 중간 순위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물이 생겨 진물이 나왔고, 절을 할 때마다 전기 충격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포기하자’는 생각이 계속 올라왔지만, 내 인생에서 중도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자신과 타협하며 ‘만 배까지만 하고 그만두자’라고 결심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화장실로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유일한 피난처였던 화장실 구석에 손수건 한 장을 깔고 앉아서 졸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나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만 배 장을 떠나지 않고 모든 절을 마쳤을 때 스태프가 와서 “300배가 부족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울분이 치밀었다. ‘그래, 여기까지만 한다. 맘대로 해라’라고 생각하며 절을 이어갔다.
만 배를 마치고도 내가 회향하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는 가장 힘든 순간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기 때문이었다. 한 비구니 노스님이 힘차게 관세음보살을 부르시는 모습을 보며, 홀로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농사지을 때 필요하다며 온 동네 쓰레기를 모아 집 안 곳곳에 숨기곤 하셨다. 자식 걱정에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겹쳤다. 평생 흘릴 눈물을 쏟아내며,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 절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백일출가를 시작하면서 세대 간 갈등을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조원들과 함께 공양을 준비하고, 정해진 시간에 끝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역할을 나누어 진행했음에도 늘 시간이 부족하고 갈등이 쌓이면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오곤 했다.
특히 한 도반과의 갈등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며칠 동안 쌓인 불편함이 순간 폭발해버렸다. 오랜 세월 아이들을 가르치고 강연과 연설을 하며 살아왔기에, 남달리 큰 목소리와 화난 표정이 연출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태도에 놀란 도반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화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화가 나 혼잣말로 짜증을 내며 남은 일을 마무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이 서서히 밀려왔다. 도반의 행동이 그리 잘못된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지만, 나는 차마 진솔하게 사과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부끄러움을 삼켰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문경에 다시 파견되어 복귀하였을 때 그 도반과 종종 마주쳤다. 그는 백일출가 시절과 다름없이 성실하게 수행 정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에는 묵은 부끄러움과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사회에서는 나름 존경받고 남부럽잖은 대접을 받던 내가, 백일출가 행자 생활에서는 오히려 애물단지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성과를 내려 하는 집착이 도반들에게 부담을 주고 갈등의 씨앗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름대로 수행 정진을 부지런히 하던 중 백일출가 49일째 되는 날, 화두였던 세 가지 고민이 한순간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스스로 집착하며 얽매여 있던 것들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첫째, 지방의원 비례대표 자리를 다섯 차례나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오로지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더 큰 목표에만 올인했던 것이, 한 생각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한 것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정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이로운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둘째, 그동안 극소수의 지인들이 내가 혼자인 것을 알고 만남을 주선하려 했지만 거절했다. ‘재혼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내려놓고, 누군가와 인연이 닿는다면 재혼해도 좋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셋째, 황혼기의 삶에 대한 계획도 명확해졌다. 더 이상 큰 목표를 이루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소박하고 평온하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하고, 단돈 1,000원이라도 보시와 저축을 실천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만들어갈 황혼기의 삶이자 수행의 연장이었다.
회향 후, 국회의원 출마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이전에는 출마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준비했지만, 이제는 주변의 조언을 경청하며 나와 가족 모두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출마를 접은 이후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백일출가 회향 후 2주 만에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1년간의 교제 끝에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재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33년간 성실히 근무하며 두 아들을 키운 천주교인이다. 17년 전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꿋꿋이 삶을 이어온 그녀는 현재 불교대학 재학 중이며, 나는 바라지를 하려고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평소 자녀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미움으로 번지곤 했다. 그로 인해 괴로움이 생겼지만, 2023년 7월 7일 회향 이후, 자녀들이 단 한 번도 큰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에 감사했다. 주변에서 자녀 문제로 힘들어하고 질병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거나,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자주 보았다. 언론을 통해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며, 어느 순간 세 자녀가 건강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한없이 고마웠다.
특히 자녀들이 만 18세가 된 이후 대학교 학비를 비롯해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운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이 대견할 뿐이다. 별다른 연락이 없어도 알아서 제 길을 걸어가는 자녀들을 생각하며 깊은 감사와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30년 넘게 한동네에 살아서 운전 시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도로 사정까지 꿰뚫고 있다 보니, 차가 막혀도 신속하게 대처하고 능수능란하게 운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상대가 지나치게 조심 운전을 하여 흐름을 방해하거나 신호를 무시하고 차의 진행을 막을 때는 자주 화를 내거나 다투기 일쑤였다. 얌체 운전, 불법 주정차, 경적 소음 등에도 끝까지 잘잘못을 가리며 분노하던 일들이 나이가 들면서 두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양보하고, 화를 내는 대신 미소로 응대하며 솔선수범해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운전 중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바쁜가 보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라고 넘기며 화가 올라올 때 알아차림에서 멈추고 화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마음이 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 남을 이해하고 웃으며 운전하는 과정에서 삶의 여유와 평화를 얻고 있다.
백일출가를 통해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을 모두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세상이 변하고 자연이 변하듯, 우리 삶에도 언제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자연재해나 건강 문제,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 인한 예상치 못한 불행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다가오는 행복과 불행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회향 후에도 백일출가 당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속세의 삶에서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실수를 알아차릴 때마다 그것을 수행 과제로 삼아 기도문에 포함해, 꾸준히 마음을 다잡고 있다.
최근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아 내 삶을 크게 흔들었다. 어머니는 치매 4등급 진단을 받으셨는데, 요양원에 모시는 대신 직접 돌보기로 했다. 치아가 없는 어머니의 하루 식사를 챙기고 운동 시간은 물론 어린이집 차량 운행 업무 시에도 조수석에 모시고 온종일 함께하고 있다. 잠도 같이 자면서 어머니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백일출가의 공덕이 나를 지탱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나와 어머니,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이제 어떤 일이 닥쳐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으며, 타인과 나 자신에게 이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불행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고, 행복을 움켜쥐려 욕심내지 않는 삶! 이것이 내가 배운 수행자의 길이다.
글_최창한(45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4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혹시 열등감으로 힘드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