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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인터뷰하러 가는 길은 설레고 긴장되는데, 이번은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특히 더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카페에서 만난 성남지회 이무희 님은 많은 정토행자가 그렇듯이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친근했습니다. 또한, 인생의 기억을 한 조각씩 꺼내어 줄 때마다 공통점이 많아 놀라웠습니다.
특히 열등감과 관련한 이야기는 저의 고민과도 맞닿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혹시 열등감으로 지금 힘드신가요? 그럼 이무희 님의 수행담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14년 예후가 안 좋다는 삼중음성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3년간 항암과 방사선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삶과 건강을 되돌아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간 속을 많이 끓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나 싶고, 남편을 원망하면서 아이들 키우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병을 계기로 수행의 세계로 시선을 돌렸으니,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 성당에서 봉사하고, 유방암으로 건강 관리에 전념할 때, 저는 질병 치료보다는 오히려 열등감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지인이 법륜스님 영상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열등감은 자기가 못났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잘났다’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너무나 와닿았습니다. 타인과의 비교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던 습관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글공부만 해서 돈벌이를 못 했습니다. 자연스레 엄마가 장사로 생계를 책임졌는데, 큰돈을 잃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엄마는 술에 많이 의존했습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엄마가 술에 취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금세 불안했습니다. ‘내가 즐거우면 왠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라며 즐거움에 흠뻑 젖은 마음을 애써 어둡게 만들곤 했습니다. 가난의 어려움과 부모 사랑의 부재는 제 가슴속에 뻥 뚫린 구멍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감정을 억누르며 속으로 삼키기 시작하던 때 같습니다. 언니가 엄마를 대신해 돌봐주고 등록금도 내주었지만, 저는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하여 돈을 빨리 벌고 싶었습니다. 그때 공부를 못 한 진한 아쉬움은 점점 커져, 결혼 후 35살에 대학을 다니는 열정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제하며 산 것과 가난 때문에 취업을 선택한 것은 이후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과 계속 비교하는 열등감의 뿌리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도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나는 부족하니까 계속 채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채우려 해도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이어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삶을 살면서도 저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아이들에 대한 기대로 속앓이를 했습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제가 남편을 향해 왜 감정 표현이 서투냐고 원망했습니다. 자주 욱하는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 속상함을 표현하기보다는 속으로 삭이는 걸 선택했습니다. 어린 시절 감정을 억누르던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중국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었다면 그곳에서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렸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아이들을 과외 공부시키면서 중국어 영어 가르치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아이들을 세심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여유 있게 즐기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것입니다.
2019년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남편과의 갈등이 결국 ‘내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의 문제였다면 상대가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지만, ‘내 문제’라 생각하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와 참 많이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정면으로 툭 터놓고 다투면서 마음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속앓이하며 감정을 삭이곤 했었는데, 이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고, 거기서 오는 마음의 가벼움을 알았습니다.
스님에게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질문도 했습니다. 저는 막히고 부딪힐 때마다 스님이나 법사님에게 질문하여 조언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임도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일도 많아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행과 소임을 계속하면서, 일의 압박이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나를 돌이키는 힘을 조금씩 키웠습니다.
이렇게 모르면 묻고, 막히면 방법을 찾아 꾸준히 정진하는 힘의 원동력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저의 확고한 마음 덕분입니다.
사실 최근에 둘째 아들이 불안과 강박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여러 시도가 오히려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특히 예민하고 불안한 기질의 둘째는 환경 변화나 경쟁이 꽤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상담과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저에게 말한 것 자체가 커다란 감사로 다가옵니다. 아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요즘 남편과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편과 아들의 상담 치료를 논의하는 중에 남편이 “내가 잘못한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늘 강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여리고 진실한 모습에 앞으로는 오히려 제가 남편의 의지처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아들의 경우처럼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정 동요가 크게 있지 않습니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해결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낍니다. 부모의 행복이 바로 아이의 행복이라는 스님 말씀을 체험에서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참 무겁게 살았습니다. 감정 표현도 어려웠고 속상하면 마음에 담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정말 가볍습니다. 이제는 전과 다른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없이 묵직했던 마음에서 감정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며 자신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 지금처럼 여러 문제를 만나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흔들리고 문제에 떠밀렸겠지만, 수행 덕분에 가족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기로 마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수행 덕에 넘어져도 빨리 일어날 힘을 얻었습니다. 만약 아들이 평생 약을 먹고 관리를 해야 한다 하더라도 ‘과보를 기꺼이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며 자주 되뇌는 말은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입니다. 저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스스로 선택했고, 저를 해탈과 열반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눈이 높아 이상을 좇느라 고달팠고, 제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들을 끊어내고 싶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수행이 잘 안 될 때도 있었고 여전히 시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느끼는 저의 달라진 면도 분명 있습니다. 과거의 후회되는 일도 지나고 보면 수행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스님의 "제2의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을 담고 살아갑니다.
수행하며 느낀 것은 집안에서 저 하나만 바뀌어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도 ‘그럴 수 있지’라며 집안 전체 분위기를 가볍게 합니다. 앞으로도 밝게 지내며 가족들을 환히 비추고 제가 좋아하고 행복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희망리포터' 덕에 이무희 님의 수행과정을 생생히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스스로 성장하며 바른길을 가고 있다는 주인공의 확신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말은 “지금 느끼는 이 가벼움을 소중하게 하고 싶습니다” 입니다. 더는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표현하면서 가벼워지고, 그렇게 얻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한때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가족들의 곁을 지키는 밝은 등불의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수행하고, 모르면 묻고, 막히면 길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수행자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글_허수정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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