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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마주하는 어려움은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인도합니다. 김문찬 님은 위기에 봉착한 순간, 정토회를 만나게 됩니다. 기복신앙으로서 종교보다 수행을 중시하는 정토회의 매력에 푹 빠져 수행하고, 어느덧 전법회원 교육을 받아 '길상'으로 거듭납니다. 이러한 우연 같은 필연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매일 배우고 익히며 정진해 나가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문찬 님의 글 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문제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가족 관계에서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온 가족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또한 취업 준비를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감과 나태함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정작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준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우체국 택배 기사를 하셨는데, 차를 타고 다니며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주 5일 동안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낀 채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튜브 영상으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삶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듣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다른 주제들도 찾아 들었습니다.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던 이야기도 공감이 되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문을 계속 듣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듦은 결국 상대를 내가 바라는 대로 맞추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정토회와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저의 가정은 본래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믿음의 종교에 늘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인지, 신이 있다면 왜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지, 구원받는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로 구분 지어지는 듯한 느낌은 무엇인지? 등 근원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 삶에서 오는 여러 의문점을 질문해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앙적인 종교 이야기와 달리,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법륜 스님의 말씀은 제가 갖고 있던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인생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관한 주제들에서 촌철살인의 해답으로 경종을 울려주었습니다. 많은 일화 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 부분은 법륜 스님의 큰 스승이신 서암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여보게, 어떤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곳이 절이고 그것이 불교라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기존에 갖고 있던 선입관이 깨지면서 동시에 마음 수행의 중요성을 새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수행은 정토회에서 '개인적인 수행 공간'이라 부르는 방 안 법당에서 아버지를 향한 감사기도로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는 공간임에도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어둠 속의 악마가 ‘뭐가 고맙다는 거야!’라고 고함치는 것 같은 거부감이 일었습니다. 억지스러웠지만 하루, 이틀 정진해가다 보니 아버지의 삶이 조금씩 다른 관점에서 보였습니다.
108배 기도는 꾸준히 하지 못했습니다. 무릎도 아프고, 직장 업무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카르마를 없애기는커녕 수행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꾸준히 절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전법회원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전법회원 교육 중 불교대학 돕는이 실습을 하면서 학생들을 통해 저의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한 학생 세 명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절을 하였고, 그 모습이 귀감이 되어 꾸준히 정진할 힘이 되었습니다. 100일 중 90일 이상 참석하고 빠지는 날에는 300배를 하며 참회했습니다. 전법회원 교육 과정을 함께한 도반들의 응원과 도움도 매우 컸습니다. 저는 아상이 높아 돈, 명예, 지위, 외모 등 조건을 따라가며 살았지만, 도반들과 활동을 통해 꼭 그런 것이 삶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무결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입장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받아들이고, 그 시절 나라면 ‘나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난관에 봉착한 사업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고 한 마음 돌이키니 아버지는 그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아버지란 모름지기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상(相)에 집착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내가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니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관계 이상으로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섬망증을 앓고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온갖 불만을 쏟아내셨습니다. 저는 조용히 다 듣고 나서 “불교대학 한번 들어보실래요?”라고 건넸습니다. 그때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더니 저녁에 제 방에 들어와 “언제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즉시 불교대학을 신청해 드렸고, 지금은 ‘깨달음의 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아(無我)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해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평생 단 한 번만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의 장 수련을 신청했습니다. 수련장에서의 배움은 새롭고 신선한 자각을 안겨준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친 후 동승자를 태우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운전 중 졸음이 쏟아졌지만, 구불구불 휘어진 문경의 산길은 아무리 둘러봐도 쉴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함께 탄 분이 무엇인가 얘기하는 찰나 갑자기 눈이 감기더니 차가 앞의 경계석을 타고 올라서며 날아올랐습니다. 다행히 바로 핸들을 돌려 도로에 착지할 수 있었지만, 차는 약간 파손되어 달달거리는 소음이 났습니다. 운행은 가능한 정도라 정속보다 20km 정도 느리게 운전했습니다. 동승자를 안정시키고 나니 제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임시 갓길에라도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가 출발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차는 움직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전법교육을 받는 동안 경주 역사 기행에 참가했습니다. 소임을 맡아 도반을 위해 ‘순수하게 잘 쓰이자!’라고 다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시작은 호기로웠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다 끝나고 회향식을 한 이후 계속해서 불편한 마음이 일더니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랫배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언짢을까?’라는 생각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며 차근차근 살펴보았습니다. 내 일을 포기하고 돈을 내면서까지 참여했는데, 정작 제가 맡은 소임은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제 소임은 다른 도반들이 일행을 놓치지 않도록 후미에서 봐주며 이끌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필요해서 맡겨진 소임인데, 이런 작은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어린 애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맡은 일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분별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런 자신일지라도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힘든 가운데에서도 알아차렸잖아! 지금 이대로도 잘했어!’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앞으로는 크고 작은 소임에 매이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해나갈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주 4·3 사건이나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소임을 맡아보고 싶습니다.
어느덧 전법행자가 되어 ‘길상(吉祥)’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 방석으로 쓰여 공덕을 지었던 길상초(吉祥草)로 ‘길하고 상서로운 풀’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법륜 스님은 귀한 뜻을 가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방이 법명을 부르면, 그 법명에 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명에 버금가는 행동과 말이 뒷받침되어 ‘길상 법우’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정토회 활동은 스스로 결박 지어 놓은 구속의 장치들을 하나둘 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대단한 결심보다 그냥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믿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확고한 신념으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배우고 익히며 정진해나가는 삶 속에서,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김문찬(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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