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입니까?

공부를 잘했던 큰아들이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다. 대학 학과 선택에서 아들은 전문 상담이나 컨설팅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소신 지원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성적도 우수해 무난히 합격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아들은 수능 성적이 모두 1등급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원했던 모든 학과에서 떨어졌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3지망까지 떨어진 아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습니다. 1등급 학생들 만으로 편성된 유명 재수 학원에 등록하고, 그 후 치른 2, 3월 모의평가에서 성적이 바닥을 쳤습니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아들은 공부를 포기하겠다며 학원을 나왔습니다. 남편은 모든 실패의 원인을 제 탓이라 원망했고, 급기야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이후 아들과 관련된 일에 저를 배제했고, 아들도 아빠와 의논하고 제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기에 방황하는 아들을 위해 어떤 도움도, 역할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회의가 들고 위축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못했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수없이 제게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찾은 답이 정답이 아닌 듯해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가출한 지 6개월 후, 남편과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토회를 찾다

아들의 성향과 관심을 고려해 학과 선택에 대해 의견을 말했지만, 아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의논해 대학에 진학한 아들은 1학기를 마친 후, 다른 자격시험 공부를 하겠다며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남편은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아들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어 제 고민과 무력감은 깊어져 갔습니다.

집안 문제가 힘들수록 직장 내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홀해지고 불편했습니다. 동료들의 끼리끼리 문화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선사라는 절에서 불교대학과 경전 수업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희망 편지와 혜민스님 이야기가 카톡에 많이 올라오던 때였습니다. 불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법륜스님의 불교대학이 와닿았습니다. 2015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들 문제로 방황하는 마음을 바로잡고 혼란스러운 저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인생은 정말 답이 없을(No 답)까요?

나는 누구인가? 어찌 살아야 할까? 절박한 심정으로 불교대학에 들어왔지만, 정작 답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실천적 불교 사상이나 부처님의 일생으로도 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수업도 재미없었습니다. 법륜스님의 불교대학은 다른 절의 불교대학과 다를 거라는 기대도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심문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고, ‘어, 뭐지? 이 구절을 들으려고 여기와 앉아 있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명심문을 되뇌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 되뇔수록 이 말에서 힘을 느꼈습니다.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 힘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았습니다. 손님처럼 슬렁슬렁 불교대학에 발만 살짝 담근 불량 학생이 명심문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불교대학 담당 도반의 도움에 감사하며 졸업했습니다. 이후 <깨달음의 장>에서 저의 다른 모습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남편에게 늘 듣던 말이었지만, 귓등으로 흘려보냈던 ‘나’라는 견고한 틀을 가진 아주 고집 센 사람이 바로 '나'였음을 인정했습니다. 소신 있게 딱 필요한 말만 하는 '멋있는 나'를 내려놓았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며 수행과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활동과 캠페인에도 참석했습니다. 경전대학 담당 도반이 목탁 교육을 권해 배웠습니다. 이른 시간 법당에서 새벽 예불 집전을 시작으로 꾸준한 봉사와 수행의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수행, 그 첫걸음

경전대학을 담당하던 2019년 9월, 아들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119 대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현실 같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아들의 위태로운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차가 굴러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며 뇌가 부풀어 올라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수술해도 부풀어 오른 뇌가 정상으로 될지 의문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갑자기 남편이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를 만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이도 결국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심장을 할퀴고 찌르던 남편의 독설이 그 순간은 한 마디도 제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술실 앞 복도에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절’을 했습니다. 7시간이면 끝난다는 수술이 9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병원 복도를 지나던 청소부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이 엄마 보니, 아이 살겠어. 이렇게 엄마가 정성을 들이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 뿐이었습니다. 새벽 여명이 밝아 왔습니다.

‘이것만이 나와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절박함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던 그 순간, 나를 내려놓음이 ‘수행’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긴 수술에서 깨어난 아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에 감정 기복이 심했습니다. 아들 옆에서 3년의 병원 생활 동안 절을 통한 수행을 확실히 배웠습니다.

아들로 수행의 깊이를, 배움을 더하다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듦이나 고민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엄마를 돕기 위해 저를 희생한 것이 습관처럼 굳었습니다. 남편의 병으로 인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며 종부로서의 버거운 삶을 살아내야 했던 엄마, 장녀인 저는 엄마의 삶을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며 동생들까지 돌봐야 했던 대학 시절을 비롯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질곡의 삶에서 저는 도망치듯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보수적인 아버지와 닮아 있었습니다.

아들이 병원에서 생과 사의 기로에 있는 동안, 제 업식과 저와 아들의 인연과보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먼저 살아야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두고 4박 5일 명상 수련을 다녀왔습니다. 아들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 힘들어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정리되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병원에서 아들을 돌보며 수행과 봉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잠이 부족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어려움을 헤쳐갈 힘을 얻기에 어느 것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꾸준한 치료와 재활로 아들은 2022년에 퇴원했습니다.

요즘 아들은 가끔 외출합니다. 카페에 가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혼자 시간을 보냅니다. 조금씩 ‘우리’는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인연, 그 알 수 없는 배려

2019년 아들이 사고로 입원했을 때, 저는 경전대학 담당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마무리 업무로 바빴습니다. 남편은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아들에게만 집중하길 원했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유행했고, 모든 수업과 정토회 업무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제 사정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이 옆에서 법회를 듣고 소임을 계속했습니다. 끊어질 뻔한 정토회와의 인연이 아이러니하게도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과 코로나로 인해 더 깊은 인연으로 나아갔습니다.

'세상일이 모두 나쁘다'는 법은 없습니다. 새벽마다 병원 휴게실에 방석을 펴고 정진할 때 눈물이 났습니다. 토요일마다 새벽 기도 집전을 위해 택시를 타고 법당에 가서 불을 밝혔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 눈물이 절로 흘렀습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시간의 눈물은 저를 찾는 긴 과정이었습니다.

2019년 9차 만일 결사 회향이 다가오던 무렵입니다. 아이의 사고를 말하지 않아 도반들은 제 사정을 몰랐습니다. 회향 공연의 꼭지 소임을 맡았습니다. 준비하다 보니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연이 목적으로 지회 여러 법당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진행표를 만들어 검수받고, 동작을 짜고 가르치며, 연습과 리허설, 음악과 복장 준비 등의 복잡한 과정은 도반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청년부에 플래시몹을 양보하라는 제안에 제 아이디어를 고집하면서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소임을 하며 불만도 있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를 다스리는 지혜를 체득했습니다. '체득한다'는 게 이런 것인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저를 많이 알 수 있었고, ‘모자이크 붓다’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음 한편은 '아들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음악에 맞춰 춤추는 공연을 한다.'는 것이 미안하고 불편했습니다. 소임과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 보니 병실을 지켜준 남편에게 이전에 가졌던 서운함과 미움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

모둠장을 코로나 중에 맡았습니다. 제게는 일과 수행의 통일이었습니다. 아들이 깨어나 걸음마를 배우듯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려면 저도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 그것은 수행과 소임을 통한 봉사에서 우러났습니다.

아들이 수술하는 9시간 동안, 간절히 절을 했던 저를 떠올립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절을 하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괴로운 마음도 덜 올라왔고, 수행만이 저를 평안하게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인연을 이은 지금은 순간에 깨어 화내거나 슬픈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소임에 적극적으로 즐겁게 임하면 아들과 남편을 대할 때 너그럽게 수용하는 힘이 생깁니다. 사사건건 아집 강한 저를 내세워 상대를 괴롭게 할 것임을 알기에 늘 마음 깊이 명심문을 새깁니다. 제 중심에는 제가 있습니다. 제가 행복하지 않고 힘들면 선하고 좋은 에너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들은 지금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예전의 건강한 아들이 아님을 받아들입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하는 책임감을 느낄 때면 이기적인 마음이 올라옵니다.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스님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합니다. 거리 캠페인에 나가서 좋은 에너지와 힘을 듬뿍 받고 귀가합니다. 제가 받은 에너지를, 저를 맞아주는 아들과 나눕니다. 앞으로도 일과 수행의 통일로 얻은 에너지를 아들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겠습니다.

모두 법 만난 덕분입니다.

긴 인터뷰에도 저의 역량이 부족해 이재희 님의 살아온 삶의 궤적과 우러나는 진심을 다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수행담은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미처 담지 못한 감동은 언젠가 다른 리포터의 시선으로 다시 전해지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재희 님, 쉽지 않았을 먹먹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눠 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